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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터멘션 May 12. 2020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여행의 의미를 일깨워준 시간들

계획 없는 여행,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당신의 모든 선택은 아름다워요. 실패도 잠깐의 높낮이일 뿐이에요."



계획 없던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


해외에서 한 달 살기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속 한구석에 그에 대한 로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망은 로망일 뿐. 일도 사랑도, 기다리는 회사의 채용 소식까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떠날 용기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떠날 용기를 주었던 것은 사랑하는 친구가 별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스물넷의 12월에 나는 모든 순간은 바로 지금 살아야만 한다는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2020년은 배우고 싶었던 것, 마음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것들을 조금씩 실천해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을 올해에는 더욱 현명하게 사용하고, 더 노력하고 더 솔직해지자고, 후회하지 않게 사랑한다는 말도 더 많이 하고. 그렇게 하루를 담아 가며 살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바로 2주 후에 치앙마이로 떠나는 비행기를 예약했고, 가지고 싶었던 카메라를 사곤 아무런 계획 없이 한 달의 여행을 시작했다.     



   




완벽주의자, 유노윤호라는 나의 수식어들과는 달리 나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예쁜 옷을 입고 SNS에 올리기 위한 인생 샷에 집착하며, 유명한 곳을 돌아다니는 그런 여행은 왠지 이번 한 달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옷도 신발도 치앙마이에서 살 생각에 몇 벌 챙기지 않았다.    



         




여행할 때 항상 나는 그곳에서 이방인이었지만 적어도 이번은 아니었다. 어느새 단골가게가 생겼고 멀리서부터 나를 알아보고 웃어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떠날 때에 함께 그리워하며 언젠가 다시 보자며 서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일도 좋았다.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맛집을 알게 되고, 굳이 지도를 켜지 않아도 목적지를 잘 찾아갈 수 있는 능력도 생겼다. 진정한 휴식을 느끼며 2020년의 첫 달을 치앙마이와 빠이에서 지낸 점은 여러모로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달 살기 동안 아쉬웠던 것     


나의 한 달에서 아쉬운 점을 찾자면 단언컨대 치앙마이에서의 초반 6일의 숙소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지리를 잘 몰라서 그냥 가격대와 취향만 맞추어 예약했는데, 중심지와는 거리가 조금 있어서 불편했다. 자전거를 빌린 이후로는 그래도 전보다 괜찮아지긴 했지만. 치앙마이의 지리를 익히고 나니 숙소의 위치가 정말 좋지 않다는 걸 계속해서 체감했다.           


생각보다 한 달은 길기에 교통비와 자전거 대여비로 야금야금 예산을 사용하다 보니 조금 부담이 되었다. 빠이를 다녀와서는 위치를 제일 먼저 고려하여 올드타운 내로 숙소를 정했고, 그곳은 이곳저곳 걸어서 돌아다니기 정말 좋았다. 시간도 돈도 많이 절약되었다. 초반에는 숙소가 멀어 자전거나 그랩을 많이 이용했지만, 후반 숙소는 올드타운 내라 30밧만 내면 중심지는 어디든지 돌아다닐 수 있는 썽태우만 이용했다. 


고로 나는 한 달 살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숙소라고 생각한다. 중심지와의 거리는 가까운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꼭! 고려해야 하고, 주변에는 편의점과 식당이 몇 곳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달 살기의 필수조건은 혼자 놀기


치앙마이 한 달 살기에 실패한 경험담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쉴 수 있는 능력과 그에 맞는 성격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에서야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한 달을 살며 책도 읽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도 하며 때로는 음악만 틀어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곤 했다. 서점에서 잡지를 사서 가지고 온 노트를 꾸미기도 했고, 색연필을 하나 들고나가 바깥이 보이는 큰 창이 있는 카페에 가만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그리기도 했다.  


평소 혼자 있는 시간에도 무언가를 많이 하는 편이었기에 한 달이라는 여행 기간 내내 외롭지 않았던 것 같다. 향신료나 비위생적인 요소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다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배제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가 어색한 사람들은 조금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치앙마이에서 있었던 일, 첫번째


‘치앙마이의 헤이리’라 불리는 반캉왓이 월요일에 휴무라는 사실을 깜빡하고 갔다가 잊지 못할 마켓을 만나게 되었다. 찬찬히 구경하던 중 나의 카메라를 보고 굉장히 빈티지하다고 말을 건넨 한 아티스트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일면식도 없던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꽤나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가죽을 다루지만 본업은 음악가이며, 일본 오사카와 고베 가까운 마을에서 오셨다는 것도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비와 곤충을 채집해 만들었다는 멋진 작품들도 소개받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정말 구하기 힘든 재료로 만들었다는 귀걸이를 보여주셨고, 거울까지 보여주시며 착용해보라고 권유를 하셨다. 사장님은 귀걸이를 착용한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나선 선물로 주고 싶다는 말씀을 건네셨다.  




        


 

너무 귀한 재료이기에 더 좋은 분께 드리라는 나의 만류에도 여기 금이 있다며 내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하자를 말씀하시는 사장님. 그렇게 나는 인연의 선물을 받게 되었고, 옆 상점에서 자랑을 한 후에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사랑을 받기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나의 좌우명이 무색해질 만큼 항상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받게 되었다. 여행하는 내내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는 건지. 더더욱 열심히 베풀며 살아야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치앙마이에서 있었던 일, 두번째


고양이가 등장하는 동화를 그리시는 대만의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다. 찬찬히 그림들을 보던 나에게 작업하신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여러 장 뒤집어 보여주시며 한 장 뽑아보라고 말을 건네셨다. 고심하다 펼쳐진 카드 사이 뭉쳐진 부분의 가장 아랫부분 카드를 뽑았다. 


像個孩子 (Be a child)라는 문구가 적혀있던 카드에는 호기심이 많아 보이는 한 아이와 두 마리의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단순히 아이처럼 생각하라는 것이 아닌 하고 싶었던 일을 가끔씩은 아이처럼 이것저것 재보지 말고 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라며 작가님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카드의 의미를 말씀해주셨다. 


마음속에 아이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뽑는 카드. 접어두기만 했던 것들을 더 많이 꺼내보려 했던 올해의 첫 다짐에 힘을 실어주는 말이었다. 내 바람을 뜻밖의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것은 꽤나 멋진 일인 것 같다. "우연히"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치앙마이 한 달 살기. 





   

           

빠이에서의 일상 


평소보다 바람이 조금 불기에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캐년을 보러 간 날도 있었고, 햇살이 좋아서 그냥 음악을 틀어놓고 아침부터 맥주만 마시며 책을 본 날도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의 계획은 있었지만 적어도 빠이에서의 나는 정말 무계획적인 사람이 되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나에게 이런 계획 속의 무계획은 꽤나 자유로운 일인 것 같다. 말도 멋지고.   

                                     

<조금은 슬픈 음악이 흘러도, 조금은 웅장한 음악이 흘러도, 우린 비를 뚫고 이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곳에 도착했잖아요. 개개인에게 주어진 시간과 모든 선택의 순간들, 위태로울 수도 가슴이 벅차오를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순간순간이 모여 당신이 이루어진다는 걸 잊지 마세요. 당신의 모든 선택은 아름다워요. 실패도 잠깐의 높낮이일 뿐이에요.>     


빠이를 지나쳐간 한 여행자의 글이 많이 생각이 난다. 그 짧은 글로 인해 내 여행의 의미가 점점 바뀌어갔다.      







현실의 일에서 잠깐 벗어나기 위해 항상 여행을 떠났지만 그곳에서도 나는 항상 알게 모르게 바빴던 것 같다. SNS에 업로드할 만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이렇다 할 추억거리를 만들기 위해 말이다. 치앙마이와 빠이는 그런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대충 머리 질끈 묶고 어느새 단골이 되어버린 과일가게로 가 그린 망고를 잔뜩 사 왔던 날이 기억이 난다. 겸사겸사 자주 가는 국숫집에서 사장님 특제소스 팍팍 넣은 국수도 먹고. 오자마자 전날 저녁 두 박스를 사다 냉장고에 넣어 놓은 맥주를 꺼내 마시고 책을 읽기도 했다.      







아무런 걱정 없이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내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날은 꽤나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사소한 것들이 가장 큰 행복인데도 참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뭐가 그리도 바빴고 겁이 나서 걱정을 가득 안고 살았는지. 나의 20대 초반이 조금 가여웠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무언가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나는 나대로 괜찮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스물다섯이 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순간에 알게 되었다. 





2020.01.03 ~ 2020.02.02

'최은비'님의 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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