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 달 살기를 위한 첫걸음, 보름
말만 사장, 대표인 남편과 함께 사무실 안팎에서 계속되는 문의와 상담전화로 주말도 없이 일할 때가 많아 늘 휴식이 필요했어요. 문득 떠오른 “1년 내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처럼 저와 남편 그리고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커준 우리 아이들에게 특별한 보상을 해주고 싶고 토닥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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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일주일 정도로만 생각하다 때마침 아이들 어린이집 방학이 길어지며, 보름살이를 도전하게 되어 큰 결심을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즐겨하던 블로그 이웃들의 한달살이에 관한 포스팅을 여러 번 봐왔지만, 생각보다 준비할 것들이 많아 항공권이며, 준비물 등을 알아볼 시간이 없어 적잖이 힘이 들었어요.
평일, 주말의 경계 없이 하루 종일 업무에 치여 쉼이 필요한 우리 가족에게 이번 여행은 ‘관광’이 아닌 ‘힐링’에 가까웠어요. 우리 부부에게는 쉼을, 아이들에겐 어떤 교육적인 측면보다도 시도 때도 없이 불어오는 제주의 바람과 에메랄드 빛 바다, 오름, 심지어 새까만 현무암과 흙을 통해 제주의 모든 것을 그대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자연 안에서 ‘우리 가족의 소소한 추억거리를 만들고 돌아오자!’ 생각하며 떠나게 된 보름이었죠.
다행히 블로그 이웃 중 제주도에서 펜션을 운영하시는 분이 계셨는데, 단순히 펜션 홍보만 하는 호스트가 아니라 사람과의 소통, 사람과의 만남을 중요시하는 주인 분들의 철학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락방과 늘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강아지와 고양이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은 '철없는 펜션'이라는 숙소를 예약했어요.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가고, 먹고 싶었던 것들을 미리 메모해두었죠. 그런데, 성탄절이 끼여 있는 연말이라 렌터카를 이용할 수 없었어요. 처음에는 절망했지만, 관광 목적이 아니니 괜찮다고 애써 위로하며, 반강제로 여행의 80퍼센트는 숙소에서 보내게 되었죠.
차가 없으니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었던 곳을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쉽기도 했지만, 너무나 친절하신 숙소 주인분께서 중산간 관광지를 다 둘러볼 수 있는 버스를 소개해 주셔서 이용했어요. 아이들과 함께 천천히 운행하며 해설사가 설명해주는 것을 들으니 아이들도 좋아하더군요. 종종 주인분의 차를 얻어타 가까운 마트나 바닷가에 가서 놀기도 했죠.
특히, 굳이 멀리 나가지 않아도, 매일 장작불을 태워 고구마부터 삼겹살, 생선, 소시지, 심지어 귤까지 구워 먹으며 캠핑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제주에서의 특별한 일상을 보냈네요. 이처럼, 머무는 내내 우리 가족이 진정한 힐링을 할 수 있도록, 잘 챙겨주셨던 주인 부부께 진심으로 감사했어요.
첫째는 고양이, 둘째는 강아지를 좋아해서 매번 키우자고 말하면 저는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 가면 키우자!”라고 둘러대기 바빴는데, 이렇게 제주에서 철딱이와 써니를 보니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더라고요.
어디를 나가자 해도 아이들은 들은 채도 않고 마당에서 강아지랑 고양이와 함께 제주도의 까만 흙을 옷에 잔뜩 묻힌 채 뛰어놀았답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여, 진지하게 ‘마당이 있는 제주도 집을 알아봐야 하나?’ 생각이 들어 남편이랑 진지하게 얘기한 적이 여러 날이네요.
제주도에 도착한 날이 12월 23일이었는데, 펜션 성탄절 느낌이 물씬 나게 아기자기한 장식을 해놓으셨더라고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저희 부부도 너무 감동했어요. 그리고 보름 내내 날씨가 10도 정도로 바람은 불었지만 그리 춥지 않아서 주로 마당에 함께 모여 앉아있는 날이 많았아요. 물론, 가끔 흐린 날도 있었지만 저희 가족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날씨가 봄날처럼 포근하면 또 그대로 좋았어요.
여유롭게 늦잠을 자고 싶던 날도, 10시에 잠든 아이들이 어김없이 8시만 되면 칼같이 일어나 강아지와 마당에서 뛰어다니며 놀거나 고양이를 숙소 안으로 데려와 놀며 저희 부부의 단잠을 깨우더라고요. 피곤하긴 해도 함께 밖으로 나와 테라스에 앉아 그 나름의 여유를 느꼈어요.
일을 하지않는 대신에 챙겨간 책을 틈틈이 읽으면서, 바로 내린 은은한 커피 향으로 하루를 시작했어요. 며칠은 육아에 지쳐있던 저를 배려해 남편 혼자 구좌읍사무소 키즈카페에 아이들을 데려가 주었죠. 아이들이 놀 때 틈틈이 업무 처리를 해주어, 저는 봄처럼 따스한 날 세화 해변을 거닐며 마음에 드는 커피숍과 아기자기한 소품점을 구경하면서 여유롭게 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무엇보다 모두가 잠든 10시 이후에는 깜깜한 세상,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아 보름 동안 정말 뒤척임 없이 편안하게 잠에 취했어요. 평소 어깨 통증이 심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마사지를 받아야만 했는데, 제주에 머무는 동안 통증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아마, 걱정도,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우리 가족만의 ‘쉼’과 여유를 찾아 내내 평안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평소에는 가족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는데, 여유로운 일정과 편안한 마음으로 제주에 머무니 자연스레 얘기할 시간이 많아지더라고요. 다 안다고 생각했던 우리 아이들의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알아가는 게 신기하면서도, ‘앞으로 아이들과 더 많이 대화를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아이들 손을 잡고 함께 제주를 거닐 때,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듯한 쓰레기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자연과 어울리지 않던 그 모습을 보고 쓰레기와 일회용품에 대해 이야기한 시간이 종종 있었어요. 물론 저희 부부가 먼저 실천을 하여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겠지만, 아이들이 이번을 계기로 ‘나만 편하게 잘 살면 돼’가 아니라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할 수 있는 일’에 과감히 뛰어들었으면 좋겠어요.
2019.12.23 ~ 2020.01.06
'김선주' 님의 쉼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