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환 헤지
환율은 온갖 이유 때문에 변한다. 지난번에 알아봤던 것처럼 나라 상황이 불안정해도 변하고, 우리나라가 아니라 세게 어딘가에 일이 터지면, 그리고 특히 미국과 관련된 무언가가 터지면 또 변한다.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오르면 오르는 대로 장점과 단점이 있고, 내리면 내리는 대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되다 보니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 변화를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예측할 수 없는 변화는 다른 말로 리스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 잘 나가는 기업 A가 있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다가, 훨씬 더 높은 가치를 갖는 물건으로 잘 만들어서, 또 다른 해외에 이 물건을 판매한다. 모든 케이스를 고려하기에는 머리가 아프니 물건을 외국에 파는 경우만 생각해 보자. 오늘의 환율은 1달러 당 1,300원. A 기업은 한 달 뒤에 자사의 물건 1,000개를 미국의 B 기업에 개당 1달러에 판매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1개월이 지났는데, 환율이 변했다.
1개월 뒤에 환율이 1달러당 1,400원이 되었다고 하자.
- 예상했던 금액 : 1달러 x 1,000개 = 1천 달러 → 한화로 바꾸면 130만 원
- 실제 금액 : 1달러 x 1,000개 = 1천 달러 (받은 돈은 동일) → 한화로 바꾸면 140만 원
- 이득 : 10만 원
환율이 변한 덕분에 이득을 본 것으로, 이를 환차익이라고 한다.
1개월 후에 환율이 1달러당 1,200원이 되었다면?
- 예상했던 금액 : 1달러 x 1,000개 = 1천 달러 → 한화로 바꾸면 130만 원
- 실제 금액 : 1달러 x 1,000개 = 1천 달러 (받은 돈은 동일) → 한화로 바꾸면 120만 원
- 손실 : 10만 원
환율이 변해서 손해를 본 것으로, 이를 환손실이라고 한다.
미리 체결해 놨던 계약이어도 환율이 변함에 따라 당초 예상했던 금액 대비 이득을 볼 수도 있고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예시로 든 것만큼 환율이 크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판매하는 물건의 개수가 저것보다 훨씬 클 테니 이득을 보거나 손실을 볼 수 있는 금액 또한 이보다 훨씬 커지게 된다. 내년의 영업계획을 짜거나 어딘가에서 돈을 빌리거나 하려면 '우리 회사가 돈을 이만큼 벌 것이 예정되어 있어요. 우리 믿으셔도 됩니다.'라고 주주에게든 은행에게든 설명을 해야 하는데,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환율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으니 우리 회사가 얼마를 벌지도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기업에게 리스크인 이유다.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것은 리스크다. 이 리스크를 미리 차단하려면? 환율이 변하지 않게 하면 된다. 물론 이 세상 모든 거래의 환율이 변하지 않게 고정해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A기업과 B기업 간에 이행하기로 한 거래에 대해서만큼은 가능하다. "1개월 후에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우리끼리는 1달러에 1,300원인 걸로 계산하기로 미리 약속하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정해진 일정 시점 이후의 외환 거래 계약을 미리 체결해 두는 것을 선물환(Forward Exchange)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1개월 후에 환율이 어떻게 변하든 A 기업과 B 기업은 계약 체결 시점에 예상했던 수익을 안정적으로 거둘 수 있다. 이렇게 계약을 해두면 환차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손실 발생에 대한 위험을 방지할 수도 있다. 경영에서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배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 A 기업과 B 기업은 이제 환율 변동으로 인한 리스크를 없앨 수 있게 되었다. 리스크 헤지(hedge : 손실을 막기 위한 대비책)에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환율에 의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경제주체들의 활동을 환 헤지라고 한다. 환율에 의한 리스크를 헤지 하다. 환 헤지.
이렇게 물건에 대한 거래가 아니라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외화를 미리 확보해 둬야지.'라는 필요성이 생길 수도 있다. 만약에 우리 회사에 급하게 1억 달러의 돈이 필요한데 그때 환율이 1,500원이 된다면? 1,500억 원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환율이 1,300원일 때 미리 사두면? 1,300억이면 충분하다. 무려 200억이나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그 순간이 되어서 환율이 1,300원보다 낮아져 있다면 다행이지만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니 그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현재의 가격으로 미리 외화를 사두는 행위도 환 헤지라 할 수 있다.
본래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행위는 리스크가 터졌을 때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원달러 환율이 오르는 것은 여러 곳에서 달러를 찾는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요가 커지면, 시장에 있는 달러가 줄고, 얼마 안 남은 달러라도 사려는 이들이 몰리면서 가격이 (환율이) 높아지게 된다. 그런데 이때 정부에서 (지금의 환율보다 싼 가격에 사뒀던) 달러를 시장에 대량으로 푼다면? 그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되고 환율도 덜 오르거나 떨어지게 될 것이다. 즉, 환율이 지나치게 높아진다 싶을 때 미리 확보해 둔 물량을 풀어 환율을 낮추는 것이다.
여기까지 살펴보니 오늘 뉴스가 이해가 되었다. 정치 불안이 여전한데 환율이 왜 갑자기 하락했을까? 아마도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 물량이 풀린 것 같다. 그러니까 국민연금에서 환율이 쌀 때 사뒀던 달러를 시장에 풀어서 환율의 상승을 막은 것 같다는 내용인 것이다.
환율이 오르면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지난 시간을 통해 알아보았다. 환율 상승으로 인한 악영향을 막기 위해 환 헤지 물량을 풀어가면서까지 환율을 안정시키려고 하고 있구나-라고 오늘의 뉴스를 이해하고 넘어가 본다.
환 헤지에 대해 알아보려다가 선물환이라던가 환손실, 환차익 같은 말까지 더불어 찾아보게 되었다. 환율이 변한다는 것이 경제주체들에게 어째서 리스크인지, 그리고 이런 리스크를 피하거나 미리 차단하기 위해 여러 방안이 쓰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언제쯤이면 환율이 안정세가 될까. 환 헤지 물량도 무한하지는 않을 텐데 걱정이다.
※ 금융 문맹을 벗어나기 위해 이것저것 찾아보며 정리한 글입니다. 정리를 하고 게시를 하면 그만큼 더 열심히 찾게 되고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식자의 작업이다 보니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그런 부분이 보인다면 넓은 이해와 함께 댓글로 가르침을 요청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