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text Jan 10. 2021

안녕하세요 안영이씨

당연하지 않고 대단한 일


 새로 배속된 팀에서 그간의 커리어와 전혀 관련없는 분야의 업무를 하게 되어 최근에 고민이 무척 많았다. 다른 업무가 하고 싶음을 팀장님에게 말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을 것 같고, 내 커리어를 알고 있는 상무님도 (팀장이 내게 이 업무를 배정한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는 모양새였다. 꼼짝없이 주어진 일을 해야 하는 상황. '내 커리어는 어쩌라는 걸까?' 하는 서운함에, 새 일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함에 새해 첫 주를 무기력하게 보내고 말았다. 새해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의욕은 사라지고 주체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맞이한 주말. 책장에 꽂혀 있던 《미생》 을 꺼내 들었다.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이든 마음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사고방식이든 뭐든, 이 뒤숭숭한 마음을 가라앉힐만한 것이 뭐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 윤태호, 《미생》, 위즈덤하우스


 웹툰이 유명세를 탔을 때도, 드라마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을 때도 나는 《미생》을 보지 않았다. 퇴근한 뒤에도 회사 이야기를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웹툰이나 드라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역시 보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더 강해졌다. 사람들이 공감한다는 건 그만큼 잘 그려냈다는 의미일 테고 그렇게 그려진 모습은 내가 조금 전까지 겪다 퇴근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므로, 각 에피소드들의 긍정적/부정적 여부와 상관없이 별로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랬던 내가 《미생》 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은 주인공 4인방보다는 조금 높은 직급이 되고 난 후 회사 연수원에 갔을 때였다. 저녁 자유시간을 대충 때우기 위해 보기 시작했는데 3일간의 연수 기간 동안 전권을 다 읽어 버렸다. 그리고 또 잊고 지냈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2년쯤 전에는 아예 책을 구매해서 책장에 꽂아두었다. 그 후로 이 작품은 회사 생활에서 고민이 생길 때면 열어보는 참고서가 되어 주었다.


 《미생》 은 볼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작품이다. 연차가 쌓이고 회사 생활의 경험치가 늘어가면서 처음 볼 땐 눈에도 들어오지 않던 인물들에게 관심이 가기도 하고, 정답이라고 생각되던 행동들이 모순덩어리처럼 보일 때도 있다. 십분 공감되던 등장인물의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반대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볼 때마다 다르게 읽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인상 깊은 장면을 꼽자면 빠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선임이 일을 주지 않아 답답해하는 장백기와 할 일을 스스로 찾는 안영이가 대화하는 장면이다.


ⓒ 윤태호, 《미생》, 위즈덤하우스


장백기 : 안영이 씨! 와~ 그게 다 뭐예요?

안영이 : 기획서들요. 제안 올렸다가 거부당한 것들요. 제가 디벨롭할 게 있을지 살펴보려고요.

장백기 : 안영이 씨는 좋겠다. 선임이 할 일 딱딱 던져주고.

안영이 : 주기는 누가 줘요? 저희 팀 오늘 전부 외근이라 대면도 못했어요.

장백기 : 그럼 안영이 씨가 알아서 결정한 겁니까? 그러다 까이면 어쩌려고...

안영이 : 장백기 씨, 아직 인턴입니까? 인턴은 배우는 게 목적이라 시키는 일 받아 잘하면 되지만, 우린 직원이잖아요. 자기가 할 일을 자기가 결정할 수도 있는 거죠.


 작품을 읽을 때의 상황과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작품임에도 이 장면이 인상 깊은 이유만큼은 매번 달라지지 않았다. 

 '참 대단하다. 어쩜 저렇게 적극적, 진취적, 자기 주도적으로 일할 수 있지. 나는 저렇게 하고 있나?'  

 대답은 언제나 '아니오.'였다. 


 장백기와 안영이라는 인물이 작품 전체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는 뒤로하고 이 장면만 보면 회사가 둘 중 누구를 더 좋아할지는 자명해 보인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과 스스로 일을 찾아 만들어하는 사람. 누구나 아는 당연한 일이지만, 이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단순한 '귀찮음'부터 해봤자 인정받지도 못할 일이라는 생각까지. 수많은 변명과 핑계, 그리고 몇 가지 납득할만한 이유들이 당연함을 가로막는다. 그 고생을 해가며 일해봐야 누가 알아주나. 월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집에 1분이라도 일찍 가는 게 정답일 수도 있다. 


 주체적으로 고민하며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훌륭한 일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처럼 누구나 아는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 아니라 대단한 일이다.

 



《미생》 을 본 후로 내 회사 생활의 워너비는 언제나 안영이였다. 똑 부러지는 일처리, 사람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 실력에서 나오는 여유와 남을 살리면서 자기도 살릴 줄 아는 내공,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할 줄 아는 모습까지. 이렇게 많은 배울 점 중에서도 가장 존경스러운 점은 역시나 저 주체적인 모습이었다. 이제 직급으로만 따지면 내가 더 높으신 분이 되었지만, 이런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발췌

 

 슬프지만 누군가의 주체성이 대단해 보인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주체적이지 못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엘리베이터 앞에서 안영이와 마주친 것이 장백기가 아니라 이번 주의 나였다면 그녀는 내게 어떤 말을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대사가 원작에서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그럼 반대로 그녀가 지금의 내 상황이었다면 어떨까. 그녀는 분명 이 상황에서도 - 중간중간에 몇몇 고난이 있을지언정 - 놀라운 역량을 발휘하여 이 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 분야에서도 능력을 인증받을 것이다. 

 

그녀에 비해 턱없이 무른 내겐 너무나도 어려운 미션이겠지만 마냥 무기력해 있는 것보다는 안영이처럼 되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 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회차의 《미생》 에서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 안영이라는 인물이 더 기억에 남았다. 


 다음에 《미생》 을 읽을 때는 엘리베이터 앞의 안영이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가 나의 전문성을 바라긴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