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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Jan 29. 2021

용감한 수필가

글쓰기의 어려움과 몽테뉴의 《수상록》


 제목을 무엇으로 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1:1로 정확히 대응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에세이보다는 수필이 더 넓은 개념'이라는 말이 있길래 그제야 겨우 제목을 정했다. 에세이스트보다는 수필가로 하자. 용감한 수필가. 




 수필(隨筆) 또는 에세이(essay)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산문 문학이다. 주제에 따라 일상생활처럼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경수필과 사회적 문제 등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중수필로 나뉜다. 특히 중수필에서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쓴 것을 칼럼이라 한다.
- 출처 : 위키백과 > 수필 (https://ko.wikipedia.org/wiki/%EC%88%98%ED%95%84)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초보에게는 특히나 더 그렇다.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떠든다."는 비난을 듣지나 않을까 겁나기도 하고 괜히 얕은 생각을 세상에 드러냈다가 무시당하는 것은 아닌가 두렵기도 하다. 짧은 배움과 생각으로 쓰인 글이 본래의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끄적여 서랍 속에 넣어둔 글을 세상 밖으로 꺼내기는 더욱 어렵다. 어디 그뿐일까. 소싯적에 싸이월드를 좀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오글거리는 개똥철학으로 가득 찼던 다이어리가 몇 년 후의 나를 얼마나 수치스럽게 만들 수 있는지. 그래서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비슷한 의미의 단어 사이에서 한참을 머뭇거려야 겨우 한발 나갈 정도로 느리고 더디다.


 대체 수필이라는 건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막막한 마음에 다시 한번 인터넷에 의지하다가 에세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미셸 드 몽테뉴의 저서 《수상록》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프랑스 역사상 가장 험악한 시대에 쓰인 문집으로, 단순한 은둔 생활자의 한가로운 글이 아니며, 온갖 거짓말과 교만과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시대에도 자기만은 진실하게 살아 보겠다는 자기 수련으로부터 출발하였다. 무엇보다도 사람은 자기를 소중히 해야 한다면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 토론과 회의 진행방법, 신앙과 과학, 어린이의 교육, 남녀평등과 성(性) 문제, 문명과 자연, 재판과 형벌, 전쟁의 참화, 식민(植民) 정책의 비리(非理) 등,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 생각하며, 그것들을 격언과 일화, 시(詩)와 유머와 역설(逆說)을 섞어가면서 항상 자유로운 인도주의자답게 겸손한 시론(試論) 형식을 빌어 담담히 이야기한다.  
- [네이버 지식백과] 수상록 [Essais, 隨想錄] (두산백과) 중 발췌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소개글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수상록》은 인생의 모든 문제에 대해 진실하게 생각해보는 자기 수련의 목적으로 쓰게 된 글이고, 그것이 오늘날 에세이라는 장르의 원형이 된 셈이었다. 몽테뉴는 《수상록》의 서문에서 책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독자여, 여기 이 책은 성실한 마음으로 쓴 것이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내 집안일이나 사사로운 일을 말하는 것 말고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음을 말해둔다. 추호도 그대에게 봉사하거나 내 영광을 도모하고자 쓴 책이 아니다.  
- 미셸 드 몽테뉴,《수상록》 서문


 몽테뉴는 다른 사람의 시선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글을 써나갔던 것 같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위에서 아래, 앞에서 뒤, 오른쪽에서 왼쪽까지 철저하게 묘사하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한 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그는 용감한 수필가였음이 틀림없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수많은 노랫말들이, 글들이, 이야기들이 "너답게" 살라며 우리를 격려하지만 이 응원의 말들은 응원을 받는 이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아는' 상황에서 '용기를 내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나답게 살기 위해선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아직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전제 조건도 충족시키지 못했으므로 세상의 시선에 맞서 '나답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지 못하지만,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그렇게 알아낸 '나답게 살아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 같다. 어렵다고 건너뛸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 어렵다. 


 나다운 것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나다운 것을 알아낼 수 있을까. 

 몽테뉴도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수상록》을 쓰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어떻게 하면 에세이를 잘 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웹서핑의 목적은 몽테뉴가 누구인지, 《수상록》은 어떤 내용인지 찾아보는 것을 거쳐 '나다운 것이 뭘까?', '어떻게 해야 나다운 것을 알 수 있을까'로 변했다. 그러던 중 국내에 출판된  《수상록》의 여러 판본 중 한 권의 뒷 표지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두렵다면, 삶이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수상록》을 읽자!
- 당신은 남들에게 자랑하기 위해 가짜 인생을 사는가?
- 아니면 자신의 만족과 재미를 추구하며 진짜 인생을 사는가?
-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내 삶은 행복해질 수 있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진실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용기가 필요한 작업. 

 한편 한편 글이 쌓이는 만큼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막 용기를 낸 수필가가 조금은 느리고 더디더라도 멈추지 않기를 바라며, 《수상록》을 읽어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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