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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Jan 31. 2021

잡독(雜讀)의 역사

읽기만 해도 돈을 벌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게 "취미가 뭐예요?"라고 물으면 "책 읽는 것 좋아해요."라고 말하곤 한다. 재미없고, 무난하고, 뻔한 대답인 것쯤은 알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할 말이 없어 억지로 꾸며낸 거짓말은 아니다.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딱히 종류를 가리지 않고 재미만 있으면 다 읽는 잡독(雜讀)가.



 부모님이 사주신 만화 위인전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만화로 된 60권짜리 삼국지 덕분이었을까. 어려서부터 나는 '읽는' 것을 좋아했다. 뭘 그렇게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열심히 읽었다. 책을 읽으면 부모님이 칭찬을 해주셨던가? 그 칭찬이 좋아서 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정말 재미있어서 좋아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많이도 읽었다. 차 타고 나들이를 갈 때도 차 안에서 책을 읽었고, 화장실에 갈 때도 책을 가지고 들어갔다. 아마 내 눈이 나빠진 여러 이유 중에 잘못된 독서 습관의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부모님은 "공부해라"는 말 대신 "책 봐라"라고 말했다. 그 말에 "공부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공부를 하기보다는 책을 봤다. 공부를 하겠다고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책을 보다가 엄마가 과일이라도 가져다주려고 들어오면 보던 책을 집어던지고 공부를 하던 척했다. 생각해 보면 딴짓하던 것을 몰랐을 리는 없고, 딴짓이라고 하는 게 책을 읽는 것이었으니 그냥 봐준 게 아닌가 싶다.


 세상이 테란, 저그, 프로토스 세 종족에게 점령당해 놀이터에서 함께 놀던 동네 형, 동생, 친구들이 PC방을 다닐 때, 나는 도서 대여점에 맛을 들이기 시작했다. PC방에 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도서 대여점을 간 횟수가 월등히 많았다. 그때 나를 대여점으로 이끈 것은 『퇴마록』과 『드래곤 라자』였다. 돌이켜 보면 당시엔 어려서 세계관이나 등장인물들의 철학 같은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재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는 됐는지 두 작품에 깊이 빠져들었다. 판타지 소설과의 만남이었다.

 중학교 3년은 말 그대로 판타지 소설에 미쳐있던 시기였다. 도서 대여점에 가면『퇴마록』과 『드래곤 라자』뿐 아니라 수많은 작품들을 쉽게 구해 볼 수 있었다. 쓸 수 있는 용돈에 비해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 문제는 같은 처지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해결할 수 있었다. 각자 취향에 맞는 소설을 하나씩 빌려 학교에 가져오면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읽을 순서를 정해 책을 분배했다. 그러면 그날 하루의 독서가 시작되었다. 몇몇 요령 좋은 친구들은 수업시간에도 책을 읽었지만 요령도 없고 용감하지도 못한 나는 쉬는 시간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시간에 잘못 걸려 책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대기 중인 친구들의 원망과 그 책을 빌려온 친구의 연체료를 부담해야 했고, 무엇보다 교무실로 찾아가 선생님에게 압수당한 책을 받아오는 것까지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이 다른 친구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의 전부였다.

 이렇게 집중을 해도 물리적인 시간엔 한계가 있으므로 책을 다 읽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이면 우리 집과 정 반대 방향인 친구의 집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남은 분량을 기어이 다 읽어냈다. 친구가 집에 가면 이 책을 반납하고 내일은 또 새로운 책을 빌려올 테니 오늘 다 읽지 못하면 내일 빌려올 책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부모님의 지인들이 나를 '걸어 다니면서까지 책을 볼 정도로 공부를 좋아하는 모범생'으로 오해하는 일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더 이상 친구의 귀갓길을 함께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이과생 치고 언어 영역의 점수가 꽤나 좋은 편이었는데, 아마 이때 자연스레 익히게 된 집중력과 빨리 읽는 습관 덕분일 것이다.


 '고등학교에 가면 공부해야 하니까 판타지 소설은 이제 끝이야!' 라며 도서 대여점을 끊었지만, 읽을거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에는 언어영역이라는 과목이 있었고 문학이라는 수업이 있었고 논술을 대비해 시사 상식을 키우기도 해야 했다.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이나 비문학 모음을 떳떳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었고 자습 시간엔 신문을 읽는 것까지 허용되었다. 스스로는 이게 공부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어 가장 좋았던 점은 언제 무엇을 읽어도 혼날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생증만 있으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마음껏 빌려 볼 수 있었으므로 돈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내게 도서관은 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라기보다는 책을 빌리러 가는 곳이었다. 표지가 예뻐 보이거나 제목이 그럴듯해 보이는 책을 시작으로 온갖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던 것 같다. 세계 고전, 인문학, 예전에 보던 판타지 소설부터 에세이, 철학서까지. 실상은 혼자 살며 얻게 된 자유를 누리느라 독서의 우선순위가 한참 뒤로 밀려있었지만 어쨌든 가장 많은 분야의 책을 읽던 때였다. 이해한 것보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훨씬 많은 때기도 했고.

 군대에서는 사회에 복귀하면 뭔가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 싶어 자기 개발서에 빠지기도 했다. 그 책들을 읽으며 했던 결심들의 10분의 1만 지켜냈어도 지금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테지만 지난 일이 되어버렸으니 별 수 없다. 20대에, 30대에, 40대에 꼭 해야 할 xx가지 일들 같은 말에 질려버리지 않았다면 좀 달랐을까.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읽고 싶어 읽는 책 보다 필요에 읽는 책이 더 많아졌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관심이 없지만 구글이나 아마존의 미래 전략이 무엇인지 찾아 읽어야 했고, 임원과 면담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의 추천 도서를 읽어야 했다. 꼭 누가 하라고 하는 건 이상하게 싫기 마련인데, 그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관심 없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의 재미는 더 커졌다는 것이었다.



 이런 잡독의 역사를 함께 겪어 온 내 방의 책장은, 지금 온갖 종류의 책들로 가득 차 있다. 좋아하는 책들로만 가득 찬 서재를 꾸민다는 버킷 리스트를 이루기 전까지는 이 책장으로 버텨야 하는데 그러기엔 읽지 않는 책들도 너무 많아져서 올해는 책장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한 번씩 다시 읽은 뒤에 재미있는 것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처분하기". 

 읽어야 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어서 읽게 되는 책들만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생길 서재에 채워 넣는 것이다.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해서 언제 뭘 뽑아 읽어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서재라니. 아, 생각만으로도 행복하다.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읽었던 『허생전』에는 허생의 아내가 "내가 당신 다 먹여 살리는 건 아냐, 선비 질도 장인 일도 장사도 못 하면 차라리 도둑질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오라"며 허생에게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의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그러게. 정말 책을 읽기만 해도 돈이 나오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것 만으로 돈을 벌 수 있으면 공부고 뭐고 때려치우고 평생 책만 읽을 수 있을 텐데'라고. 책을 읽는 것 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아직도 찾지 못해 매일매일 출근하는 충실한 회사원으로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읽기만 해도 먹고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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