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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Feb 23. 2021

팀장님도 참 불쌍해

 얼마 전 동기들끼리 모여있는 단체방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왔다. 새 팀으로 이동한 후에 일이 너무 많아 힘들다는 하소연이었다. 예전엔 '힘내라'던가 '얼른 끝내고 가라'같이 훈훈한 대답도 가끔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이런 답변을 찾아볼 수 없다. 'ㅋㅋㅋㅋㅋ' 하고 웃고 말거나 '때려치워' 정도는 예삿일이고 아무 반응이 없는 경우도 많다. 어느 새 일이 많아 힘들다는 동기의 하소연을 웃음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훌륭한 직장인이 된 동기들. 우리가 그날 가장 크게 공감한 말은

야, 적당히 해. 그렇게 열심히 해봐야 팀장밖에 더 되냐

는 말이었다. 



"난 팀장이 될 거야. 그리고 나중엔 임원까지 할 거야."

 팀장이나 임원이 해적왕도 아니고 회사에서 자기 입으로 이렇게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설령 욕심이 있어도 겸손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굳이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특이한 점은 요즘 주위를 보면 리더가 되고 싶지만 겸손하기 위해 조용히 있는 사람보다 정말 그 자리에 뜻이 없음을 드러내 놓고 거부하는 이가 훨씬 많아졌다는 점이다. 주위 사람들 뿐 아니라 여러 임원들에게도 역량을 인정받았으나 3년째 팀장 자리를 고사하고 있는 책임님이 대표적인 예다. 원래 생각도 없었는데 주위 동기들 사이에서 하나둘씩 팀장이 나오니까 괜히 뒤처지는 것 같아 덜컥 "하겠다"고 말해버렸다는 분이 있는가 하면, 팀장을 하지 않으면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팀장을 하기로 했다는 분도 있다. 이들이 모두 겸양과 겸손 때문에 이렇게 말한 걸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자기 팀장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데, 팀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많이들 달라졌다. 예전엔 팀장이 모든 직원의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다면 요즘은 '팀장도 사람인데' 라거나 '팀장도 불쌍해' 같은 말이 더 많이 나온다. 팀장이 불쌍하다고 하는 이유도 대체로 비슷하다. 하는 일은 많은데 그에 비해 보상은 없다는 것이다.

 팀장님들은 참 많은 일을 한다. 팀의 실무 전반은 물론 HR과 관련된 내용도 챙겨야 하고 팀 막내 사원부터 위의 임원들까지 상대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일만 해도 이런데 보이지 않는 일은 더 많겠지. 일만 많은 것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서, 회사 게시판에 직원의 징계 관련 글이 올라오면 팀장이 최소 1명씩은 포함되어 있다. 죄목은 관리감독 소홀.

 그렇다고 특별히 더 보상을 받는 것이 있냐고 하면 그렇지도 않다(고 한다. 이 부분만큼은 팀장을 해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팀장을 해보셨던 분, 후보자인 분, HR관련 부서에서 있는 분 가릴 것 없이 모두 입을 모아 같은 이야기를 하니 딱히 거짓인 것 같지도 않다. 팀장이 따로 받는 것이라곤 팀장 수당뿐인데, 그래 봐야 야근 많이 하는 직원보다 급여가 적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임원이 될 수도 있다는 기약 없는 희망으로 열정 페이를 받아가며 버티는 자리라는 소리까지 나올까. 

 이렇게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하면서 열심히 일을 하지만 팀원들은 불편해하고, 그렇다고 임원들 사이에 낄 수도 없어 팀장들은 항상 주변인 신세라고 한다. 본래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외로워진다지만 요즘 팀장님들은 특히나 더 그래 보인다. 

 이렇게 불쌍하게 고생하면서 팀장 하느니 일찍 퇴근해서 자기 삶도 찾고 가족과 시간도 보내고 다른 부수입 거리를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막중한 책임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상을 주는 것도 아닌 자리에 누가 앉고 싶어 할까. 그래서 요즘 내 주위 사람들은 누구도 팀장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식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분위기가 조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누구도 조직을 끌어가는 자리에 앉고 싶지 않아 하는데 그 조직이 과연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열심히 해봐야 팀장밖에 안되니 적당히 해라."라고 말한 동기는 입사 초기만 해도 "그래도 회사에 들어왔는데 팀장도 하고 임원도 해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이였다. 그런 그조차도 팀장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위 선배들도 팀장 자리에 대한 욕심보다 회사 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바뀔 여지도 없을 것 같다. 수당 조금 받아가며 팀장 하느니 일찍 퇴근해서 주식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더라도 야근수당 받아가면서 일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고 현명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 시대. 나보다 훨씬 똑똑한 이들로 구성되어 있을 인사 조직에서 이런 문제를 모를 리는 없고,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아는 이가 없으니 그저 궁금함을 삼킬 뿐이다.


 예전에 CEO와 만나는 직원 협의체 활동을 할 때의 일이다. 과장님 한분이 "팀장님들이 행복해야 팀원들도 행복하다."며 팀장의 복지를 높여달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한참 주니어여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만큼 신입사원보다는 팀장님들에게 가까운 연차가 되어서일까. 팀장도 사람이고 팀장도 불쌍하다. 그러니 가끔은 말 잘 듣는 부하직원이 되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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