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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Mar 01. 2021

퇴직 인사드립니다.

 익숙한 이름으로 발송된 메일 하나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가는구나. "가는구나, 아쉽네." 인지 "역시나 가는구나." 인지. 그것도 아니면 "너마저 가는구나." 일까.

 알 수 없는 기분으로 그가 보낸 메일을 읽었다. 예의 바른 인사말로 덮어둔 그의 마지막 메시지는 퍽 간단했다.

"감사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을 찾으러 갑니다."


 그는 "뭐 재미있는 것 없냐?"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다. 무심한 눈빛을 하고는 매일 만나는 팀원에게도, 업무상 알게 된 동료에게도 그렇게 물었다. 그렇게 매번 같은 질문을 하고 다니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눈을 반짝이며 상대의 앞으로 바짝 당겨 앉았다. 온갖 것에 흥미를 보이고 쫓아다니는 시도가 언제나 성공적일 수는 없었지만, 그는 한 번도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나 혈기왕성했던 것도 아니었다. 무기력한 몸짓으로 느릿느릿 움직이는 그를 보면 배터리를 조금이라도 길게 쓰려고 절전모드로 설정해 둔 것 같았다.


 내가 듣는 모습이 그에게는 흥밋거리였을까. 딱히 자극을 주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그는 나와의 이야기를 즐겼다. 덕분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꽤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는 대안 없는 무모한 모험을 매우 경계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이익이나 인생이 걸렸다고 생각되는 중대한 선택 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최소한 본전, 그 이상이 담보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던 그가 마침내 회사를 떠난 것이다.


 빈손으로 돌아올 모험은 시작도 않는 그였다. 모험을 결심하게 만든, 그가 찾은 보물지도는 무엇이었을까. 부러움과 질투심이 함께 들었다. 똑같이 회사에 다니는 판에 박힌 삶 속에서 그는 무엇을 본 것일까.

 절전 모드였던 그의 배터리는 비로소 전력으로 동작할 것이다. 재미있는 일들을 잔뜩 찾아오겠지. 힘들었던 일도 재밌었다고 할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모험담을 늘어놓을 그와 다시 만날 날을 그려본다. 그 날의 그의 모습과, 나의 모습을.


 좋은 여행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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