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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May 27. 2021

다시 쓰는 자기소개

에세이

 브런치 이곳저곳을 뒤적이다가 마이 홈… 이라고 해야 할까, 막상 부르려니 뭐라고 해야 할지 정확한 명칭을 모르겠는 페이지에 적어 둔 작가 소개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처음 작성할 때만 해도 무척 고민해서 썼던 말이었는데 다시 보니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무언가 빠진듯한, 부족한 느낌. 대체 뭘까. 작가로서의 자신을 소개해 본 적이 없어서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자기소개라는 게 원래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던가.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기소개가 가장 쉬웠던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XX 초등학교 X학년 X반 XXX입니다." 글자로만 봐도 머릿속에 운율이 자동으로 재생되는, 어쩌면 우리의 부모님도 하셨을지 모르고 나도 했고 요즘 초등학생들도 하고 있는 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마디는 그야말로 자기소개의 정석과도 같은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기본적인 자기소개는 저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더 이상 운율을 타며 말하지 않을 뿐 전하는 메시지는 대동소이했기 때문이었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이미 서로 아는 사이였으므로 굳이 자기를 새로 소개할 일도 많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기소개는,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대체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하나. 자기소개가 처음으로 어려워진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20살의 첫겨울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속했던 동아리는 이 시기면 졸업한 선배들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대면식 자리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자기소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무척이나 막막했다. 고등학교 선배들을 만나는 자리였으니 출신 고등학교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졸업한 지 더 오래된 초, 중등학교를 얘기하는 것은 더더욱 그랬다. 이제 더 이상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교는 아직 합격 발표도 나지 않았던 터라 내 이름 앞뒤에 붙일만한 것들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XXX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참 좋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같이 식상한 말로 자기소개를 마치고 말았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 1년 전의 나와 같은 처지에 놓인 후배는 당당하게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빛과 소금 XXX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막내의 당당함, 솔직함, 그리고 어쩌면 적당한 귀여움 덕분에 선배들은 뜨겁게 호응했고 나 역시도 감탄의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20살의 첫겨울 후에는 다행히도 속할 곳이 생기고 해온 것들이 생기면서 자기소개를 할 때면 이름의 앞뒤에 무언가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 XX학과 XX학번 XXX입니다. ㅁㅁ에 다니고 있는 XXX입니다. ㅇㅇ 팀에 있던 XXX입니다. 그동안 어떤 어떤 프로젝트를 했었습니다. 자기소개를 하게 될 때면 '나도 "여러분의 빛과 소금" 같은 것을 해볼까' 싶기도 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무난히 넘어갈 수 있었으므로 그런 모험은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 때 했던 자기소개의 정석으로 다시 돌아간 셈이다.



 이런 내게 브런치의 작가 소개는 다시 20살의 첫겨울을 떠올리게 했다. 글 쓰는 것과 관련해서는 아직 어디 속하지도 속한 적도 없고 해온 것도 이룬 것도 없는지라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막막했던 것이다. 처음 작가 소개를 적을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내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였다. 그래서 나온 답이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였다. 이 정도면 소개가 되겠다 싶어 적어뒀던 그 말이 오늘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는데 장래희망만 말하고 만 느낌. 장래희망도 물론 훌륭한 자기소개지만 그것만 적어두기엔 뭔가 아쉬웠다.

 막상 작가 소개를 고치려고 하니 가장 먼저 떠오른 말은 글 쓰는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이 말을 몇 번 되뇌다 보니 마치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본캐고 글을 쓰는 내가 부캐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배우, 뮤지션, 예술가, 그리고 꿈꾸는 무언가가 있는 이들이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배우, 뮤지션, 예술가, 그리고 꿈으로 자신을 소개하듯 나도 직장인이 아니라 글 쓰는 이가 본캐이고 싶었다. 글 쓰는 직장인이 아니라 회사에 다니고 있는 글 쓰는 사람. 보고, 듣고, 뛰고, 겪고, 먹고 생각하고 마침내 쓰는 사람.


하, 되, 먹, 갖.
하고 싶고 되고 싶고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나를 설명한다.


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는 글을 쓰는 것이고, 되고 싶은 것 또한 직장인보단 글 쓰는 사람이므로 회사에 다니고 있는 글 쓰는 사람이라는 소개야 말로 나를 제대로 설명해 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또 변덕스럽게, 슬그머니 작가 소개 문구를 바꿀지 모르지만 당분간은 나를 이렇게 소개하기로 한다.


 글 쓰는 직장인(X), 회사에 다니고 있는 글 쓰는 사람(O). 보고, 듣고, 뛰고, 겪고, 먹고, 생각하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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