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text Jun 02. 2021

난 그렇게 쓰이고 싶지 않았어

사람의 쓰임새

“사람에겐 누구나 쓰임새가 있어. 회사에서도 똑같아. 다만 회사가 바라고 원하는 쓰임새는 개인의 의지, 성향, 관심사 같은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위에서 나한테 바라는 역할? 애들 쪼고 다른 팀이랑 싸워서 성과 만들어 오는 거야. 난 그렇게 쓰이고 싶지 않았어.”


 속해있던 조직에서 차기 팀장으로 내정되었던 선배가 조직을 옮기면서 해던 말이다. 그는 몇 차례의 권고와 회유에도 팀장 자리를 거절했고, 끝내 연말 조직개편 시즌에 입사 이래 10년이 넘게 몸담았던 고향과도 같은 조직을 떠나 새로운 조직으로 이동했다. 주위 동료들의 인정, 그간 받아왔던 좋은 평가, 약속되었던 팀장 자리 같은 것을 모두 뒤로한 채. 선배의 이 말을 듣고 나는 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자기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스스로 결정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로서는 꿈도 꾸지 못한 얘기다.


 아주 오래도록 만나온 사이가 아니고서야 이제 어떤 모임이나 조직에 새로 속하게 될 때면 그 안에서 나의 역할이 무엇 일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 모임에서는 내가 가장 어리니까 소위 말하는 막내 역할을 해야겠구나, 어디에서는 중간쯤 되니까 위아래가 잘 섞일 수 있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야겠구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똑같은 것을 조직에 함께 속한 다른 이들에게도 바라게 된다. 나보다 어린 이가 있다면 그가 막내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중간 연차의 후배가 있다면 막내와 선배들 사이가 잘 섞이도록 노력해 주었으면, 나보다 선배가 있다면 흔들림 없이 우리를 잘 이끌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나의 조직 안에도 이렇게 많은 바람들이 얽혀 있다.


 이런 각자의 바람들만으로도 복잡한데 만약 이 조직이 공동의 목표를 가진 곳, 그러니까 회사에서의 팀 같은 조직이라면 복잡도는 훨씬 높아진다. 사람들끼리 잘 지내기 위한 이런저런 노력 외에도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여러 역할이 추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슬프게도, 조직이나 다른 이들이 내게 바라는 역할과 내가 스스로 바라는 역할이 일치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선배의 조직은 싸움꾼이 인정받는 곳이라고 했다. 성과를, 실적을 만들어 오라며 위에선 아래를 쥐어짜고 아래는 더 아래를 쥐어짜야 하는 구조. 맡은 업무를 열심히 했을 뿐인데 선배의 이미지는 어느새 ‘아랫사람들을 잘 쪼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옆 조직의 임원은 “네가 그렇게 애들을 잘 쫀다며? 너 같은 애 하나 있으면 걱정이 없겠다.”라고 말하고, 후배들 중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그 선배에게 당한 피해자 모임 같은 것도 생겼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한테 팀장을 하라는 건 뭐겠어. 애들 쪼아서 성과 만들어 오라는 거 아냐. 내가 애들을 잘 쪼는 것처럼 보이니까, 자기들한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니까 나를 그렇게 쓰고 싶은 거지. 그런데 난 그렇게 쓰이기 싫었어. 내가 왜 그런 소리까지 들으며 다녀야 되나 싶더라고. 그래서 옮긴 거야. 지금 잘 나간다는 그 팀장님? 그 팀장님이라고 맨날 주말도 없이 다른 팀이랑 싸우고 싶겠냐. 그런데 위에서 자기 대신 싸워줄 싸움꾼을 원하고, 싸움꾼이 필요한 자리마다 그 팀장님을 앉히잖아. 회사는 그 팀장님을 그렇게 쓰는 거야. 요새도 계속 싸우고 다니시지? 얼마나 힘들겠냐. 어휴, 난 싫어.”


 몇 년 전에 나는 A 업무를 하고 싶은데 팀장님은 B 업무를 맡겨서 한동안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오죽 심하게 고민했으면 평소엔 하지 않던 이직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간의 커리어와도 전혀 맞지 않던 그 업무를 바꾸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던가. 다행히 팀장님과 이야기도 잘 되고 타이밍도 맞아서 업무를 바꿀 수 있었다지만 앞으로의 회사 생활도 이렇게 잘 풀릴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리더의 뜻, 회사의 뜻을 꺾고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그때 충분히 경험했다. 그러면 앞으로는?


 좋아하는 게임 중에 축구팀의 감독이 되어 구단을 운영하는 게임이 있다. 전권을 가진 감독이 되어 선수를 영입하고 전술을 짜서 높은 성적을 내고 구단의 재정도 관리하는 그런 게임이다. 이 게임을 하면서 가장 골치 아픈 상황 중 하나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포지션에서 뛰지 못하는 일이 지속되면 선수가 찾아와 불만을 토로한다는 것이다. “감독님, 저는 주전 선수로 뛸 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벤치에만 두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감독님, 저는 그 포지션이 아니라 다른 포지션에서 뛰고 싶습니다.”하는 식인데, 이럴 때면 선수가 원하는 대로 해서 불만을 달래주거나 설득을 통해 현재 상황을 납득시켜야 한다. 그렇지도 않으면 감독의 권위를 내세워 “내 말을 들으라.”라고 찍어 눌러야 한다. 이런 방법이 통하지 않으면? 선수는 구단을 떠나고 싶다며 자신을 이적시켜달라고 통보하고야 만다.


 게임 속 감독이 된 입장에서야 선수들의 이런 불만이 마음에 들 리 없다. 성적이 좀 나고 선수들의 요청을 들어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성적도 나빠 내 감독 자리마저 위태로울 때 이런 불만을 이야기하면 그 선수가 더 밉기 마련이다. 좋은 말로 한번 달래 보다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으면 권위를 내세워 그를 압박하는, 가장 편한 방법을 찾게 된다. 선배의 말을 듣는 동안 내게 불만을 제기했던 게임 속 선수들이 자꾸만 생각났던 것은 왜일까.


 내가 바라는 쓰임새와 회사에게 요구받는 역할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간극을 참을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수용할 것인가 불만을 제기할 것인가. 불만을 제기했을 때 그것을 해결하려는 자와의 의견 대립도 고려해야 한다. 그의 설명이 납득할만하다면 좋겠지만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러다 보면 지금의 조직을 떠나야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다만 일을 아예 그만둘 것이 아니라 다른 팀이든 회사든 속하려면 다른 곳을 갈 수 있는 실력과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선배는 이 모든 고민을 했고, 필요한 실력과 용기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마침내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택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바라는 것만 많은 회사 생활에서 자기가 원하는 방식을 택한 선배의 모습은 무척 여유로워 보였다.


 직장인들은 모두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문맥에 따라 언제든 더럽고 치사해서 때려치우겠다는 각오로도, 사직서를 낼 만큼 힘들지만 어떻게든 참아낸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그런데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가슴속에 사직서 이전에 다른 것을 품어야 할 것 같았다. 조직이, 회사가 내게 바라는 역할은 무엇인가. 그들은 나를 어떻게 쓰고 싶어 하나. 나는 그것을 해낼 수 있나. 그 일은 내게 맞는 일인가. 내게 맞지 않는 일이라면 나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인가. 평소에는 해보지 못했던 질문들. 그냥 돈 벌러 다니는 곳이라는 이유로, 하루하루 보내기도 벅차다는 이유로 멀찍이 미뤄두었지만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다시 쓰는 자기소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