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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Jun 04. 2021

시작이 반인데 그게 너무 어려워

에세이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던 이의 단편 소설을 읽었다. 어느새 3 회독째. "어떤지 읽고 감상평 부탁해요." 하면서 전해받은지도 1달은 된 것 같은데 나는 아직도 감상평을 전해주지 못했다. 얼마나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지 아는데도 그랬다. 이거, 서운하단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그의 이번 소설은, 그간 그가 써온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무척 재미있고 흡입력도 대단했다. 작품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했지만 모르고 읽는다고 해서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가 풀어낸 대로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짐작하거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잘 모르는 단어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 쓰인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 나의 감상을 정리하지 못했던 걸까.


 그것은 마치 음식을 먹고 나서 맛 평가를 해야 하는데 '맛있다'는 말 말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느낌과도 같았다. 아쉽게도 내겐 어떤 재료의 쓴맛과 어떤 재료의 달달함이 잘 어우러져서 씹을 때마다 깊은 풍미가 느껴지고 조화가 어떻고 하는, TV에서나 볼 수 있는 맛 평가를 할 능력은 없었다. 감상평이라는 것은 어떤 말로 해주어야 하는 걸까. 어떤 말을 해야 작가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주는 걸까. 정답은 쉬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이들은 감상평을 어떻게 쓰나 싶어 인터넷을 뒤져봤다. 인터넷엔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자신의 감상을 정리해 두었다. 영화 곳곳에 숨겨진 비유와 상징을 찾아내 자신만의 해석을 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글 속에 담긴 메타포에 대해 이야기를 한 사람도 있고, 그 노래를 들었을 때 있었던 일을 풀어놓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각자가 느낀 바를 감상평으로 엮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감상을 풀어놓고 엮은 방식을 시도해 보려 했지만 맞지 않는 옷인 양 영 어색했다.


 그의 글에 대한 감상을 처음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코로나가 없을 때는 글쓰기 모임 사람들과 매주 만나 서로의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바뀐 것은 내 생각을 글로 적어 줘야 한다는 것뿐인데 어쩜 이리 어려운지. 분명히 푸는 방법을 아는 문제에서 숫자만 바뀐 건데도 답을 내지 못했던 수학 문제가 떠올랐다. 어렸을 땐 독후감 대회에서 상도 몇 번 받아봤고 군대 시절에는 독후감으로 무려 포상휴가까지 나왔던 몸이었지만 한 작품의 서평을 쓴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럼에도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이걸 계속 쥐고 있는 것은 내게도 스트레스였다. 문득 점심때 상무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스트레스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걸 해버리는 거야.
해버리면 그 순간 스트레스는 없어지거든.
하지 않고 미뤄두고 남겨두니까 스트레스가 되는 거지.


 그래, 해버리자. 별 도움이 안 되면 앞으로 내게 부탁 안 하겠지.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는데 맛있다는 말 말고는 맛 표현을 못하겠는 기분이야. 그래서 감상평을 쓰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라는 변명을 앞세운 뒤에 내가 느낀 것들을 조심스레 정리했다. 이 부분은 이렇게 느껴졌고 이 부분에서 주인공이 한 행동은 잘 이해되지 않았고 이 부분은 몰입감이 정말 대단했고... 막상 쓰다 보니 꽤나 많은 생각을 담게 되었다. 그렇게 내가 느낀 점을 담은 감상평을 그에게 전달했다. 100% 맘에 들진 않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담아낸 것이었다.

 내 감상평을 읽은 그는 이것저것 몇 가지에 대한 내 생각을 추가로 물었다. 그의 질문에 답을 하길 몇 번. 그가 "재미있게 읽고 감상평까지 주어 고맙다.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내 감상평이 부족해서 그가 실망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최근에 쓰고 있는 다른 소설이 있는데 이것도 완성되고 나면 감상평을 줄 수 있겠냐고 물어온 것을 보니 내 감상평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미뤄뒀던 숙제를 하고 나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막상 해보니 금방 끝났는데 왜 그리 어려워하고 오래 끌었던 걸까. 내 생각을 다 말해줘야지, 작가에게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줘야지, 소설책 뒤에 실리는 서평처럼 써서 주고 싶은데! 적어도 그가 내게 써줬던 감상평처럼 훌륭하게 말해주고 싶어! 같이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혼자 지레 겁을 먹었던 것 같다. 시작이 반인데 그 시작을 너무 어려워했던 것이다.

 그가 쓰고 있는 다음 소설이 언제 완성될진 모르겠지만, 그 소설의 감상평은 부담감을 내려놓고 일단 뭐라도 적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시작을 너무 어려워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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