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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Jul 30. 2021

한여름의 조직개편

회사생활 에세이

 입사 초기만 해도 연말 연초 정기개편이 전부였던 회사에 연중 비정기 개편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4~5년 전쯤이었다. 일반적으로 정기 개편은 어떤 조직을 없애거나 통폐합 하는 큰 규모로 이루어지고 비정기 개편은 정기 개편의 부족하거나 아쉬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조직을 세분화 하거나 신설하는 형태로 작게 진행되곤 했는데, 이번 7월에 이뤄진 개편은 그간의 것들과는 조금 달랐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인해 연초에 두개로 나누었던 A와 B 본부는 다시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고, 역시 연초에 신설되었던 신사업 본부는 만들어진지 6개월만에 사라져 각 사업 단위의 사업단으로 재편되었다. 이 말은 즉, 내가 속한 조직이 4년 연속으로 없어지게 되었음을 의미했다. 심지어 올해는 연말도 아니고 연중에.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찾아내겠다고 만들어진 신사업 본부의 본부장 자리는 연초에 만들어졌을 때부터 없어질 때까지 반년동안 계속 공석이었다.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중요한 조직인만큼 외부에서 훌륭한 인재를 영입할 예정이고 그때까지는 CEO 직속 조직으로 관리하며 신경쓸 것이라 말했지만 실무자들이 느끼는 것은 각별한 관심이 아니라 의사결정권자의 부재였다. 신사업 본부는 결국 리더를 맞이하지도 못하고 없어지게 되었다. 


 6개월동안 본부장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것을 본 임직원들은 이번 조직 개편에서 신사업 본부가 없어진 것에 대해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어차피 리더도 없던 조직이었으니 본부가 없어졌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본부 단위의 조직은 없어졌지만 그 아래 있던 기능별, 서비스별 조직은 그대로 유지되어 하던 일을 이어하게 되었으니 보기에 따라서는 그 의견이 맞을지도 몰랐다. 단지 이 작은 조직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신사업이라는 이름의 울타리. 그저 이 울타리 하나만 없어진 것 뿐이니까.


 그러나 신사업이라는 이름의 울타리가 허울뿐이었다고 해도, 그 이름이 사라졌다는 것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회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그 의지를 보이는 가장 쉽고 명확한 방법이 조직 개편이고 인사가 아니던가. 신사업 본부가 없어졌다고 해서 회사가 신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임직원들은 조직개편이 발표되자 마자 동요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신사업 본부를 없애다니. 우리 회사는 이제 신사업 안할건가 보네." 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내가 이래서 신사업은 안오려고 했는데. 다시는 신사업 하나 보자." 라고 하기도 했다. 신사업 딱지가 떼어졌으니 올해 막 시작한 서비스라 할지라도 바로 매출 압박이 시작될 것이라 우려하는 이도 있었고 새로 만나게 될 임원들에게 업무보고 할 걱정에 한숨쉬는 이들도 있었다. 


 그 동안 많은 조직이 생겼다가 없어지고, 다시 생기고를 반복했다. 이런 조직들 중에서는 신사업 이름을 달고 있는 조직도 여럿 있었다. 그래서 이번 조직 개편도 그냥 여느 때처럼 잠깐 뒤숭숭하다가 지나가나보다 싶었는데, 블라인드나 회사 내 CEO 핫라인 등 익명이 보장되는 채널에서 임직원들의 동요가 거세게 표출되었다. 그 동요를 그냥 두고볼 수만은 없었는지 회사도 공식 입장을 발표했는데, 요약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 외부 환경과 사업 전략 방향이 변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 필요했다.

- 1년 단위로 진행되는 정기 개편만을 기다리다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타이밍을 놓치는 것도 적절치 않다.

- 그간 신사업본부에서 검토하고 선정한 신사업들은 기능별로 CEO 직속 사업단으로 변경하여 의사결정의 자율성과 실행의 속도를 높이고자 한다.

-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그 폭도 점차 커져서 수시 조직 개편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회사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한 조직문화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이지만 그리 공감은 되지 않았다. "당장 6개월 뒤의 외부 환경과 사업 전략 방향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해 연중에 이렇게 큰 폭의 조직개편을 해야 했나? 그럼 대체 작년 연말 2~3개월동안 고민해가며 정했던 조직개편의 방향성은 무엇이었나. 어차피 본부장이 없어 CEO 직속으로 운영되던건 마찬가진데 뭐가 달라진다는 거지?" 같은 의문 때문이 아니라, 마치 이러한 반발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미리 답까지 준비해 둔 느낌 때문이었다. 


 이렇게 예상 답변까지 준비할 정도면서 회사는 왜 조직 개편을 하면서 임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할까. 하지 못한 것일까 하지 않은 것일까.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공감이나 설득 없이 이렇게 하기로 했고, 그래서 조직도 이렇게 바꾸기로 했으니 그렇게 아세요- 라는 식의 조직개편이 과연 옳은 방법인걸까. 어째서 회사의 조직 개편은 비밀리에 진행되다가 발표되고 나서야 그 의도를 임직원에게 알리는가.  조직 개편은 회사의 전략 방향을 담고 있어 대외비이기 때문인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설명하고 의견을 받고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을 찾아가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지루하고 어렵고 오래 걸리기 떄문에 이렇게 진행하는 걸까? 추진력이라는 이름으로?


 뭐가 옳은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회사는 어떻게든 변화에 대응하며 살아남는 것을 추구하고 사람은 그만큼 안정을 추구하기 마련이니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중이지만 큰 폭의 조직개편이 필요했다는 회사의 말도 맞을 것이고, 그 때문에 크게 동요하게 되었다는 임직원들의 말도 맞을 것이다. 조직 개편이 대외비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도 맞을 것이고 임직원의 의견을 구했으면 더 좋았으리라는 말도 맞을 것이다. 온통 맞는 말과 납득할 수 있는 이유들 틈에서 정작 내게 옳은 방향은 보이질 않는다.




 이번 조직 개편으로 인해 나는 4년 연속으로 조직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업무는 남아있고 팀은 살아 남았으니 팀원들과 함께 어디 새로운 조직으로 배치받아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어떤 일인지 새로운 임원에게 업무 보고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1~2개월 업무 보고를 하다 보면 10월이 되어 올해 성과를 정리하라고 할 테고, 그때부터 1~2개월간 내년 계획을 짜다 보면 또 한번 거대한 조직 개편이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격변하는 시장 환경과 그만큼 요동치는 회사 내에서 한낯 회사원 A일 뿐인 나는 어떤 태도로, 어떤 생각으로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걸까.


 회사에 다닌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여름 밤에 괜시리 생각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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