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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Aug 21. 2021

처음의 마음

당신은 부캐에 얼마나 진심인가요?

 나는 가끔 글을 쓴다. 직업으로써의 글쓰기는 아니고 취미생활에 더 가까운데, 취미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것들 중에서도 순위를 메겨보면 글쓰기는 4~5번째 정도다. 글쓰기는 하고 나면 참 뿌듯한데 그만큼 어렵다. 세상에는 이미 재미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이미 만들어진 것을 보는 것이 편하고, 감탄을 자아내기보다 감탄하는 것이 훨씬 쉽다. 나는 의지가 너무 약해서 이런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는 글쓰기를 좀처럼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시간이 있으면 취미 리스트의 상단에 있는 것들을 주로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나라도 반드시 글을 쓰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한 번은 유튜브를 한다던 회사 동기가 불러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는데, 이번에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며 자신이 쓴 책을 주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제 막 시작했으니 좋아요랑 구독을 눌러달라고 했었는데 그의 채널을 눈여겨보던 출판업계 관계자로부터 책을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워낙 열심히 사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꺼이 축하해주고 책을 받아왔는데, 어째서인지 집에 오는 길에 그가 무척 부러웠다. 똑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누구는 유튜브도 하고 책도 쓰는데 나는 대체 뭘 하며 사는 걸까 하는 자괴감 비슷한 감정도 들었던 것 같다. 매주 챙겨보던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는 날이었지만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또 한 번은 회사에서 영 기분 나쁜 일이 있던 날이었다. 사무실에서는 가급적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기분이 더 나빠져서, 퇴근할 무렵에는 가슴속에 분노와 짜증, 서운함과 실망, 막막함과 답답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골고루 뒤섞인 정체모를 무언가가 자리 잡아 버렸다. 마음속에 무거운 돌 하나가 자리 잡은 기분.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도,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재미있는 TV를 봐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이대로는 안돼. 더럽고 치사해서라도 내가 빨리 돈을 벌어서 이 회사를 그만두고 만다. 뭐라도 써서 반드시 대박 나고 말 테다. 그래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테다.’ 같은 생각으로 가득 찬다.


 이쯤 되면 나는 책상 앞으로 가 자리를 잡는다. 이 순간의 나는 무엇이든 써낼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가슴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이 불꽃이라면 하지 못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컴퓨터를 켜고, 하얀 워드 프로세서 창을 띄우고, 깜빡이며 재촉하는 커서를 보며 생각한다. ‘그런데 뭘 쓰지.’


 무엇을 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구상한 다음에 시작해도 헤매고야 마는 내가 홧김에 시작한 글을 마음에 들게 써낼 리 없다. 한두 줄 끄적이다 그마저도 지워내고, 다시 몇 글자를 적다가 저장도 하지 않은 채 파일을 닫아 버린다. 결코 꺼지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속의 불꽃은 어느새 사그라들고 그 자리로 졸음이 파고든다. 불순한 동기로 불붙은 열정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아, 오늘도 뭔가를 쓰기엔 틀렸다.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계속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왔다는 참가자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식당 일부터 배달, 막노동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했지만 언제나 음악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생계를 위해 식당에서 10시간 동안 요리를 하고 음악은 일이 끝난 후 3~4시간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고 할 경우, 어떤 일을 더 열심히 했을까. 어떤 일에 더 진심이었을까. 그는 요리사인가 뮤지션인가. 그는 주위에 자신을 무어라 소개할 것인가.


  부캐가 일상인 세상이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학창 시절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 차마 적지 못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부캐에 진심을 다한다. 그런 이들을 보고 있자면 작가라는 부캐에 대한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나부터 거기에 빠지고 다른 사람들도 빠트리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언제부턴가 글로 팔자를 고쳐먹을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글솜씨와 영감을 주는 글쓰기의 신이 있다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어 하는 사람과 팔자를 고쳐먹기 위해 쓰는 이 중에 누구에게 은총을 내려줄까. 글 쓰는 직장인이 아니라 회사에 다니고 있는 글 쓰는 사람이라고 호기롭게 적어둔 자기소개가 무척이나 부끄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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