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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Oct 17. 2021

도전 강박증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불안한 너에게

- 퇴직 인사드립니다.

 익숙한 이름으로 발송된 메일 하나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가는구나, 아쉽네.’ 인지 ‘역시나 가는구나.’ 인지. 그것도 아니면 ‘너마저 가는구나.’ 인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메일에 적힌 예의 바른 인사말을 읽은 뒤 메시지를 보낸다. 

- 너무 아쉽지만 더 좋은 기회를 찾아가는 거라고 생각할게. 잘 지내고 다음에 보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없어졌고 이직이나 퇴사도 흔한 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회사를 떠난다. 돈을 더 많이 주겠다는 오퍼가 와서 떠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고 코인이 대박 나서 이대로 파이어 족이 되겠다며 떠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무척 부럽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세상에 부러운 사람은, 부러울 일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이런 것쯤은 충분히 참아낼 수 있다. 하지만 듣고 나면 몇 날 며칠 동안 마음이 답답해지는 이유도 있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떠난다.”는 말이다.


 도전은 언제나 존중받는 덕목이다. 기존의 안정적이고 익숙한 것들을 떠나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 모르는 곳으로 떠나는 용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그가 가고자 하는 길에 행운이 가득하길 바라 준다. 그런데 이렇게 누군가의 도전을 응원해주고 나면, 내 맘엔 마땅히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깃든다. ‘나도 뭐라도 해야 하나. 어디라도 이직해야 하는 걸까.’하는 것이다.


 도전하는 이를 보고 있자면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 불안해진다. 이런 감정을 뭐라 해야 할까. 어쩌면 도전 강박증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전을 한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이대로 안주해 있는 것은 도태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한동안은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 나른한 주말 오후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잠깐 낮잠이라도 들었다간 소중한 시간을 그냥 날려버렸다는 자괴감이 몰려든다. 이 시간에 뭐라도 할걸! 정작 ‘무엇’을 할지는 전혀 정하지도 못했으면서.


 어째서인지 사람들은 참 숨 가쁘게 산다. 내게 지금이 내실을 채워야 할 때인지 휴식하며 숨 고르기를 해야 할 때인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이야말로 도전에 나서야 하는 순간인지 생각하기보다 일단 뭐라도 하려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야 뭐라도 하는 것이 나을 테지만 기왕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할 텐데. 남들이 투잡을 해서 돈을 벌었다니 그것을 해야 할 것 같고, 남들이 이직을 한다니 나도 해야 할 것 같고, 도무지 모르겠으니 서점이나 인터넷에서 보이는 내 나이대에 해야 할 몇십 가지 일들 같은 책이나 리스트를 보고 그것을 한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모습이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니 일단 뭐라도 하기 위해 할 일을 찾아 헤맨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 자신의 길을 찾아 도전하는 모습을 보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아, 저 사람은 뭔가를 찾았나 보다!’ 그가 지금 길을 찾았다고 해서 나도 반드시 지금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찾아놓은 길이 인생의 정답도 아닐 텐데.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그렇지가 않다.


 모두가 반드시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죄가 아니다. 또한 지금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 다음을 위해 휴식하는 순간이 평가절하 되어서도 안된다. 도전에 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 뭐라도 해야겠다 싶은 초조한 마음에 하는 선택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때를 기다리다 돌다리까지 두드려 보고 건너는 사람도 있는 법. 때가 되면, 좋은 기회가 있으면 알아서 움직일 것이다. 도전 강박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을 믿고 내실을 다지는 시간일지 모른다.


 뭐라도 해야만 할 것 같아 초조해하는, 오늘의 내게 이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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