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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May 06. 2021

나는 오늘도 치킨을 먹는다

치킨만큼의 행복, 우정, 그리고 무엇.

 세상에는 계량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주로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것들이 그런데, 이것들은 같은 상황이더라도 사람마다 그 정도를 다르게 느끼기 때문에 계량을 위한 절대적 기준이 없을 뿐 아니라 상호 비교도 불가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설명의 용이성이나 서로 간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비유적 표현을 써가며 계량할 수 없는 것을 계량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더 사랑해.”,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같은 말들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론 내게도 계량할 수 없는 것을 계량하기 위한 나만의 기준이 있다. 이 기준이라는 것이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바뀌거나 더해지기도 하지만 처음이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그것은 치킨이었다.      


 치킨이 계량할 수 없는 것들을 계량하기 위한 기준이 된 기원을 찾자면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 시절 엄마는 학교에서 상을 받아오면 치킨을 시켜주셨다. 상의 크기나 경중과 관계없이 치킨으로 칭찬과 축하를 해 주셨는데 이것이 어린 내겐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였다. 옆에서 함께 치킨을 먹던 동생이 “오빠 다음엔 상 언제 받아와?”라고 물어볼 때의 뿌듯함이란! 동생에게도 으쓱하고 부모님께 칭찬도 받는 데다 맛있는 치킨까지 먹어서 기쁜 그 감정의 정도. 그것이 바로 1 치킨만큼의 행복이었다. 어린 날의 포상과도 같았던 치킨은 자연스레 행복을 계량하는 단위가 되었다. 상을 받을 때는 1 치킨만큼 행복하고, 반 대항 축구 시합을 하다가 극적인 역전골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순간에는 2~3 치킨만큼 행복했다. 가끔은 엄마가 다른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그럴 때도 계속 치킨을 찾았다고 하니 나는 꽤나 치킨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날고 기는 친구들이 많아지기도 했고, 더 이상 초등학교 때처럼 상장을 퍼주지도 않는 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한 뒤로는 상을 받는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치킨을 먹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고, 먹고 싶다고 하면 부모님이 얼마든지 사주셨지만 그때만큼의 기분은 나지 않았다. 초등학생의 순수함을 잃었기 때문일까. 이 시기의 치킨은 그저 맛있는 음식이었고, 치킨으로 행복을 계량하는 일도 자연스레 줄었다.


 치킨이 계량할 수 없는 것을 계량하기 위한 기준으로 다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이 시기의 치킨은, 그리고 치킨과 함께했던 소주와 맥주는 친구들과의 우정을 계량하는 단위가 되었다. 술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째서인지 재미난 기억의 대부분은 술과 치킨이 함께했다. 기숙사에 들어가기엔 시간이 늦어 동아리 선배의 자취방을 찾아가며 숙박료로 치킨을 사 갔던 일, 박지성이 출전하는 경기를 봐야 한다며 친구들과 모여 치맥을 먹다가 옆방 사람에게 항의 방문을 받았던 일, 별로 경험도 없던 내게 연애 상담을 하고 싶다며 치킨을 사들고 찾아온 후배까지. 실제로는 치킨보다 다른 안주를 훨씬 많이 먹었지만, 내겐 치킨이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었고 추억이었다.


 시간이 흘러 주위의 누구도 학생이 아니게 된 지금.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친구들을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자 치킨은 다시 무엇을 계량하는 단위로서의 의미를 잃고 그저 편하고 맛있게 먹는 음식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치킨 하나를 먹을 때 느끼는 행복이나, 우정이 쌓이고 있다는 느낌, 만족감 같은 것은 어른이 되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내 돈으로 언제든 충분히 사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치킨의 귀함을 잊게 돼서 그런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치킨을 즐겨 먹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전만큼의 충족감이 없다 뿐이지 치킨은 여전히 맛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먹다 보면, 언젠가 계량할 수 없는 무엇을 다시 치킨으로 계량할 수 있게 되는 날이 또 찾아오지 않을까. 그게 무엇이 될진 모르겠지만 그간 치킨으로 계량해 왔던 것이 내게 무척 소중한 것들이었던 만큼, 새로 계량하게 될 무언가도 그럴 것이다. 치킨을 먹다 보면 그 소중한 무언가를 더 빨리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치킨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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