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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Aug 25. 2021

눈치라는 이름의 필터

효과가 너무 좋아서 더 아쉬운.


 ‘주위 사람들에게서 모티브를 얻지만 그 주위 사람들이 자기를 빗대어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될까 두려워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구상했던 적이 있다. 소설 속 캐릭터들은 모두 작가의 어느 일부분이 투영된 분신 같은 것이라고 했던가. 이제와 생각하건대 그 소설가는 틀림없이 나의 일부였을 것이다.


 에세이를 쓰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를 포장하게 될 때가 있다. 가급적 담백하고 과장 없이 쓰려 노력은 하는데 잠시만 한눈을 팔면 어느새 포장을 하고 만다. 별것 아닌 생각을 큰 깨달음인 것처럼 쓴다거나 대수롭지 않은 행동에 깊은 의미가 담겨있는 척하는 것이다. 단지 벌컥벌컥 마시려고 빨대를 쓰지 않았을 뿐인데 글로 옮길 때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고통받을 바다거북을 위해 한 행동인 척하는 식이랄까.


 이런 포장은 다른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를 쓸 때면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 실제로는 몹시 기분이 나빴으면서도 쿨한 척하거나 이해하는 척하곤 한다. 내 잘못이 있었다면 최대한 줄이거나 그마저도 어쩔 수 없던 일인 척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포장하는 것이 좋고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면, 다른 이와의 이야기를 포장하는 것은 내 글을 읽을 누군가에게 비난받거나, 혹은 그 글이 분란의 소지가 될까 두려워서다. 회사 사람의 좋지 않은 면에 대해 써둔 글을 우리 팀원이 읽었다면, 그런데 그 글의 작가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자기를 흉본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뭐 이런 것들. 아아. 나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것이 두렵다.


 나는 눈치를 참 많이 본다.     

 아닌 척 대범한 척하지만 거의 항상 눈치를 보고 있다. 어지간히 집중하고 있을 때가 아니면 마치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것처럼 끊임없이 주위를 살핀다. 눈치가 빠르거나 좋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위기가 변하는 그 미묘한 순간을 알아차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분위기 파악을 하지 못해서 결국 더 눈치를 보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우스운 것은, 글을 쓸 때도 이렇다는 점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한참 엮어낸 뒤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전에 나는 내 주위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글을 쓰게 된 모티브가 되어 준 사람일 수도 있고, 오늘 회사에서 만난 직장 동료일 수도 있다. 내가 지금 쓴 이 글을 그들이 읽게 된다면 뭐라고 생각할까. 이 글이 내가 쓴 것임을 알게 된다면 또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관점에서 생각했을 때 꺼려지는 부분이 있으면 슬그머니 올라가 내용을 한차례 고친다. 이렇게 한번 퇴고를 하고 나면 이번엔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이 글을, 내가 쓴 것임을 알고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웃겠지? 틀림없이 웃을 것이다. 개똥철학자 나셨다며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면 다시 올라가서 내용을 또 고친다.


 포장하다 지치거나 충분히 포장되었다고 느껴지면 그제야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 이 과정에서 글이 처음의 의도를 잃고 개성도 재미도 없는 그저 그런 글이 되어버릴 때가 많지만 그렇다고 기껏 쓴 글을 그냥 없애버리는 것은 또 아쉽다. 무언가를 써냈다는 자아도취, 자기만족을 위해 적정선에서 타협하고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한다. 일기와 에세이의 가장 큰 차이는 그 글을 글쓴이 혼자 보는가 다른 이들도 보는가의 여부라고 했던가. 나는 이 부분의 타협이 항상 어렵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바깥에서도 샌다고, 온전히 홀로 만들어 내는 글에서도 이럴진대 다른 이와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눌 때는 눈치를 더 많이 볼 것이다. 눈치를 볼 시간도 없이 말을 했다면 그 대화가 끝난 이후에라도 반드시 눈치를 보고야 말 것이다. 잘못 말한 것은 없나, 괜한 말을 하진 않았나.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이 이리저리 포장되다 보면 나도, 내 글처럼, 아마도 가지고 있었을 날카로움이나 총기는 사라지고 개성도 재미도 없는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눈치라는 이름의 필터가 용기, 자신감, 소신, 당당함이나 떳떳함, 창의력과 아이디어, 재기 발랄함 같은 것들을 자꾸만 걸러낸다. 이런 것들이 걸러지면 걸러질수록 나의 시선은 내가 쓴 글이나 나의 내면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향한다. 자신의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밝힌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 스스로에게 거짓됨 없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낸다는 것은 얼마나 당당해야 할 수 있는 일인가.


 한편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나를 응원한다. 조금만 더 용기를 내자고. 조금만 더 당당해져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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