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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Dec 11. 2021

임원의 시간, 직원의 시간

생각하는 톱니바퀴 (1)

 친구의 회사에는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임원이 한분 계시는데, 이 임원은 매일같이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누구보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퇴근한다고 했다. 한 번은 이 임원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누군가가 “당신보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직원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라고 물었는데, 그 임원의 대답은 이랬다고 한다.     


“나는 1년 단위로 성과가 정해지는 단거리 선수이기 때문에 이런 생활이 가능하고,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회사 생활이 많이 남은 장거리 선수인 셈이므로 나와 같은 스케줄이 아니라 각자만의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여러분이 나보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분과 내가 받는 급여에도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것은 당연한 일이므로 아무렇지도 않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흘러 어느새 12월이 되었다. 이 무렵의 회사는 매년 그렇듯 무척 뒤숭숭하다. 11월 말에 시작된 개인 인사평가 발표를 시작으로 임원인사, 조직 개편, 팀장 발표, 팀원 인선까지 굵직한 이벤트가 줄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누가 살아남을지, 조직이 어떻게 개편될지, 그리고 누가 어느 조직에 속하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혼란의 시기. 이 시기가 되면 나는 임원들이 나와는 다른 시간축을 살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임직원 여러분’이라는 말로 묶여 같은 회사를 다니기는 하지만 임원과 직원의 시간축은 서로 다르다. 이는 각자의 인사발령 시기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임원인사는 보통 11월 말, 늦어도 12월 초면 발표되지만 직원의 인사는 12월 말은 되어야 정해진다. 각각의 한해 성과를 평가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임원은 10월, 직원은 11월 정도까지의 업무로 평가를 받는 셈인데, 이는 곧 한해의 끝이 10월이나 11월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간의 흐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11월 말에 임원의 인사가 정해지고 약 1주일 뒤에 팀 단위 조직 개편 결과와 팀장 인선 결과가 발표된다. 그로부터 약 2주 동안 팀원 인선이 이뤄지고 12월 말이 되어야 비로소 조직 세팅이 완료된다. 새로운 팀의 팀원들과 상견례를 하다 보면 잠깐의 시간이 또 지나 연말 연초. 팀원들의 새해는 이렇게 1월 1일 즈음에야 시작된다.     


 한해의 끝이 서로 다른데 시작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임원의 새해는 인사발령이 난 그 시점부터 시작된다. 10월까지 한 일로 다음 해의 계약 연장/해지 여부가 결정되니 어찌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있을까. 임원으로서는 조직이 최종 세팅되는 연말까지 팀원 인선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임원에겐 새해지만 직원에겐 아직 연말인 이 시기. 하루빨리 일을 시작하고 싶은 몇몇 임원은 “우리는 12월부터 새해인 겁니다 여러분!”이라며 구성원들에게 새해에나 어울리는 의욕 넘치는 모습과 일처리를 요구한다. 그러나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로서는 아직 자기가 어느 팀에 속해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 명확히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이므로 이만한 의욕을 갖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갈등이 생기기라도 하면 임원은 직원을 ‘열심히 뛰자는데 따라오지 않는 사람’으로, 직원은 임원을 ‘자기 혼자 마음 급하다고 날뛰는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하루살이의 한시간과 바위의 한 시간이 서로에게 같은 의미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임원으로서 직원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간축에 맞춰 업무를 끌어가는 것이 옳은지, 직원으로서 임원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들의 시간축에 맞춰 따르는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이 뒤숭숭한 시기에 서로 다른 시간축을 살기 때문에 이런저런 차이가 있다, 만 생각해도 어느 정도의 갈등은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Adobe Stock



 회사를 벗어나 나라는 개인의 새해는 보통 크리스마스 무렵에 시작된다. 보통 그 무렵이 되어야 스타벅스에서 주는 새해 플래너를 손에 넣거나,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플래너를 사기 때문이다. 나의 새해는 플래너와 함께 시작된다. 지나간 한 해의 플래너를 돌아보며 새로 산 플래너에 필요한 것들을 옮겨 적는 것으로 새해를 여는 것이다.     


 똑같은 나지만 직장인으로서의 나와 개인으로서의 나도 이렇게 다른 시간축을 산다. 개인으로써의 내가 뛰어야 할 거리는 회사원으로써의 내가 뛰어야 할 거리보다도 훨씬 길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시간축들 속에서 어떤 속도로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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