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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Dec 19. 2020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가장 기본적인, 그래서 가장 어려운.

 1년 중 가장 뒤숭숭한 시즌 돌아왔다. 12월. 아, 바야흐로 인사의 계절이다.


 팀장님들은 팀원들에 비해 1달 정도 먼저 새해를 시작한다. 팀장 발표가 나는 시점부터 그들은 새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몸은 아직 올해지만 마음은 새해인 이 시기에 팀장님들은 평소보다 더, 무척이나 바쁘다. 새로 만난 임원과 생각을 맞춰야 하고, 서로 간의 업무 인수인계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각자의 팀을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 개편은 업무를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팀원들은 올해 한 업무를 받아가는 팀에 속하게 된다. 문제는 기존 팀원이 새로운 조직으로 이동하고 싶어 하거나 팀이 아예 새로 생기는 경우다. 이 경우 팀장들은 본인이 발로 뛰며 팀 구성을 위한 최소한의 팀원을 확보해야 한다. (이건 아마도 우리 회사만의 독특한 시스템이 아닐까 싶 굳이 더 하지 않기로 한다. 어쨌든 팀원을 못 구해 팀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조직을 옮길 생각이 있다면 내가 힘을 써보겠다, 내년에 나와 함께 일하자." 라던가 "올해 한 업무가 우리 팀으로 오기 때문에 xxx님은 우리 팀에 오는 거로 확정이야."까지. 그간 들어본 적도 없던 세상 친절함으로 제안하는 팀장님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딱딱함으로 각자 팀원 확보에 여념이 없다. 원들도 유일하게 본인들이 갑이 될 시기라고 생각하는지 튕기는 사람도 있고 양다리를 걸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여 회사 전체가 무척이나 뒤숭숭해진다. 직속 팀장이 바뀌고 내가 어딜 가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하던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하다.


 하던 일도 잘 안 되는 이 시기에 회사는, 팀장님들의 입을 빌려 묻는다.

 "왜 조직을 옮기고 싶니?", "넌 뭐가 하고 싶은 거니?", "네가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일을 하는 것보다 기존에 하던 업무 계속 이어서 하는 게 회사 입장에서 더 좋은 거 아니니?", "그렇게 가고 싶다면 네가 하던 업무를 대신할 사람이 있니?", "이도 저도 아니고 딱히 생각해본 적 없으면 그냥 회사가 생각하기에 효율적인 팀에 배치한다? 괜찮지?"

 평소에 생각해본 적 없는 질문들인데, 뭐가 됐든 답을 달라며 무척이나 집요하 묻는다. 직원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해서 조직 개편을 했다... 는 얘기라도 듣고 싶은 걸까.


<<비정상회담>>, jtbc


 저 질문들에 잘 대답해서 회사의 인사 시스템과 소속 리더들을 납득시키지 않는 이상 조직 이동은 하늘의 별따기다.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 열심히 준비해도 회사라는 조직의 논리 앞에서 '조직 개편에 일개 팀원의 의사가 반영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구나' 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무리 팀을 옮기고 싶다고 하더라도 저 질문들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으면 그냥 회사가 지정하는 부서에 가는 수밖에 없다.




 만만치 않은 질문이지만 이 글을 쓰는 이유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기 위함이므로, 다시 질문을 정리해 본다.


- 왜 옮기고 / 바꾸고 싶은 것인가

- 그럼 무엇을 하고 싶은가

- 그것을 하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

- 지금 하던 일을 / 하던 방식대로 계속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닌가


 "올해 한 업무는 싫지만 이 분야의 일은 좀 더 하고 싶다"는 정도의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인사철을 맞은 내겐 무엇 하나 쉬운 질문이 없다.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회사가 지정해준 부서에 가서 올해 하던 업무를 계속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회사 밖에서도 크게 다를 바 없겠지. 해야 하는 것, 시키는 것만 하면서 살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된 것 같다.


와시다 고야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와우라이프

 회사에서 팀을 바꾸고 싶을 때도 이처럼 '왜 옮기고 싶은지'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무엇이 하고 싶은지' 같은 목표가 있어야 얘기라도 꺼내 볼 수 있다.  하물며 인생을 바꾸고 싶을 때는 어련할까. 내 다리를 열심히 긁어보겠다고 다짐한 시기가 좋지 못한 건지, 첫 질문부터 무척이나 무겁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질문.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뭐가 되고 싶은 걸까. 고 싶은 그것을 하면, 나는 행복할까?


 



「직장인 생활백서」, 사람인

 글을 마무리하면서 이미지를 찾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에 위의 이미지를 찾았다. 하고 싶은 일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라는 말이 무척이나 와 닿았다. 그래, 찾아보고 없으면 만드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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