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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Dec 23. 2020

어쩌면 전부 다 정답이었을지도?

정답 과잉 속 선택의 어려움

 지난 2년간 사내 벤처 과제를 하기 위해 파견 나갔던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 인사철에 회사로 복귀하려고 열심히 알아보는 중인데 혹시 xxx 팀장에 대해 좀 아느냐는 것이었다.

 어려운 과제를 하는 만큼 아예 별도 조직에 속하도록 발령도 났고, 평가(=급여)도 좋게 받는 조건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돌아오려고 하는 걸까. 궁금해 묻는 내게 그는 단숨에 이렇게 말했다. "여기, 죽도 밥도 아니야. 최악이야 최악."


 그가 말한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였다. (물론 이렇게 논리 정연하게 정리해가며 말하진 않았다.)

- 벤처처럼 일하자면서 불필요한 절차, 검토, 보고가 너무 많음

- 보고를 하면 결론이 나지 않고 좀 더 검토해 보라는 말 뿐임

- 어쩌다 결론이 나더라도 기존의 방향성을 크게 바꾸는 결정뿐임

 결국 그는 지난 2년 동안 한 일이라곤 보고서 만들기, 시장 동향 파악하기, 프로세스 만들기 뿐이었다며 분개했다.


 조직이 갑자기 커지면서 체계적으로 일하기 위한 프로세스가 필요했다는 점은 그도 충분히 인지하고 공감했다. 그가 문제 삼은 것은 이 프로세스가 체계도 없이 너무 많기만 하다는 것이었다. A 조직에서 온 상무님은 이 프로세스를 얘기하고, 외부 B회사에서 영입된 PM은 본인이 다니던 회사의 프로세스를, 새로 오신 전무님은 이런 것을 하자고 하니 할게 너무 많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팀장님이 "매주 돌아가면서 시장 동향이나 인사이트를 줄 수 있는 기사들을 찾아 공유하자. 전에 있던 팀에서 이런 걸 했더니 업무를 하는 시야도 넓어지고 좋더라." 고 말했다는 대목에서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의 실망과 분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신사업해보겠다고 의욕적으로 나간 곳에서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만 하자고 하니 화가 날 법도 하지. 그러나 100%는 아니었다. 그의 조직에 적용된, 또는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받은 것들은 사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그리 나쁘지 않은, 몇몇은 좋아 보이기까지 하는 것들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직의 리더들이 제안, 권고, 지시한 것들은 사실 생각해보면 각자가 겪은 긴 회사생활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 유용했던, 이를테면 성공 경험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문제는 이 방법들이 아니다. 이 좋은 것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되는대로 다 섞었더니 죽도 밥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 문제였던 셈이다.



 

 잘 살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고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자기 개발서를 탐독하던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는 그리 길게 가지 못했는데, 한동안 빠져있던 자기 개발서를 더 읽지 않게 된 이유는 그 책들이 결국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삶의 지침이 되어줄 것 같던 메시지들이 어느 순간 다 똑같이 느껴지고, 이로 인해 희소성을 잃어 자연스레 귀하지 않게 된 것이다. 책 표지의 20대에 해야 할 것들, 30대에 꼭 해야 할 것들, 40대에, 50대에... 같은 제목을 보고 있자면 숨이 막히기도 했다.

 

 그래서 그 뒤엔 한동안 성공한 명사들의 강의나 인터뷰를 찾아봤다. 그들은 모두 나름의 인생철학을 말했는데, 내가 읽었던 자기 개발서와 일치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래서 얻은 결론? "아, 결국 정답은 없구나."였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그 모든 것들도 사실은 정답이 아니었나 싶다. 정보 과잉처럼 찾아본 정답도 과잉이어서 그중 내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고르지 못한 것이 문제지 그 답들이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고 해야 할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동안은 하지 못했던 것. 앞으로는 넘쳐나는 정답들 중에 내 답은 무엇인지, 잘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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