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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Dec 26. 2020

리더가 젊어지면 조직도 젊어지나요

생각하는 톱니바퀴(5)

 지난달 말, 저 높은 곳부터 시작했던 인사 개편이 드디어 끝났다. CEO가 바뀌었고, 임원 인사가 있었고, 팀장 발표를 거쳐 팀원 인선까지.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1달 동안 이어졌던 격동의 시기. 올해 인사도 참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주위 사람들의 평을 들어보면, 올해 인사의 가장 큰 키워드는 '조직을 젊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수학 공식처럼 "젊은 리더를 임명한다 = 조직이 젊어진다"가 과연 옳은 명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튼 올해의 조직 개편은 이를 최우선으로 하여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한쪽에서는 좋은 성과를 낸 젊은 팀장들이 이른 나이에 임원이 되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좋은 성과를 내었음에도 임원을 오래 하셨던 분들이 계약 해지라는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이런 기준은 비단 임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회사에서 소위 '리더'라 불리는 팀장 레벨의 인선에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었다고 한다. 옆 조직에서는 나와 입사가 3달밖에 차이 나지 않는 30대 중반의 매우 젊은 팀장이 탄생하기도 했다. 이 연차, 이 나이에 팀장을 다는 것이 아직은 파격이고 예외 케이스였겠지만 앞으로 이런 인사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점점 더 젊은 팀장들이 탄생할 테고, 조금 나이 많은 팀장은 자연스레 직을 내려놓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리더들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서, "우리 회사가 이만큼이나 젊어졌습니다."라고 말하겠지.



 

 마지막 팀원 발표까지 난 후, 조직도를 훑어보던 책임님이 말했다.

"팀장들이 정말 젊어졌네. 이제 나보다 어린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 책임님은 리더는 되고 싶지 않아 제안받은 팀장직을 고사하고 그냥 팀원으로 남은 분이셨다. 팀장직을 거절했던 것이 본인의 선택이었으므로 자기는 나이 어린 팀장 밑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 아무 문제도 불만도 없는데, 정작 팀장들은 나이 많은 팀원 받기를 꺼려해서 인사철만 되면 참 어렵다고 말했다.

"하긴 나 같아도 그럴 거야. 나보다 많은 형님들이 팀원으로 있으면 이거 하라 저거 하라 지시하기도 불편할 거고. 해마다 내가 회사에 있을 자리가 좁아지는 것 같다."

 책임님의 말에는 씁쓸함이 짙게 묻어났다.


 회사가 젊어지면 뭐가 좋은 걸까. 회사는 왜 젊어져야 하는 걸까? 트렌드에 더 민감해서? 젊은 감성으로 고객을 대할 수 있어서?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 우리 회사의 고객들이, 아니 우리나라 전체가 점점 고령화되고 있는데 회사는 왜 젊어져야 하는 걸까. 회사는 젊어지는데 우리의 고객은 나이 들고 있으면, 회사가 젊어지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 걸까? 극단적으로 리더들이 다 30대까지 젊어졌는데 우리 회사의 고개은 50대가 가장 많다면, 회사는 이 대다수의 고객을 위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인사 개편에 나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아직 충분히 능력이 있어서 경험과 연륜을 기반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도 별 수 없이 낙오되고 누락된다. 실력이 없어서 밀려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나이를 한 살 더 먹었기 때문에 밀려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나는 나이를 먹어가고, 리더들은 젊어지고, 젊은 리더는 나이 많은 팀원을 불편해해서 내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는 책임님을 보고 있자니 나도 함께 씁쓸해졌다.


 회사는 자꾸 젊어지고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 단기간에 리더가 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당장 리더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회사에서 말하는 젊은 리더의 범위에 들 수 있는 것도 몇 년 남지 않은 셈이다. 그 기준선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나도 팀장들이 기피하는, 팀장보다 나이 많은 팀원이 되는 거겠지. 팀장이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그래도 실력이 있으니 불편함을 감수하고 함께 일하자'라고 생각할 정도의 실력을 갖출 수는 있을까. 어느 정도나 되어야 그런 실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시대, 하지만 여전히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한국사회, ⓒ 트렌드모니터


 아무리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외치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해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나이에 대한 선입견이 무척이나 강하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눈치 보며 밥을 사야 하고,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소소한 잡일을 해야 하는, 서로가 서로에게 나이에 '맞는' 행동과 사상을 요구하는 사회. 나이에 '맞는', 아니 '맞아 보이는' 자리에 있지 않고 '맞아 보이는' 모습이 아니면 이상하게 보는 사회. 이런 분위기는 분명 단시간에 바뀌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나이에 맞는 모습을 원하는 시선 속에서 살아야 한다.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설날 떡국을 두 그릇씩 먹던 어린 시절의 내게 "나는 이제 나이 먹는 게 걱정이다."라고 말하면 그 아이는 뭐라고 대답할까. 그 아이의 대답에 나는 또 뭐라고 대답할까. 선생님. 제가 이 회사에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은 걸까요. 이 시선들 속에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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