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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Dec 29. 2020

인상 2회 차를 맞이하며

제가 뭐 잘못했던 건 없죠?

['21년 팀원 인선 안내]

 온 직원이 약 1달기다려 온 게시글은 공지되자마자 미친 속도로 조회수가 올라갔다. 그렇게 조회수를 높이는 사람엔 당연히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새로고침을 누르며 기다리다가 공지되자마자 확인한 인선 결과. 파일을 열어 내 이름을 검색하고, 팀명을 확인하고, 다시 팀 이름으로 필터링. 팀원들 중 회사에 동명 이인이 있지는 않은지 조직도에서 확인하는 것을 끝으로 내년 한 해를 함께 할 팀원들이 누군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년을 함께하게 된 팀원들은 분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내 사정을 알게 된 동기는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적응은 좀 편하겠네.'라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형, 내가 다시 만나게 된 그들과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내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잖아?


"이래서 세상 착하게 살아야 된다는 거구나."

 식상한 관용구지만 마땅히 다른 말이 오르지 않았다.




 팀원들 누군지 확인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난번에 같은 팀이었을 때 이 분은 너무 하이텐션이어서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내년은 좀 다르려나? 이 분은 같은 팀이었던 동기한테 들은 바로는 업무 스타일이 엄청 깐깐하다던데 나랑 과연 잘 맞을까? 같은 것들.  


 그런 온갖 상념들 중에서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내가 예전에 뭘 잘못했던 일이 있는 건 아닐까?'였다. 돌이켜 보면 누구는 어떻다 누구는 저떻다 다른 이들에게 들은 적은 있어도 내가 어디 가서 새 팀원들의 험담을 한 기억은 없었다. 직접 잘못했던 일은 일단 없던 것 같고... 어디 가서 흉본 적도 없는 것 같으니 우선 다행이었다. 이게 뭐라고 이리 안심이 되던지.



형들 덕분에 살았어요

 

 자신의 죄를 돌이켜 본 후에 한 생각은 '이 사람들은 나와 같은 팀이 된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였다. 생각해 보면 이들은 각기 다른 시기의 나를 알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신입사원의 패기 넘치던 모습을, 누군가는 이제 막 대리를 달고 기고만장 모습을, 또 누군가는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나의 첫인상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의 기억 속 나는, 다시 1년을 함께 하기에 과연 좋은 동료일까,




 그 누구도 드러내 놓고 말하진 않겠지만, 모두들 각자의 기억을 기반으로 나에 대해 예측하고 있을 것이다. 그 예측의 결과가 '예전 그대로네' 일지 '전보다 낫네' 일지, 아니면 '예전만 못하네' 일지는 알 수 없다. 이런 부담들 때문일까. 인상 2회 차를 맞는다는 것은 무척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단순히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하나만 궁금했던 첫인상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이래서 세상 착하게 살아야 해."라는 말은 활용처가 무척이나 많다. 조금 과장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계없이 인간관계로 누군가와 얽힌 상황이면 언제라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이 말을 해야 할 일이 생길 때면 늘 '그래서 나는 착하게 살았나?'라는 생각을 함께 해보지만, 이것만큼은 참 확신이 서지 않는다.

 

 누군가를 다시 만났을 때 과거에 잘못한 것은 없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 소심쟁이의 연말은, 또 이렇게 답 없는 고민으로 채워진다. 새해가 되어 막상 팀원들을 만나면 이런 고민이 금방 부질없어질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역시 제 버릇은 남에게 주지 못하는 것인가 보다. 

 고민은 고민대로 남겨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어디 가서 다른 사람 흉보고 다니지는 말자 정도의 소심한 다짐 정도일 것 같다. 그래야 다음에 어디서 또 만나게 될지 모를 누군가와의 인상 2회 차가 평화로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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