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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Jan 16. 2023

나를 믿지 않는 나를 믿어

 생각하는 톱니바퀴

 일을 하면서. 회식을 하다가. 연말 동료 평가 때 뭐라도 적어내기 위해서라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다른 사람을 평가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이 말인즉 나도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을 일이 계속 생긴다는 뜻이다.


 다시 떠올리면 마음 아프니까 나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는 것으로 하고,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감사하게도 여러 사람들에게 참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참 고맙긴 하지만 스스로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참 꼼꼼하시네요!”라는 말이다.


 직장인에게 꼼꼼하다는 말은 사실 큰 칭찬이다. 내게 그런 말을 해 준 상대도 아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은 아닐 테니 내 모습 중 어딘가에서 꼼꼼한 면을 발견했다는 말일 텐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겉으로는 감사하면서도 속으로는 무척이나 의아하다. 내가 보는 나는, 내가 아는 나는 꼼꼼함과는 참으로 거리가 먼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 별명에는 '덜렁이'가 빠지지 않고 있었다. 덜렁거리느라 뭘 빼먹거나 깜빡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해 놓은 숙제를 집에 두고 가기도 했었고 – 정말 숙제를 했다는 말을 당연하게도 선생님은 믿어주지 않으셨다. - 준비물을 깜빡해서 실습을 해야 하는 시간에 짝꿍이 하는 것을 멀뚱멀뚱 구경만 하는 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통신병이었던 군대에서는 통신병에게는 무기나 다름없는 공구를 챙기지 않아 선임들에게 혼나기도 참 많이 혼났었다. 작업을 하던 천장에서, 맨홀이나 통신 단자함에서 잃어버렸던 공구를 찾을 때면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그렇게 헛웃음이 나곤 했다.


 이랬던 내가 꼼꼼하다는 소리를 처음 들은 것은 입사를 하고 5~6년이 될 무렵이었다. 입사 4년 차에 나는 그동안 하던 것과 다른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대량의 데이터를 추출하고, 분석해서 현황을 파악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숫자와 데이터를 봐야 하는 업무였다. 디테일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내겐 상극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는데 하필이면 평생 숫자만 보고 살아온 임원에게 매주 보고를 해야 해서 부담이 막중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숫자가 한 번에 딱 떨어지게 나왔다고? 내가 그럴 리가 없어. 다시 해야겠다. 이번주에 할 일을 왜 다 한 것 같지? 내가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적어둔 것들을 다시 봐볼까. 내가 짠 예산안이 시뮬레이션 결과랑 딱 맞는다고? 그럴 리가. 난 일평생 가계부도 한번 써본 적이 없는데?"


 뭐 이런 식이다.

 이런 자기 불신이 몇 년간 쌓이자 어느 순간부터 주위에서 나를 꼼꼼하고 디테일한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할지 모른다는 자기 불신 때문에 한 번씩 더 살펴보는 내 모습이 꽤나 꼼꼼한 사람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사실은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주위에서 하도 꼼꼼하다 꼼꼼하다 말해주니 한 번은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나 보다.' 하고 넘어갈뻔한 적이 있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MBTI 검사를 했는데 맨 마지막 글자가 J로 나온 것이다. 이제 나도 꼼꼼하고 계획적인 인간이 된 건가 싶어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재미있게도 회사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믿기 어려워했다. 특히 가장 강렬했던 아내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결과가 의심스러워 –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었구나. - 회사의 심리상담실에서 운영하고 있던 정식 MBTI 테스트를 받아보았다. 결과는 J가 아닌 P. 나는 비로소 올바른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했고, 아내도 ‘그럼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기분이 묘하긴 한데 무튼 그랬다.


 그 후로는 사람들이 꼼꼼하다고 말을 해주어도 나는 잘 믿지 않는다. 그들을, 그들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믿지 않는 것이다. 나는 분명 무언가를 빼먹고 실수할 것이 틀림없기 때문에 나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나를 믿지 않는 나를 믿는다.




 국가대표까지 하셨던, 북산고등학교 농구부의 감독인 안 선생님께서는 “풋내기가 상급자로 가는 과정은,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이 그 첫째.”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스스로를 신뢰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것과 같은 맥락 아닐까.


 나의 자기 불신이, 내가 상급자로 나아가는 길의 바탕이 되고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언젠가는 회사 밖 일상생활에서도 꼼꼼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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