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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영환 Aug 30. 2018

⑧ 전기자동차를 만든다는 것

메이커페어, 카트 어드벤처에서 배운 '메이커 정신'

이건 순서상 후반부인데,
약간 홍보성이 있음으로 미리 글을 쓴다.


(스압주의)


작년 이맘때쯤이었던 것 같다.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국회의 재단으로 되면서 그 과정에서 몇 달간 쉬는 시기가 있었는데, 때마침 '메이커 페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메이커 페어는 말 그대로 메이커(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의 축제다. 각자 만든 다양한 창작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선보이는 아주 창의적인 페스티벌이다.

The Heart of Maker Faire
올해만에도 전세계에서 150여개의 메이커페어가 열렸다.

나와 메이커페어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도 처음 열리는 메이커페어 였을 것이다. 당시에 Google 에서 스폰서십을 제공했는데, GDG(Google development group) Daejeon에서 강의한 것이 인연이 되어 몇몇 친구들과 참가했고, 우리 공간의 메이커 스페이스 '용도변경'의 멤버로서도 함께 참여했다.

GDG Daejeon에서 강의할 때와 첫번째로 열린 메이커 페어


그리고, 드디어 5년 만에 다시 메이커 페어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애정 하는 동생들인 팹브로스가 매번 메이커페어에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만들었는데, 드론 레이싱에 이어 이번엔 전기 카트(자동차) 대회를 열기로 한 것이다.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무조건 참여하기로 했다. 게다가 이 친구들은 굉장히 긱(Geek)스러움의 정점을 달리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뭐 없을까 하다가 약간의 브랜딩과 홍보를 돕기로 했다.

예지랑 얼렁뚱땅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었다
예지랑 엉렁뚱땅 '텀블벅'에 후원 프로젝트를 올렸다.




센스 있는 팹브로스에서 웬만한 기본적인 장치들은 이미 다 정해서 주문을 해놨었기 때문에,

참가팀들은 차체와 카울만 제대로 제작하면 되는 상태였다.

원래는 혁주와 참가하려 했는데, 시험기간이 겹쳤고 성수님도 개인 출마하기로 하고 대전에서 만들기로 해서,

결국, 나도 개인 출마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선택이 가져올 후폭풍을 그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어떤 컨셉으로 만들까 고민하다가, 어릴 때의 로망이었던 '포르쉐 550'을 만들기로 했다. 이 자동차는 제임스 딘의 애마로 유명했는데, 결국 그는 이 차를 몰고 시속 180km로 달리다가 사망했다. 그 뒤로 생산이 중단되어 버린, 이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복원하고 싶었다.


제임스 딘과 1955년식 포르쉐 550 spider

배워서 남 줄건 없다고  했던가.
꼬맹이 시절 나간 인터넷 정보검색대회 노하우로, 이 자동차의 도면을 구할 수 있었다.

이게 남아있는게 더 신기

우선, 바로 아이소핑크(압축발포소재로 일반 스티로폼보다 강도가 높다) 70T짜리 10개를 주문했다.

클램프로 고정하고 3M 77접착제와 폼본드로 접착했다. 면이 넓다 보니 생각보다 접착력이 약했다.



1800*900*70T짜리 직육면체 아이소핑크를 만든 다음에 대회 규정에 따라 사이즈를 맞춰 컷팅하고,

그 뒤에 도안을 스케치하고 열선으로 컷팅을 시작했다.

포르쉐는 개구리 눈 같은 헤드라이트가 포인트이기 때문에,

헤드라이트 크기를 고려하여 먼저 자리를 잡은 후 나머지 컷팅을 이어 나갔다. 이 헤드라이트는 대림 보니타 오토바이의 헤드라이트를 전압을 변경해서 사용했다.

9시간동안 컷팅만 했다......

밤이 깊도록 열선으로 끝도 없이 컷팅을 했다. 9시간의 사투 끝에 어느 정도 모양을 잡았고 이제는 면을 고르게 만들기 위해 샌딩을 시작했다.


마치, 도산지옥을 지나 화탕지옥에 가는 길 같았다.



드디어, 화탕지옥을 지났다. 잠시 쉬어갈 수 있게 되었다. 재키와 용용이가 다른 파츠를 만들고 있었다.


용용이가 뼈대를, 재키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후미등이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그 사이 나는 브레이크를 부착할 새로 주문한 사이즈업된 타이어를 분해하고, 혼다 CBR의 방향지시등을 후미등으로 개조했다.

원래 이 용도가 아니지만, 해킹이 필요했다.
타이어 공기압을 체크하고, 모터와 연결될 체인 바퀴를 타이어 휠에 고정시켰다.
브레이크는 시마노 사의 자전거용 디스크 브레이크를 달았다.
용접이 짱이다. 군대에서 했던 거랑은 차원이 달랐다.
바퀴와 브레이크도 달았다.
성식이형님이 조향축도 달아주고 차체도 보강해줬다. 에헤라디야.
방심하다가, 용접봉이 옷을 뚫고 들어와 내 살도 뻥 뚫어버렸다. 아주 고열로 한순간에 지져져서 피한방울 나지 않고 뚫렸다.
하체는 완성됐지만, 텅빈 작업실에서 카울 작업할 생각을 하니 왠지 외로워졌다.


여기까지가 그나마 쉬는 시간이었다.

다음은 공포의 한빙지옥이었다. 차체 외관을 FRP(강화플라스틱)로 다 굳혀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FRP를 경화제와 적절한 비율로 조합하여 경화되기전에 칠해야한다.

처음엔 유리섬유를 이용했으나, 생각보다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나머지 부분을 아주 얇은 메쉬로 대체했다.

심지어 FRP 한통은 엄청난 열로 용암이 되더니, 5분도 채 안돼서 굳어버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FRP의 능력을 실감했다. 순간 하와이인 줄 알았다. 용암은 정말 무섭다. 보여주고 싶은데, 놀라서 사진도 없다.

유리섬유와 FRP(강화플라스틱) 코팅
드디어, 모터도 달았다.

FRP로 강도를 보강했다면, 이제 퍼티로 외관을 보강할 차례였다.
이것은 마치 7개의 지옥을 다 지났는데, 염라대왕이 잘못 판단했다며 첫 번째 지옥으로 다시 가는 느낌이었다.

퍼티도 경화제를 섞어 아주 소량씩만 사용해야 외관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약 900번은 반복한 것 같다...
퍼티로 굴곡면을 더 채워서 입체감을 강조했다.


그리고 3일 동안 샌딩을 했다....


아이폰 수평계가 생각보다 정확해서 깜놀. 샌딩 이후에 보강 작업을 한번 더 했다.
실제 자동차 도색용 페인트와 프라이머를 사용했다.
자동차 핸들을 3D프린터로 만들려다가, 필라멘트 강도 때문에 CNC로 제작했다. 카울빼고 다 재밌었다.
도색 시작.

1955년도에 만들어진 자동차이기 때문에, 빈티지한 느낌이 나도록 무광과 유광을 적절히 섞어가며 도색했다.

도색을 다하고 난 뒤에는 투명 코팅을 한번 더 했다.

드디어, 배터리도 달았다.
브레이크등 때문에 FRP를 뚫을 때는 정말 마음이 뚫리는 것 같았다. ㅠㅜ
헤드라이트를 연결하고 신나서 놀다가, 퓨즈가 나가버렸지만 고칠 힘이 없었다. 어차피 대낮에 하는 경기라고 위안을...


그런데 이제, 시간이 없었다.

내일이 대회인데, 아직 도색 코팅이 굳지도 않았고, 자체를 제대로 고정시키도 못한 상태였다.

카울과 하체 프레임이 모터와 배터리 공간 때문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정 안되면, 한 손으로 운전하고 한 손으로는 카울을 잡고 달리려고 했다.


그리고 대회 전날 밤.

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레이싱 슈트를 만들었다.

레이싱 슈트의 영감은 '르망(1970)'에서 얻었다. 소울을 느끼기 위해 직접 이 영화를 다운받아 봤다. 실제 르망 24 대회 때 촬영해서 인지, 무성영화도 아닌데 대사도 거의 없는 정말 자동차 대회 다큐 같았다. 잠들뻔 했지만 옷을 만들어야 했다.


나는 이 영화의 '스티브 맥퀸'을 코스프레하기로 했다.

대학원 실험복을 영화 속 주인공이 입었던 옷으로 커스텀했다. 옷 카라와 지퍼를 동네 수선집 아주머니에게 사정해가며 차이나 카라로 바꾸었다.

영화 '르망'포스터와 '스티브 맥퀸'. 오른쪽 사진은 태그호이어 광고로 서울역에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다.


그런데, 패치가 문제였다.

태그호이어는 로고가 바뀌었고, Gulf 사는 쉐브론에 인수되어서 패치를 구할 수가 없었다.

결국 예지한테 부탁해서 패치를 주문 제작했다. 디테일이 전부다.

패치를 열로 접착시켜야했는데, 마침 나는 건식다리미를 사용하고 있었다.
면소재 나염용 아크릴 염료로 아주 정교하게 라인을 그렸다.



대회 당일 아침이 밝았다.

여기저기 메이커들이 아침부터 현장에 나와 자기 작품들을 세팅하기 시작했다. 분주함 때문에 더 설레었다.

마음을 부여잡고 데칼을 마저 완성했고, 포르쉐 앰블럼도 달았다.

예지가 대전에서 올라왔고, 메이커 페어 구경 온 선익이를 우리 메카닉으로 현장에서 스카웃 했다.  

분주한 아침. 재미있는 떨림이 오전내내 계속 되었다.
급조로 성식이 형님이 벨트로 차체를 고정시켜 줬다.
경기직전 떨리지만, 셀카를 좀 남겨보자.
이게 뭐라고 떨리더라. 마치 F1이라도 나간 것처럼 마음까지 코스프레 하는게 중요하다.


경기 시작 전,

F1에서 미리 한 바퀴 돌면서 타이어의 온도를 높이듯이, 우리도 메이커페어 페스티벌 현장을 퍼레이드 하면서 곧 있을 대회를 홍보했다. 각기 다른 전기 카트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경기가 시작되었다.


경기 영상! 하이라이트! ©팹브로스

경기의 소회를 굳이 자세히 적기보다는 위 영상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글로 구구절절 쓴다고 제대로 전달될 것 같지가 않다.

그것은 오직 자기가 직접 자동차를 만들고, 달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진짜 자동차는 아니지만, 보름 동안 오로지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만들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과 아드레날린이 있다.


신난 예지와 선익이.
재키야말로 최고의 메카닉!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성식이 형님의 매드맥스 자동차. 직업은 교수님이다....
팹랩 서울의 로드리고와 졸귀 아들.
아이들이 최고 좋아한다. 내가 부모라면 꼭 메이커 페어에 데려갈 것이다.
가장 고생한 팹브로스 용용, 재키와 함께!
2차 경기, 데스벨리. 배터리가 전부 소진될 때까지 가장 오래 달리는 사람이 우승하는 경기
우리팀. 예지가 결혼을 안 했다면, 다시한번 같이 나가보자고 진지하게 제안했을 것 같다...
참가자들과 단체사진.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공유했다.





손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다듬고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다.
- Edgar Tolson


내가 이번에 전기자동차를 만들면서 느낀 것은 '데이비드 랭'이 말한 것과 비슷하다.


메이커 정신은 다면적이다. '대충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배우기, 배운 것 공유하기, 프로젝트 중심으로 배우기, 시각화된 사고하기 등이 종합된 입체적인 것이다. 이 중 일부는 나와 메이커 사이의 뚜렷한 차이점을 정리한 것이고, 나머지는 긴 시간 동안 관찰한 미묘한 차이점이다. 때로는 좋은 질문을 통해 배우기도 했고, 때로는 큰 실수를 통해 배우기도 했다. 물론 나는 아직 모든 것을 배우지 못했다. 아직 수박 겉핥기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이러한 지각 역시 메이커 정신의 일부분이다. 이 사실은 나를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 Zero to maker


내가 알고 있는 모든 메이커들은 본인이 알고 있는 것을 타인과 나누는 데 기꺼이 시간과 열정을 쓴다.

나의 실수, 나의 무지를, 함께 하는 모두가 같이 극복하고 해결해주려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고, 겸손해졌다.

 

진짜 '배움'이란 자신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본인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메이커다.

일을. 관계를. 그리고 의미를 만들어낸다.

모두가 일상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본질들을 반추할 줄 아는 메이커가 되기를 응원한다.




2018 메이커 페어가 다음 달에 개최됩니다.

카트 어드벤처 대회 참가 접수도 받고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9/1일까지 신청해주세요:D

신청하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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