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니, 에릭 요한슨, 사사키 아타루. 이 세 사람이 남긴 말에 관하여.
각 문단 아래에 적힌 링크 속 그림 및 사진을 먼저 감상 후 글을 읽어주시길 권합니다.
늙어버린 우리 엄마의 얼굴을 보자 다리가 풀렸다. 나는 더 이상 떼도 쓰지 못하고, 울분을 터뜨리지도 못하고 아파하기만 하겠지. 우리 아빠도 마찬가지로 늙은 얼굴을 하고 있다. 호크니의 부모님 그림은 너무 사실적이라서 잔인하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초상이 있고 그 안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기 자신이 있다. 나는 너무 직관적이라서 호크니가 숨겨둔 독설을 깊이 받아들인다. 호크니는 이미 거듭나 있다. 친절하고 부드러운 화가 호크니와 매섭고 직설적인 비평가 호크니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앉아 있고 서로 다른 곳을 직시한다. 거울 안에는 십자가가 있고 거기에는 그림을 감상하던 내가 시뻘건 피를 흘리며 매달려 있다. 거울은 미로다. 들여다본 사람을 모두 가둔다.
- David Hockney, <My Parents(1977)>: https://www.tate.org.uk/art/artworks/hockney-my-parents-t03255
거울이 미로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다. 풀어야 할 난제는 거울이 미로인 동시에 그림에서 유일하게 남은 출구인가, 하는 대목이다. 과연, 반사가 아니라 관통될 수 있는가. 나는 에릭 요한슨 만큼 답답하고 비관적인 예술가가 없다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수학적으로 구획되고 설계된 그의 공간은 액자를 넘어 관객들이 설 자리까지 앗아간다. 오늘도 명쾌한 답을 가져오지 못한 나는 호크니의 부모님 그림을 깨부술 열쇠를 비평가에게 주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해답은 누가 내야 하는가. 나는 한강을 걷다 열쇠를 저 멀리 물 속에 던진다. 그러나 애초에 열쇠는 내가 쥐지 않았다. 자, 이제 믿음과 의심만이 여기에 남았다. 열쇠는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 답을 찾는다는 것은 시퍼런 한강 물에 몸을 맡기는 것과 같다.
독실한 신자였던 루터는 성경을 믿으며, 동시에 믿지 않았다. 그의 개혁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열쇠는 존재하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