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바라보는 한국전쟁, 항미원조
참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지만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다. 작년 10월 7일 BTS(방탄소년단)가 한국과 미국의 친선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가 수여하는 밴플리트상을 수여했다. BTS의 팬으로서 정말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후 중국 네티즌들이 BTS의 수상 소감이 잘못됐다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멤버 RM이 2분 5초부터 말한 "우리는 양국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와 수많은 사람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라는 발언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먼저, BTS가 수상 소감에 한국전쟁 이야기를 담은 이유를 알아보자. 이 상의 이름은 코리아 소사이어티 창립자인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밴플리트는 미 8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쟁 초기 교통사고로 워커 장군이 사망한 이후 밀번, 리지웨이를 뒤이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한국전쟁을 지휘했다. 정전협정 체결을 전후로 밴플리트 장군이 한국에 기여한 공로는 적지 않다. 육군사관학교 재건과 제주도 목장 건설 등 한국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밴플리트 장군은 한-미 우호의 상징 격인 인물이다. 특히 BTS가 상을 받은 시점인 2020년은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었으므로, 양국의 우호 단체에게 주는 메시지로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까지의 전쟁을 부르는 명칭은 나라마다 달라서, 그 국가가 전쟁을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지를 표면적으로 드러낸다. 한국에서는 '6.25 사변' 혹은 '6.25 전쟁'이라고 부르다 최근에는 '한국전쟁'으로 통일되었다. 미국 역시 'Korean War'를 사용한다. 반면, 북한과 중국에서는 완전히 다른 명칭을 사용한다. 북한은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명명한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삼각지에 전쟁기념관이 있다면, 북한 평양직할시에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있다. 북한 김일성은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전쟁의 목표로 했는데, 그들이 그 과정을 '해방'이라고 표현한 것이 명칭에 투영되었다. 중국의 표현은 또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한자를 풀어보면, 조선(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다는 뜻이다. 중국의 이러한 시각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과거 중국은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양분하고 있었다. 두 단체는 일본의 침략이 극심한 시기에는 잠깐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였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이후, 두 세력 간에 중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다투는 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했다. 결국 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만으로 쫓아내고, 1949년 본토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출범했다.
공산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이 있었는데, 그중 조선인 부대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인 부대의 기원은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산 김원봉은 중국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조선의용대를 1938년에 창설하였다. 조선의용대는 1940년을 기점으로 두 편대로 나뉜다. 김원봉은 충칭 임시정부에 합류하여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었고, 나머지 부대원은 화북지역으로 이동했다. 화북으로 이동한 조선의용대 대원들은 중국 공산당을 도와 싸웠으며, 이후에는 공산당(제8로군) 장교 출신 김무정의 지휘를 받아 조선의용군으로 개편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중국 공산당은 조선인 부대를 그대로 활용하여 국민당을 축출하는데 앞장섰다. 자신의 조국의 명운이 걸려있지도 않은 싸움에 지쳐가는 조선인 부대를 향해 중국은 '항장원화(抗蔣援華)'를 위한 것이라고 설득했다. 즉, 중화(공산당)를 도와 장개석을 무찌르자는 것이었다. 중국은 항장원화의 목표를 이룬 후 조선인 부대를 고향으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고, 이들이 도착한 고향은 북한이었다. 이들은 인민군 군복으로 갈아입고, 한국전쟁 초기 최전선에서 전투를 진두지휘했다. 그들이 바로 인민군 제4사단 18연대였다.
'항미원조'라는 명칭은 항장원화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라임(Rhyme)에서부터 느껴진다. 중국 공산당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조선인 부대가 그들을 도왔다. 시간이 흘러 1950년에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자 중국은 기꺼이 자국의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항미'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은 이 전쟁에서 미국과의 대결을 강조했다. 중국 지도층이 강력한 존재인 미국을 부각하면서 "우리를 상대하려면 미국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을까?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진영 대결에서 선수끼리 붙어보자는 말이었을까? 이 모든 추측을 한 마디로 정리해보면, 결국 항미원조는 의도가 담긴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인식은 지금도 이어진다. 올해 10월 중국에서 영화 <장진호>가 개봉했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 말부터 중공군의 공세를 피해 연합군이 흥남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한국군 통역장교와 병사, 경찰 병력도 투입되었으나 주로 美 해병 제1사단과 중공군의 전투로 이루어졌다. <장진호>에서는 한국군 병사가 없는, 중국과 미국의 일대일 대결로 묘사했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는 중국에서 흥행 1위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미-중 무역 전쟁과 타이완 문제 등 양국의 대결 구도에서 중국이 승리할 수 있다는 당의 자신감을 영화로 선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런데 장진호 전투의 승리를 성대하게 기념하고, 영화까지 만들어서 선전해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중국이 왜 1년 전 BTS의 수상소감에는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사실 장진호 전투는 중국이 승리한 것도 아니고 승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연합군은 흥남 철수 작전을 완벽하게 성공했고, 중공군은 이를 막지 못했다. 또한, 이 전투에서 중공군 사상자는 4~5만 명인데, 연합군의 손실은 1/3 수준이었다. 이렇듯 한국전쟁으로 인해 중공군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국군 유해발굴 감식단의 활동에서도 중공군 유해 발굴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가 한국전쟁 중 전사하신 분들에 대한 아픔을 공감하듯이, 중국의 입장에서도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에 대한 아픔이 있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낄끼빠빠'라는 말이 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 한다. BTS의 수상소감이 발표된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한국과 미국의 우호 단체이므로, 굳이 중국을 고려하여 발언할 필요가 없다. 즉, 이 맥락에서 중국은 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부르지도 않은 자리에 굳이 불청객처럼 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 네티즌은 발언을 비난하기 전에 맥락을 고려는 해본 것일까? 유명 연예인을 공격하면서 관심을 얻는 노이즈 마케팅을 위한 것일까? 시진핑을 비롯한 중국 지도층은 이 글을 보고 흐뭇했을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눈치 코치없는 끼어들기와 자국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국의 역사까지 왜곡하는 행위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임은 분명하다. 블랙박스를 잘 켜두고 어떤 끼어들기가 나올지 잘 지켜봐야겠다.
- BTS의 코리아 소사이어티 수상 소감 영상 링크 https://youtu.be/7EhFU5flJk4
- 코리아 소사이어티와 제임스 밴플리트에 관한 내용 참고 https://www.koreasociety.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