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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진씨 Jan 02. 2022

그럼에도 철책선은 계속 뚫린다

GOP 과학화 경계 시스템의 민낯

https://www.yna.co.kr/view/AKR20220102016953504?section=politics/all


강원도 동부전선 철책선이 또 뚫렸다. 탈북이 아닌 무려 '월북'이다. 언젠가 뚫릴 줄 알았고, 철책이 뚫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꼭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는데, 그 날이 오늘인 것 같다. 잠시 역사 이야기가 주인 필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새해를 맞이하여 이 뉴스를 집중적으로 다뤄보려고 한다. 꼭 군필자가 아니더라도 이 이야기는 한 번쯤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어디서도 들을 수 없고, 듣기 힘든 이야기다. 뉴스를 취재하는 기자 양반들도 이런 이야기는 잘 모를 것이다.


필자는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모 사단이 관할하는 GOP에서 군생활을 하며 커버사진에 있는 철책선 부근의 카메라를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여기서 잠깐. 용어가 생소하신 독자들을 위해서 그림을 통해 쉽게 설명해드린다.

휴전선 부근의 용어 표시 (지도 카카오맵)

우리가 휴전선이라고 부르는 그 선은 정식 명칭으로 군사분계선(MDL)이라고 한다. MDL을 기준으로 남쪽과 북쪽 각각 2km 밖에 한계선을 긋고 있다. 지도에 표시한대로, 남방한계선은 쉽게 말해서 철책선이 설치된 라인이고, 남방과 북방한계선 안쪽의 4km 지대를 비무장지대(DMZ)라고 부른다. 그래서 GP는 남방한계선과 MDL 사이의 비무장지대에 위치하고, GOP는 남방한계선 이남에 위치한 초소다. 아무튼, 이번 뉴스의 요점처럼 남방한계선이 뚫렸다는 것은 곧, 대한민국 국군이 관리하는 철책선이 뚫렸다는 말이다.


철책선은 정전협정 체결(1953년 7월 27일) 이후 계속해서 뚫렸다. 대표적으로 1968년에는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남쪽으로 넘어와서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까지 침투했었다. 옛날 일만은 아니다. 2012년에는 그 유명한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이 있었고, 3년 전인 2019년에는 북한 목선이 삼척항에 무혈 입성하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언론에서는 군의 안일한 태도에 대해 질책한다. 경계가 소홀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과학과 경계 시스템의 효용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필자도 이 과학화 경계 장비를 운용했던 병사 출신으로서 100% 공감한다. 그런데 언론의 문제제기는 여기서 그친다. 과연 왜 효용성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그걸 물어야 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철책선은 내일도, 모레도, 내년에도 또 뚫린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란, 쉽게 말해서 영상 장비를 동원하여 철책선을 감시하는 체계다. 예전에는 철책선에 있는 모든 소초에 경계병을 투입하여 24시간 교대로 감시하게 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된 후에는 카메라가 그 경계를 대신하면서 소초에 투입하는 병사 수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카메라는 중대 본부가 위치한 막사에서 영삼감시병이 컴퓨터를 통해 원격으로 관리한다. 하나하나 카메라를 돌려보지는 않고, 특정 프로그램을 통해 카메라를 어떤 순서로 돌릴 것인지를 정해서 해당 구역을 자동으로 돌려서 감시한다. 그래서 그 특정 장면에 추가 작업을 집어 넣으면, 물체의 움직임을 식별해서 신원미상자를 감시할 수 있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다. 이 카메라는 사람이 아닌 다른 움직임까지 잡아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풀의 움직임도 잡아낸다. 이보다 더한 것도 있다. 심한 바람 때문에 카메라가 상하좌우로 흔들려도 움직임으로 인식한다. 가관이다. 그래서 이 시스템의 가장 큰 취약점은 오탐지(誤探知)가 훠어어어어어얼씬 더 많다는 것이다. 어찌나 민감한지 수풀이 1 나노미터만 찔끔 움직여도 움직임으로 잡아낸다. 시스템이 움직임을 감지하면, 경고등이 켜지면서 경보음이 삑삑삑 울린다. 바람이 무자비하게 부는 날에는 0.1초마다 경보음이 울린다. 이거 근무하다보면 엄청난 스트레스다. 환청이 들릴 지경이다. 이런 날에는 오탐지 횟수가 하루에만 8,000 건이 넘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감시병들은 윗선의 양해를 구하고 경보를 묵혀두는 경우가 많다.


이 시스템의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시스템이다. 카메라가 능동적으로 물체를 식별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서 송출되는 영상을 다른 시스템을 통해서 식별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 시스템은 송출되는 영상을 픽셀 단위로 분석하기 때문에 카메라가 흔들려도, 수풀이 흔들려도 다 경보를 주는 것이다. 이것을 과연 효율적인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는가? 오랫동안 이 근무를 해온 경험자로서 비효율의 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군생활 중에 하도 오탐지가 많이 나오니까 사단장이 직접 참모들을 데리고 영상감시병들과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필자는 기회가 되면 이 시스템의 문제점을 사단장에게 직접 건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토론이지 할 말은 할 수가 없었다. 인사고과가 걸려있는 상급 간부는 필자에게 "OO아, 나도 뭐가 문제인지는 잘 알아.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자. 너도 곧 제대하잖아. 너나 나나 다 피곤해진다. 한 번만 참아줘라."라는 말을 전했다. 그 간부를 믿고 따랐기 때문에 필자는 그 기회를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인생에서 후회가 되는 일이 있다면, 여지없이 이 사건을 꼽을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가 나올 때마다 필자 역시 큰 책임을 느낀다.


모든 GOP 근무는 교대 근무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래서 저녁이나 새벽 시간 대에는 근무자들의 소홀한 태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책선이 뚫렸다는 것을 잡아내지 못한 근무자들을 향해서는 엄격하게 질책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러한 배경에는 시스템의 문제가 있다는 점도 함께 강조하고 싶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을 관리하는 실무자들은 한계점을 매우  알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급 부대와 지휘관들에게도 있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관리자들만 갈구기 바쁘다. 흔히 말하는 비효율적인 '군대식 운영'이라는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과학화 경계 시스템이 구축된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철책선 뚫림 현상에 대해서, 군의 엄격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발  정신 차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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