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만들어 보는 과거의 영광
브런치에 처음 연재한 글을 돌이켜본다. 밴플리트상을 수상한 BTS와 그들의 수상소감을 문제 삼았던 중국의 이야기였다. 필자는 해당 글을 '앞으로 중국의 역사왜곡 문제에 블랙박스를 켜고 잘 관찰해야겠다.'라고 마무리지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흐른 지금, 블랙박스에 다시 중국의 모습이 잡혔다. 과실 비율이 몇 대 몇인지 따져봐야겠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today/article/6407472_35752.html
사건은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서 열린 중국의 한 전시에서 발생했다. 박물관은 한반도 역사 연표를 소개했는데 여기서 고구려와 발해는 쏙 빼버린 것이다. 한국은 곧바로 문제를 제기했으나, 박물관 측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받은 연표를 그대로 썼다며 발뺌했다. 그러나 중앙박물관이 보내준 원본에는 고구려와 발해가 있었다. 의도적인 지우기였다.
중국은 왜 의도적으로 고구려와 발해를 지웠을까? 이 문제는 독자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최근 김치와 한복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었던 역사도 역시 이 문제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과연 동북공정은 무엇일까?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는 2003년 중국 사회과학원의 주도로 시작됐다. 목적은 기원전후에 존재한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의 역사를 재조사하기 위함이었다. 중국이 뜬금없이 이러한 행동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2001년 국회에서는 한국 재외동포의 범위에 조선족을 포함하려는 법안을 발의한 적이 있었다. 위기감을 느낀 중국은 곧바로 조선족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사상교육에 들어갔다. 조선족자치구는 틀림없는 중국 영토고, 조선족의 조국은 중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민족의식 개조 과정에 '역사'가 동원되면서 5년짜리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민족의식을 개조하는 행위는 그 민족의 뿌리를 바꾼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효과적인 개조를 위해서는 '원래 그런 거니까'를 증명해야 한다. 역사가 동원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권위를 가지고 개발한 오래된 이야기로 승부를 보는 것이다.
여기에 적힌 걸 봐.
이 시기에도 이렇게 말했잖아.
그러니까 내 말이 맞지?
한없이 비관적으로 보면, 역사는 '설득력 있는 거짓말'에 가깝다.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고는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타임머신이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역사 연구는 그래서 역사서의 내용과 발굴된 유물을 증거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행위다. 한정된 자원 속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태생적인 문제로 인해 사실 검증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사람과 시간 그리고 돈을 되도록 많이 투자해 축적한 경험 자체가 성과가 되고, 거기서 권위가 발생한다.
국가와 민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문제는 결국 힘 겨루기다. 그 문제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누가 더 사실처럼 보이도록 만들 수 있는가? 이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적당한 사실에 공상(空想)을 채워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당연히 힘이 세면 이길 확률이 올라간다.
과거에는 '서구 열강'으로 불렸던 유럽 강대국이 이러한 전법으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19세기에 유럽에서는 고고학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땅을 파서 나온 유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대체로 그 의미란 유럽의 민족은 옛날부터 선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 의식은 후진적인 민족은 유럽 국가에 점령당해도 싸다는 논리로 이어져 제국주의와 식민지 시대의 발판이 되었다. 유럽 최고의 박물관으로 꼽히는 영국의 대영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각국의 유물은 그 잔재다.
뒤늦게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도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역사서부터 고쳤다. 한국과 일본에 공통으로 발견되는 유물은 다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이 '원래' 일본에서 나왔다,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소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잔재는 아직도 남아있다. 한반도 남부 지방에 존속했던 가야의 역사를 임나일본부의 존재로 대응하고, 식민지 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했다는 주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자릿세를 걷기 위한 형님들의 협박용 멘트 "누구는 땅 파서 장사하요?" 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발언이다. 국가의 규모에서는 땅 파서 하는 장사가 진짜 남는 장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 중국 역시 한국을 상대로 땅 파서 남는 장사를 하고 싶은 것이다. 하나의 중국을 만들고, 과거 당나라 때의 대제국을 다시 건설하는 '중국몽'의 실현을 위함이다. 동북공정 때부터 이어진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지역의 역사 공정은 결국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한 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그런데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고 시도한 국가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선택을 한다. 영국이 EU(유럽연합)를 탈퇴하려는 움직임(Brexit)을 보였을 때, 보수당이 주장했던 슬로건이 바로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자."였다. 과거에 해가 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EU 정도는 탈퇴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다. "소련 때가 살기 좋았지."라는 국민의 인식에 부응하려는 푸틴 정권의 현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영광은 과거일 뿐이다. 현재는 과거와 똑같은 조건 속에 있지 않다. 역사가 '반복'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리적인 조건은 다른데 옛날에 머물러 있는 정신으로 다 해보자는 상상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 가장 큰 무기다. 복잡하지 않으니 논리 없는 주장이지만 대중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권력자에게는 한없이 좋은 조건이다. 법까지 고쳐가며 자리에서 내려오기 싫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것이 현재 중국의 현실이다.
뼈 있는 사족을 하나 붙여본다. 2000년, 일본 마이니치 신문 1면에는 사기꾼이 범죄를 저지르는 사진을 대문짝만 하게 실었다. 이름은 후지무라 신이치. 애국심이 넘쳐 일본 구석기시대의 연대를 앞당겨보려다 안타깝게 잡혔다. 1980년대 치고는 너무나 치밀한 작전이었다. 전날 자기가 만든 뗀석기를 땅에 묻는다. 다음날 카메라 앞에서 그 뗀석기를 다시 캐서 역사를 새로 썼다. 이후 20년이 지나 그의 이력서에도 불그스름한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