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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진씨 Feb 03. 2022

족보는 가짜지만 가족은 찐이니까

우리 시대에 족보가 갖는 의미

필자는 명절에 본가에서 300m 남짓 떨어져 있는 할머니 댁으로 이동해 제사를 지낸다. 제사상 음식은 예전보다 많이 간소해졌지만, 제사를 지내는 형식은 할머니의 고집대로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다. 40대가 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예우를 지키고 싶으신 것 같다.


설, 추석, 할아버지 기일에 맞춰 1년에 최소한 3번 이상은 방문하는 할머니 집에서 이제는 새로운 것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설에만 방문하는 외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외가가 다른 지역에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 자주 방문한 탓일까. 이제는 집안의 인테리어가 조금 바뀌고, 새로 키우기 시작하는 식물 외에는 새로움을 선사하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그대로 멈춰있는 것 같다.


그런 느슨해진 가족 관계에 한 권의 책이 집안에 큰 긴장감을 줬다. 바로 족보였다.


족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 또는 그 관계를 기록한 책"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렇다. 족보에는 필자의 이름과 더불어 형제, 부모, 조부모, 사촌 등 필자의 친인척에 관한 기록이 모두 적혀있다. 선 하나만 이어 보면 이 사람과는 몇 촌 관계이고, 호칭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바로 알 수 있다. 평생 얼굴도 모르는 아저씨가 족보를 펼쳐 선을 이어 보는 순간 집안간 형님과 큰아버지, 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족보의 집안과 다른 성씨를 사용하는 사위와 며느리까지도 고려하면 대한민국 국민 5천만 명과 모두 집안사람으로 엮일 수도 있겠다. 참으로 무서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족보는 안동 권 씨 가문의 『성화보』다. 1476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니 자그마치 536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사위와 외손자의 이름까지 모두 적혀있고, 아들과 딸의 이름을 성별에 구분 없이 태어난 순서대로 적었다는 점이 신기하다.


또한, 이 족보에는 과거 시험에서 문관을 뽑는 문과에 급제한 사람들의 이름이 꽤 많이 실려있다. 조선 건국 이후 1476년까지 문과에 급제한 사람 중 51%가 『성화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 조선 사람들이 모두 집안 관계로 엮여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마치 선을 그으면 모든 국민이 우리 집안사람이듯이.


그런데 지금 우리들 집에 있는 족보의 내용은 98%가 가짜다. 조선 후기 일본과의 전쟁, 청과의 전쟁을 통해 인구가 감소하고, 사회가 혼란했다. 이후에는 하위 계층에서 경제권을 쥐고 높은 신분으로 상승하려는 시도까지 발생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조정에서는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람의 신분을 올려주는 납속책을 시행했고, 민간에서도 돈으로 족보에 이름을 올려 한순간 양반 집안의 사람이 되기도 했다. 조선 전기에 비해 양반의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이 이를 대변한다. 오죽하면 "이 양반아!"라는 말에서 양반이 일반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겠는가. 그래서 지금 집에 있는 족보를 가지고 몇 백 년 전 사람들로부터 뿌리를 찾고, 위인의 반열에 올라있는 사람의 이름을 보면서 희열을 느낄 수는 없다. 다 부질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짜 족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존재한다. 바로 지금 같이 있는 식구들이 우리 가족이라는 것. 명절에 같이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고, 식사를 함께하고, 고스톱도 치면서 하하호호 웃는 그 사람들의 이름은 친가와 외가에 있는 족보에 모두 같이 올라있다. 매일매일 동사무소에서 500원씩 주고 등본을 뗼 수는 없으니 집에 신줏단지처럼 모셔져 있는 족보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소소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작은 의미만 찾기에는 종친회에서 파는 족보가 너무도 비싸다. 그러면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필자는 이번 명절 동안 가성비 최악인 이 족보에서 그나마 본전(?)을 찾을 수 있었다. 족보에 올라있는 이상한 가족 관계를 통해서 하나의 이야깃거리를 발견한 것! 이상한 가족 관계 문제는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외증조부의 막내아들로 올라가 있어야 할 외할아버지가 외증조부 첫째 형님의 아들로 되어있던 것이다. 외가 식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이 문제를 지적하자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큰아버지는 자식이 없어서 누구 하나를 양자로 입적을 시켜 제사를 물려줘야 했기 때문에 내가 입적이 된 것이다." 오랜 시간 막내아들이 집안의 제사를 지내야 했던 의문이 풀리는 날이었다.


외삼촌과 외숙모, 엄마, 이모들은 지금까지 궁금했던 것들을 더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대화 소재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도 기대에 부응하듯 신나게 옛날이야기를 풀어내셨다.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가족이 한 층 더 끈끈해진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회는 유교의 형식적인 의례에서 벗어나려는 더 강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최악의 전염병 사태가 더해지며 마치 필연이었던 것처럼 가속이 붙고 있다.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풍경은 매우 대표적이고, 집안사람과 족보에 관한 무의식도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필자도 옛날에는 감히 꺼내지도 못할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면서 시대와 맞지 않아 쓸모없는 가짜 족보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음을 알았다. 그것은 몇 백 년 전의 이야기는 가짜 소설이어도, 몇십 년 전 우리 집안의 이야기는 찐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가족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는 독자들께서 용감하게 집안의 족보를 찾아 꺼내보시는 것은 어떨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가 비단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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