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신문 다시 읽기> 전술핵은 미국의 뜻대로 움직였다
일전에 여의도에 떠도는 망령으로 내각제 개헌을 소개한 적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망령이 있었다. 바로 전술핵이다. 안보/국방 분야에서 틈만 나면 등장하는 말이다. 특히 보수 진영 정치인들이 좋아한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최근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무려 자기 지역구에 전술핵을 배치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까지 보였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여럿 생긴다. 과연 전술핵이 무엇인지 알고서 하는 소리일까? 우리가 배치하고 싶다고 배치할 수 있는 무기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잔칫상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수준의 말장난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이 글로 '전술핵'에 관해 결판을 내보고자 한다. 틈만 나면 전술핵 운운하는 정치인들이 하도 답답해서 그렇다. 야무지게 작성해서 국회의원실 299곳에 우편으로 보내드리고 싶다. 가능하면 용산 대통령실에도 보내드려야겠다. 국가 안보를 최전선에서 관리하는 그곳도 국방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그렇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전술핵이 무엇인지부터 살펴야 할 것 같다. 전술핵은 전선에 배치해서 사용하는 핵무기를 말한다. 대체로 국지전에 사용한다. 규모가 작은 일부 지역을 효과적으로 타격하는 무기인 셈이다. 대체로 단거리 미사일에 탑재한다. 참고로 단거리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500km 미만이다. 전술핵의 반대는 전략핵이다. 이는 도시 하나를 통째로 날릴 때 바이든할 때 사용한다. 멀리서 다른 국가 영토를 폭격하기 위한 무기로 대체로 5,000km 이상 비행하는 장거리 미사일에 탑재한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전술핵을 보유한 적이 없다. 미국이 배치한 전력이 있을 뿐이다. 미국은 휴전선 인근에 전술핵을 1958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배치했다. 처음 배치한 이유는 냉전의 격화 때문이었다. 소련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어 중국이 1950년대 후반부터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고, 1960년대에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미국에 큰 위협이 됐다. 이후 냉전이 해체되기 전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끊이지 않자 미국은 전술핵무기를 그대로 배치했다.
전술핵 배치가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난 시점은 1970년 3월이었다. 미국 내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반전 운동)이 심해지자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에서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 철수도 선언했다. 이때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작성한 기사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국에 그렇게 많은 핵무기를 배치하고도
미군 1개 사단을 단계적으로 철수할 수 있는가?
이 기사로 인해 '전술핵의 시대'가 열렸다. 이듬해 일본과 미국이 오키나와 반환 협정을 체결한 후, 오키나와에 배치된 전술핵 일부를 한국으로 가져왔다. 1975년에는 신형 핵무기로 교체하면서 위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그해 6월 미국은 "북괴가 침공하면 핵무기 사용을 불사하겠다."라는 강력한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이와 함께 핵무기와 관련된 온갖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에는 '푸에블로호 사건'도 이야기도 있었다. 1968년 동해상에서 미국 정보선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납치된 사건이 벌어졌다. 미군은 당장 전투기를 출동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모든 전투기에 전술핵무기를 탑재하는 바람에 출동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후 미국에서 지미 카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민주당 카터 정부는 박정희 정부와 매우 껄끄러운 관계였다. 카터 대통령은 방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 면전에 대고 면박을 주는 일도 있었을 정도다. 여기에 카터 정부가 주한 미군과 전술핵 대규모 철수 계획안을 발표하면서 분위기는 더욱 냉각되었다.
그래도 한국 정부는 전술핵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박정희 정부의 군사력 증강 정책 실현에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핵이 없으면 방산 산업 육성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만큼 '핵' 그 자체가 전쟁 위협을 줄이고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된 것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핵 억지력'이라고 한다. 정부의 설득 끝에 전술핵 철수는 막았고, 1987년까지 한국에 전술핵은 계속 배치되었다. 당시 발표에 따르면, 1987년에 전술핵무기는 약 1천 기였다고 한다.
1987년 겨울, 미국과 소련이 핵군축 협상에 들어갔다. 핵무기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동유럽이 소련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는 상황이 주요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냉전 해체가 가속화되자 상황은 더욱 급변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독일은 통일을 이뤄냈다. 소련도 해체를 선언했다. 데탕트 시대의 시작이었다.
미국도 이러한 상황에 발맞춰 움직였다. 부시(아버지) 대통령은 1991년 9월 27일 전술핵 배치 중지 성명서를 발표했다. 미국이 해외에 배치한 전술핵을 모두 거두겠다는 뜻이었다. 한국 언론도 이에 동조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 진보 언론은 한미 연합 훈련(팀스피릿) 중지와 핵무기 철수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90년대 초에 미국은 한반도에서 전술핵무기를 철수했다.
전술핵 이야기를 하면서 글의 절반 이상을 미국으로 채운 이유가 있다. 도입부에서도 언급했듯이, 전술핵은 우리 의지로 되지 않는다. 미국에 요청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이 독자로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는 이상은 마음대로 배치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핵무기 개발에 착수할 것인가? 그것은 보수 정치인들이 극도로 기피하는 한-미 동맹의 파기다. 그럴 수는 없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사람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북한도 핵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북한도 마음대로 도발을 못하지 않겠는가? 쉽게 말해 너 죽고 나 죽으니 마음대로 핵 못 쏜다는 말이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상호 확증 파괴(MAD)'의 전형이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 이러한 구상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문에 더 그렇다. 러시아가 현재 핵무기 실제 사용을 거론하고 있다.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따라 핵무기는 실제적 위협이 될 수 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시기라는 말이다.
강경론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북한과는 대화로 풀 수 없다. 항상 뒤에서는 딴짓을 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핵에 핵으로 대응하면 북한이 과연 무서워할까? 그들 말대로라면 북한은 속내를 감추고 또 어떤 '딴짓'을 할지 모른다.
따라서 전술핵 재배치는 지금 상황에서 최적의 대안이 아니다. 북한이 한국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 전술핵을 들여놓아 봐야 어떠한 이득도 되지 않는다. 온갖 주장이 역설 투성이인 전술핵 재배치 주장. 그래서 이 주장이 엉터리인 것이다.
아, 마지막으로 조 의원의 주장도 반박해야겠다. 조 의원님 지역구 중 하나인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동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쏘면 서울 바로 위에 떨어진다. 조 의원께서는 전술핵 타격 범위를 한반도 남쪽으로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이런 걸 잡아내는 게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