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익, 삐익, 삐익, 삐이이익"
복사기는 오늘도 운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은 규칙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괜히 규칙적인 사람을 기계 혹은 로봇이라고 부를까. 복사기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사무실은 대체로 조용하다. 전화받는 소리, 키보드가 축과 맞붙어 내는 경쾌한 소리는 제외다. 이런 나지막한 소리를 제치고, 복사기는 단연 정적을 깨는 일등공신이다. 일단 고음이다. 저음으로 내면 왜 우는지 모를 인간을 향한 경고음이다. 참 희한한 소리다.
복사기가 우는 이유는 다양하다. 잉크가 떨어졌다, 용지가 부족하다, 용지가 인쇄기에 걸렸다, 팩스 왔다, 복사 다 됐다... 아이를 키우는 것과 같을까. 말 못 하는 영유아는 울음으로 의사소통을 한단다. 그걸 매일 듣는 엄마는 울음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판별도 한다. 복사기 소리를 누군가의 엄마가 개발한 것은 아닐까.
울음 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고사가 있다. 일본 전국시대 이야기다. 맹주 오다 노부나가가 묻는다. "울지 않는 소쩍새를 어찌할 텐가?"
임진왜란으로 잘 알려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답한다. "울지 않으면 죽어야죠."
옆에 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달리 말한다. "울 때까지 기다려 보죠."
이 이야기는 일종의 성격테스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성격이 급하다. 그러니 냉큼 죽이고 본다. 임진왜란 휴전 조건으로 조선 8도 중 4도를 내놓고, 명나라 공주도 내놓으라는 그 답다. 결국 화끈하게 도전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다르다. 침착하다. 일단 기다린단다.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에서 찾기 드문 인간형이다. 그 덕에 일본 천하를 주무르는 (에도) 막부가 됐다. 1등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도전 세력이 항상 자리를 넘본다. 그래서 에도 막부는 가족을 볼모로 잡았다. 지역 유지의 자식을 무조건 수도인 에도로 보내야 했다. 이걸 산킨고타이라고 한다. 치밀하다. 이런 사람을 전문 용어로 '독사'라고 한다.
현실로 돌아온다. "울어대는 복사기를 어찌할 텐가?" 곰곰이 생각한다.
"히데요시가 될 것인가? 이에야스가 될 것인가?"
"복사기를 때려 부술까? 일단 기다릴까?"
모두 정답이 아니다. 복사기는 답을 안다. 화면을 보면 나온다. 해결이 먼저다.
왜냐하면, 사무실 막내니까...
어휴 하기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