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6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 해야만 하나?
2012년, 전북 전주의 여름밤은 뜨거웠다. 런던올림픽 축구가 피 끓는 고등학생을 자극했다. 잘 시간만 되면 기숙사 방문부터 잠그곤 했다. 사감 선생님이 갑자기 들이닥칠까 두려워 보초도 세웠다. 8월 11일 새벽, 호루라기 소리가 한일전 시작을 알리던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아뿔싸! 사감 선생님이다. 느슨한 경계를 틈타 일이 생기고 말았다. 선생님은 손전등으로 한 사람씩 얼굴을 비췄다. 교도관이 서치라이트로 탈옥수를 쫓는 모습 같았다.
“이 녀석들아, 올림픽은 사기다!”
선생님은 복도에 줄줄이 무릎 꿇은 중생들을 꾸짖었다. 국민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정치인은 뒤에서 딴짓하던 역사를 제자들이 깨닫기를 바랐을까? 규칙을 어겼는데도 기숙사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이유는 지금도 모르지만, 이날부터 올림픽을 삐딱하게 보기 시작한 사실만은 분명하다.
말부터 제대로 짚자. 우리가 쓰는 단어 ‘Olympic(올림픽)’은 영어로 형용사다. 명사형은 'Olympiad(올림피아드)'다.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한다. 어간 ‘Olymp’는 신(神)이 사는 올림푸스산 또는 신성함을 뜻한다. 어미 '-iad'가 붙어 4년마다 지내는 제사와 이때 열리는 체육 경기를 뜻하는 명사가 된다. 서로 치고받기 바쁜 도시국가들이 화합하는 자리다. 전쟁도 잠깐 멈춘다.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 '세계인의 잔치'라고 한다.
말부터 꼬여버린 한국에서 어떻게 정신이 바로 설 수 있을까? 그 탓에 1988년 서울올림픽은 잔치가 아닌 전쟁이었다. 대회를 준비하면서부터 전두환 정권은 싸움을 멈추기는커녕 폭력으로 싸움을 키웠다. 1986년 부천경찰서에서 권인숙을, 이듬해 남영동에서는 박종철을 질식사시켰다. '미관상' 거슬리는 것을 모조리 치웠다. 드라마 <폭싹 속앗수다> 속 오애순과 삼춘들은 생선 장사 좌판을 접었고, 서울 노원구 상계동 판자촌 주민들은 집을 잃었다.
힘 없고 가난한 사람이 잔치에 낄 수 없는 까닭은 또 있다. 노태우 당시 올림픽조직위원장이 대회 개최 성공을 다짐하는 자리에 모인 종목별 체육협회장들이 “선서”를 외친다. 대표자 이명박 대한수영연맹 회장과 이건희 대한레슬링협회장,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 김승연 대한복싱협회장이 나란히 섰다. 모두 재벌이다. 이익에 눈멀어 위만 쳐다보는 그들에게 발밑이 보일 리 없었다.
88년 주역들은 시간이 지나 더 강한 권력과 재력으로 올림픽을 쥐고 흔든다. 국제올림픽조직위원회(IOC)가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고른 날. 두 팔을 번쩍 치켜든 이명박 대통령 옆에 한진 조양호, 삼성 이건희 회장이 웃으며 박수를 친다. 여전히 잘못을 돌이켜보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 경기장과 갖가지 건물 짓기에 바빴다. 올림픽이 끝나자, 이들은 평창과 강릉 등지에 ‘밑 빠진 독’을 남기고 떠났다.
강원도는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조성사업으로 1조 원 빚더미에 앉았다. 아직도 한 달 이자 13억 원을 갚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경기장 시설 유지·관리로 생긴 적자만 300억 원이다. 끝날 줄 모르는 빚잔치에 시도별 재정자립도는 밑에서 3위다. 장독 밑을 깬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애꿏은 강원도민이 독에 물을 붓는 꼴이다. 언제 끝날 지도 모른다.
이 어두운 역사를 반복하려 한다. 이번엔 내 고향 전북을 볼모로 잡았다. 김관영 전북도지사가 2036년 전주 하계올림픽 유치에 두 팔을 걷었다. 대선 후보들이 맞장구쳤다. 전두환과 뿌리가 같은 김문수·이준석 후보는 말할 나위 없고, 이제는 대통령인 이재명 후보도 힘을 실었다. 정치색을 가리지 않고 사탕 발린 개발공약으로 유권자를 속여온 대통령들의 후예답다. 곧 대통령 한마디에 재벌들의 이익 챙기기와 생색내기가 재연될 듯하다.
주홍빛 노을로 물든 부안 채석강, 산자락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펼쳐진 지리산, 짭조름하게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까지. 전북은 주목받을 가치가 충분하지만, 올림픽을 치르기는 버겁다. 이미 잼버리 실패로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재정자립도는 이미 전국 최하위로, 강원도보다 낮다. 앞으로 올림픽에 들어갈 돈이 9조 원이라고 한다. 평창보다 더한 비극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프랑스 왕 루이 14세는 죽기 바로 전에 건축과 전쟁으로 혈세를 낭비한 점을 반성했다. 뉘우치지 않는 요즘 정치인보다 훨씬 낫다. 제구실 못하는 장독을 깨부숴 국민이 행복하도록 이끌 수 있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바란다. 전북과 올림픽은 한여름 밤의 추억으로 남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