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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선’씩이나 했으면 가만히 있으세요

by 한교훈

지난 주말, 서울대학교 인근 중식당을 찾았다. 와이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분 좋게 식사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소화를 시키려고 사당을 거쳐 이수역까지 3km 정도를 걸었다.


사당역 7·8번 출구를 지나가던 순간이었다. 출구 외벽과 지붕 사이에 걸린 현수막을 목격했다. 이 동네 국회의원인 나경원 씨가 내걸었다. 더불어민주당 동작을 지역위원장인 류삼영 씨의 현수막은 가린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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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도 상도덕이 있는 법이다. 현수막으로 논쟁할 때는 그 위나 밑에 이어서 매달기 마련이다. 아무리 상대방이 밉고, 허튼 소리를 할지라도 현수막을 가리는 ‘비열한 짓’은 하지 않는다.


나 의원이 왜 현수막을 달았는지도 의문이다. ‘누리과정예산(유특회계) 지원 연장’ 문구 옆에 나 의원이 해맑게 웃는 사진을 넣었다. 누가 보면 나 의원이 세운 공인줄 알겠지만, 기여한 바를 찾아볼 수 없다.


올해로 일몰 예정이던 유특회계법은 수명을 연장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지난 7월 23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나경원’은 재석 의원 명단에 없었다. 대신 ‘출장 의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한미의원연맹 방미단 단장 자격으로 미국 출장 중이었다. 이름값 못하기는 매한가지다.


생성형 AI(인공지능)에 이러한 나 의원의 행동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자기애성 인격 장애(NPD) △불안정성 및 취약한 자존감 △권력과 통제에 관한 욕구. 3가지 요인이 서로 얽혀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 의원이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나타나는 문제다.


이제 이해한다. 왜 그가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꼽은 채로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라고 외쳤는지. 나 의원은 스스로 법사위 간사를 맡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막으니 화가 치밀 수밖에 없다. ‘5선’ 권력으로 통제하려고 했다. 화풀이를 하려고 무리에서 가장 약한 초선을 표적 삼았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진 놀이’와 무엇이 다른가?


성공의 길만 달리면 사람은 오만해지기 십상이다. 나락으로 떨어져 봐야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영화 주인공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그렇다. 잘 나가던 젊은 시절에 마약으로 주저 앉았지만, 약을 끊고 재기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정치인이 실패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나경원 씨가 판사를 그만두고 국회의원 다섯 번을 하기까지 실패다운 실패가 있었을까? 21대 국회의원에서 떨어졌지만, 곧 윤석열 정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국회에서 ‘빠루(쇠지렛대)’를 들어 기소됐는데도 6년째 1심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필자도 AI처럼 나 의원에게 3가지를 권한다. 국회를 지켜보는 시민과 나 의원 본인의 앞날을 위해서 실패해보길 바란다. 짧지 않은 인생, 길게 보고 살길 바란다. 주말 저녁에 가족과 밥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눠보시길 바란다.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패배에 관한 짧은 시를 붙이며 마무리한다.


<패배에 대하여> - 정호승

나는 패배가 고맙다

내게 패배가 없었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패배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패배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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