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공기를 사고 판단 말인가?"

인디언 연설문집 읽기 1

by 한교훈


책 표지 (출처: 알라딘)


인디언 연설문집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류시화 역)>를 읽는 중이다. 하루에 한 편만 읽을 생각이다. 많이, 빠르게 읽을 책이 아닌 것 같다. 좋은 글귀가 많아서 여러 번 곱씹어야 책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제 하나를 골라 관통하는 문구 두세 가지를 적어보려고 한다. 필자 생각도 함께 붙인다. 독자들도 각자 떠오르는 생각을 댓글로 달아주시길 바란다. 머릿속에 두기보다는 적어야 기억도 오래 남는다.


처음으로 1854년 '시애틀' 추장이 남긴 연설부터 소개한다. 미국은 인디언을 '보호구역' 안으로 강제로 밀어 넣으려 했다. 백인 공무원 '아이삭 스티븐스'가 시애틀에 도착했다. 시애틀 추장은 스티븐스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 놓고 연설했다고 한다.

미국 시애틀 시내에 있는 '시애틀 추장 동상' (출처 나무위키)

아메리카 인디언 연설문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널리 인용되었으며, 논란도 됐다. 1971년 미국 방송 작가 '테드 페리'가 환경 다큐멘터리 <집>을 제작하면서 대본으로 이 연설문을 사용했다.


그러자 '고상한 야만인'의 연설을 참지 못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연설문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시애틀 추장은 실존 인물이지만 연설을 한 적이 전혀 없다. △원본이 있지만 '이류 시인'이 지어낸 것이다. △ 시애틀 추장은 생전 들소를 본 적도 없고, 대지를 '어머니'라고 부른 적도 없다. 이런 식으로 미국 사회는 시애틀 추장을 '가공의 인물'로 몰아세웠다고 한다.

자연을 함부로 사고 팔 수 없다.


이 연설문을 꿰뚫는 큰 줄기다. '인디언이 사는 땅을 사러 왔다'는 영국계 백인들의 주장에 인디언들은 이렇게 답했다. 누가 자연을 사고 팔 수 있을까? 아니, 자연을 사고 판다는 논리가 무엇인가? 인간이 자연 위에 있나? 옛날 사람들도 자연을 사고 팔았단 말인가? 온갖 의문이 든다. 궁금증을 갖고 책 내용을 읽어 본다.


우리는 우리 땅을 사겠다는 당신들의 제안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물을 것이다. '얼굴 흰 추장(당시 미국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사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다.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 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에서 솟아오르는 수액은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시애틀 추장은 백인들에게 자연이 가족과 다름 없다고 말한다. 가족을 돈으로 사고 파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백인들의 오만함에 시애틀 추장은 이어서 경고한다.

남은 날을 어디서 보내는가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남은 날도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인디언들의 밤은 칠흑처럼 어두울 것이다. 단 한 개의 밝은 별도 지평선에 걸려 있지 않다. 슬픈 목소리를 한 바람만이 멀리서 울부짖고 있다. 냉정한 복수의 여신이 '얼굴 붉은 사람들(인디언)'의 오솔길에서 기다린다. 어느 곳으로 가든 우리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파괴자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운명과 맞닥뜨릴 것이다. 상처 입은 사슴이 사냥꾼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처럼.

당신들의 부족이 쓰러질 날이 지금으로선 아득히 먼 훗날의 일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그날은 반드시 온다. 신의 보호를 받는 얼굴 흰 사람들이라 해도 인간의 공통된 운명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러면서도 시애틀 추장은 '복수'와는 선을 긋는다.

우리 희망을 갖자.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과 얼굴 흰 형제들 사이의 적대감이 다시 살아나지 않기를. 서로를 적대시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잃기만 할 뿐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젊은 전사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복수하기 원한다. 하지만 이미 자식을 잃은 우리 늙은이들은 잘 알고 있다. 싸움을 통해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현대인은 도시에 갇혀 돈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돈 때문에 남을 죽인다. 내 가족과 친구를 죽인 자를 지옥 끝까지 쫓아가 복수한다.


녹조에 덮인 낙동강 (출처: 중앙일보)

돈 뭉텅이를 들고 가서 땅을 사고, 땅에 철기둥을 박고, 수십미터짜리 콘크리트 덩어리를 세운다. 멀쩡한 강바닥을 포클레인으로 긁어 파고, 강에 콘크리트 덩어리를 심어 물이 흐르지 못하게 한다. 모두 자연을 거스르는 일이다. 모두 현대인이 저지르는 실수다. 세상을 멀리 보지 못하고, 눈 앞에 이익만 좇다가 벌어진 비극이다.


인디언 테와족 출신 그레고리 카헤테는 이렇게 말한다.

어른들은 우리에게 멀리 내다보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우려고 “핀페예 오베!” 하고 말하곤 했다. ‘산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때로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다가오는 세대들을 포함할 수 있을만큼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지에 관한 일을 다룰 때 적어도 천 년, 2천 년, 혹은 3천 년의 긴 안목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어른들은 일깨웠다.

자연은 조상에게 물려받은 '유산'이 아니라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잠시 빌린 '빚'이다. 소중히 다뤄서 다음 세대에 돌려줘야 한다. 자연은 그 자체로 완성됐다. 그것을 파괴하지는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