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강요하지 말고, 들으라!"

인디언 연설문집 읽기 2

by 한교훈
“하느님의 종교와 악령들 사이에는 우정이 있을 수 없다.”


세네카족 추장 '빨간 윗도리'가 악수를 청하자, 백인 선교사 조셉 크램이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추장의 연설을 들으며 그는 인디언 부족을 '악령'으로 생각했다. 하느님을 믿지 않아서 일까? 인디언이 하느님을 모욕했을까? 아니면 세네카족이 기독교의 문제점을 뼈 아프게 지적했을까?


세네카는 '서 있는 바위 근처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추장 이름은 사고예타와. '사람들을 일깨우는 자'다. 백인들은 빨간색 외투를 즐겨 입는 그에게 '빨간 윗도리'라는 별명을 붙였다. 목소리에 깊은 울림이 있었다. 호랑이 울음같은 큰 목소리에 백인들이 당황했을 것이다.


두려운 자에게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하나는 굴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을 얻어 복종시키는 것이다. 이 시기 백인들은 얼굴이 붉고, 문명화 되지 않은 인디언에게 어떤 선택을 했을까?


8e71569b-e3da-48ba-a019-7731f8528f3c.jpg 2019년 복원된 메이플라워호 (출처 중앙일보)

1620년 12월 21일, 배 한 척이 아메리카 땅을 밟았다. 배 이름은 메이플라워. 영국인들이 잔뜩 타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살고자 영국을 떠나 낯선 땅으로 이주해왔다.


인디언은 백인을 도왔다. 먹을 것을 훔쳐가도 못 본 척했고, 오히려 사냥과 농사를 가르쳐줬다. 먹고 살 수 있는 '땅'도 내어줬다. 그러자 더 많은 백인들이 몰려 들기 시작했다. 주객전도가 일어났다. 백인들이 땅에 울타리를 박아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했다. 자기들 땅에서 계속 사냥하던 인디언을 '사유지 침입죄'로 재판에 넘겼다. 재판정에서는 '소유'와 '공유'가 서로 충돌했다. 끝 없는 논쟁이 이어졌다.


결국 백인들은 인디언을 공격했다. 마을에 불을 지르고, 불길을 피해 달아나는 마을 주민들을 학살했다. 심지어 다른 인디언 부족을 매수해 싸우게 했다. 많은 인디언 부족이 자취를 감췄다. 백인들은 포로로 잡힌 남자 인디언을 노예로 팔았고, 여자들은 병사들이 나눠 가졌다. 인디언이 희생당한 대지 위에는 보스턴 같은 거대 도시가 들어섰다.

인디언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피쿼트 전쟁' (출처 나무위키)

빨간 윗도리는 이런 역사를 다 꿰고 있었다. '인디언 교화' 목적으로 부족을 만나러온 선교사 크램이 달갑지 않았다. 선교사가 추장을 찾은 이유가 뭘까? 포교다. 좋게 말하면 '전도'요, 나쁘게 말하면 '강요'다. 이런 목적을 가지고 온 크램을 빨간 윗도리는 크게 꾸짖었다.

당신들의 종교는 옳고, 우리의 것은 틀리다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당신들의 종교가 위대한 책에 기록되어 있다고 들었다. 만약 그 책의 내용이 당신들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면, 신은 마땅히 우리에게도 그 책을 내려 주었을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뿐 아니라 우리의 조상들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당신은 말한다. 당신이 따르는 그 길만이 신을 믿는 유일한 길이라고.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만약 종교가 단 하나만 존재한다면, 왜 당신들은 종교를 두고 다른 의견을 갖고 싸우는가? 당신들 모두 그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왜 서로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가? 우리는 도무지 그 점을 이해할 수 없다.


빨간 윗도리가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던 이유는 또 있다.

당신들은 우리 아이들을 데려다가 학교에서 교육하고, 당신들의 종교를 가르쳤다. 그 아이들은 그 후 가족에게 돌아왔지만, 더 이상 인디언도 백인도 아니었다. 그들이 배운 기술은 사냥에 아무 쓸모가 없다. 우리의 문화와도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형제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쓸모없는 욕망’에 길들여져 있다.

'쓸모없는 욕망'을 키우는 교육. 기독교를 중심에 둔 서양식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인디언의 삶이 아닌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이 살아남는 방식을 강요한 탓이다. 민주주의 역사가 길다고 자랑하는 서양의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다. 되레 다양성을 포용하는 측면에서 인디언이 살아가는 방식이 더 민주주의와 가깝지 않을까? 더 나아가 지금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져 내리는 까닭은 그 시작이 잘못됐기 때문이 아닐까?


형제여! 우리는 당신을 불쌍하게 여긴다. 당신들을 생각하면 마음속에 자비심이 일어나, 차라리 우리 쪽에서 선교사를 보내 그들에게 우리의 종교와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고 싶을 정도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행복하길 기원한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면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라. 우리를 더 이상 혼란에 빠뜨리지 말라. 우리는 얼굴 흰 사람들이 하는 방식처럼 위대한 정령을 숭배하지 않는다.

빨간 윗도리는 마지막 말을 덧붙이며 '우월한 백인'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까지 짓눌렀다. 선교사 크램이 추장의 악수를 거절한 이유다. '겁 많은 백인' 가슴에 비수를 꽂은 추장과 더는 말을 섞지 않겠다는 뜻이다.


뉴멕시코 주 인디언 보호구역. 이 척박한 땅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단 말인가 (출처 나무위키)

결국 백인들은 인디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제멋대로 했다. 드넓은 '어머니' 대지 위에서 살아가던 인디언을 살 수 없는 땅인 '인디언 보호구역'에 가뒀다. 내버려 두라는 말에도 끝까지 강요로 태도를 굳혔다. 고집대로 하는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오죽하면 미국 사회에 편입된 한 인디언이 이렇게 까지 말했을까?

백인들은 왜가리를 보호하고, 하와이에 있는 거위들을 보호하려고 힘을 쏟는다. 그런데 왜 인디언이 살아가는 방식을 지키려고는 하지 않는가?


백인들만 그럴까? 신자유주의 시대에 그런 사람들을 찾기 어렵지 않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끝 없이 반성을 해봐도 걱정만 앞선다. 필자 같은 사람들에게 인디언들은 다른 조언을 건넨다. 소개하며 마무리한다.


위대한 정령께서는 당신에게 두 개의 귀를 주셨지만, 입은 하나만 주셨다.
말하는 것보다 '두 배나 많이 귀 기울여 들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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