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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폐관수련인 Nov 22. 2022

모험가처럼

모험하는 사람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하나를 아는 방법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지?

누가 알려주기만 바라고 있자니 진전이 없는 것 같아 직접 찾아 나섰다. 그렇게 습관이 되어 이어져왔다.

어느 순간부터 검증된 것이 아니라면 인터넷의 지식들, 타인들의 경험을 완벽히 믿지 않게 되었다. 정확히는 사람을 안 믿게 되었다.


그런데 한 두 번이 습관이지,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는 이유가 생겼었다. 무슨 정보든 방법이든 직접 길을 만들어 공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에게 좀 더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부모님의 자책을 덜어드리기 위함이었다. 


개인의 주장이 들어간 방법이다 보니, 내 방식은 대부분이 주먹구구식이었고 보편적이지 못하다. 그럼에도 이런 모질이를 가족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에 나는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부모님의 목표가 내 인생의 목표였고, 내 인생의 목표가 가족들의 목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썩 잘하는 결과는 가진건 아니었다. 


나 혼자서 융통성도 없이 석학들이 쌓아놓은 그 수많은 지식들을 단기간에 이겨먹으려는 것도 웃기고, 다시 돌아서 가야만 하는 길도 여전히 자주 겪고 있다. 하나하나가 모험이고 도전이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고집을 부리는 걸까, 여전히 머리 쓰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10년을 넘게 자책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자기계발이라는 수식어는 내 방어 기제가 된 것 같다.


공부를 해 갈수록 날고 기는 친구들이 많다. 이 친구들은 도대체 어떻게 자라온 걸까, 머리 쓰는 방법을 어떻게 터득한 걸까. 감탄사만 나온다. 가끔은 멍하니 이 친구들의 똑똑함에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이들보다 잘하는 게 뭐가 있을까. 고집만은 세겠다. 그래도 기가 팍 죽어 있는 모습보다는 무식하게라도 막연한 기합이 나아 보인다.


갈수록 높아지는 문제의 난관들, 사람마다 넘을 수 있는 벽의 한계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나는 여기까지라고 답을 정해 놓으면 내가 참 불쌍해질 것 같지 않나, 마치 최첨단 AI로부터 시뮬레이션이라도 돌린 듯이 '너, 그 시험, 애초에 준비한다고 해봤자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안돼, 준비한다고 다 성공하면 개나 소나 하지' 라는 식의 대답은 지금껏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상한 결과대로 사람이 다 똑같으면 살아가는 의미가 없다. 결말이 정해졌다면 이 무수히 쌓이고 쌓인 인연의 굴레는 조물주가 프로그래밍한 대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세상에 에너지는 넘처나고 변수도 셀 수 없이 많다. 내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dkSV0gElxg&list=PLohYzz4btpaTcfcA9sQQ1KTSGHQW-Q-nL&index=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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