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조건]
30대 중반의 K사원은 흔히 엄친아라고 말하는 고스펙에 자산도 많은 제 3자가 보기에 어디 하나 부족함 없는 대기업 직장인이다. 긴 연휴를 보내고 돌아온 K씨가 커피 한잔을 하자며 말문을 튼다.
K: 선배 저 한 명 더 생겨서 다섯 명이에요 이제
N: 와 이번에는 어떤 분이에요? 사진 한 번 보여줘요
K: 31살 의산데 그냥 이쁘장해요 아휴 뭐가 다 소용이겠어요 결혼도 안 할 건데
여기서 다섯 명이라고 하면 K가 지금 만나고 있는 자칭 애인의 숫자이다. 처음 한 두 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움을 느꼈지만 어느덧 일 년 넘게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매주 연재되는 웹툰을 보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K의 기준은 명확하다.
대한민국 결혼시장에서 흔히 보는 능력, 집안, 외모, 성격, 몸매 다섯 가지의 오각형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함이 없이 완벽해야 한다.
N: 왜요? 다 괜찮은 거 같은데 집안이 별론가?
K: 나이가 많아요
그렇다 K에게는 30대 이하라는 철저한 그만의 보이지 않는 기준이 존재했다.
5명과의 연애에서 어느 하나 진심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K가 뱉어내는 문장에는 단어 하나하나에 확신에 차있다
어느 방송에서 배우 주우재 씨는 연애를 왜 안 하냐의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다
“20대 초반에는 10개 중에 하나만 맞아도 GO였는데 30대가 되고 나니 10개 중에 하나만 아니어도 주저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수록 나만의 기준이 하나둘씩 생기며 나는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간다.
이번 연애는 담배 때문에 다음 연애는 술 때문에 그다음은 이성 때문에 3번의 만남 끝에 담배를 안 피고 술을 좀 덜 즐기고 이성문제가 없는 사람을 찾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을 소개해줄까라는 말에 자신에겐 너무나도 당연한 나만의 기준들을 나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생각한다.
“기본을 갖춘 사람을 원하는 내가 생각보다 까다로운 사람이구나”
흔히 사람들은 눈이 너무 높다는 얘기를 하는데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나이가 들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 뚜렷해진다. 그에 따라 이성에 대한 5가지 기본 항목(키, 외모, 성격, 집안, 능력)들의 기준이 세분화되고 명확해진다. 눈이 높아지는 건 단순히 돈이 엄청 많거나, 연예인처럼 예쁘거나 이런 조건이지만 나는 이것과는 조금 다르게 좀 더 까다로워진다는 표현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나를 더 잘 알게되고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지 뚜렷해진다. 다른 의미로 까다로워진다. 그래서 “아무것도 모를 때” 결혼을 하는 게 좋아 라는 말에 공감을 한다
이런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결혼 전에 사람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 “많이 만날수록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 지금에서야 그런 말을 한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진짜 겪어보고 말해주는 책임감 있는 말인가? 아니면 그러지 못했던 바람을 그저 책임감 없이 던지는 말인가?
가끔 아무것도 모르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