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Marrickville - 호주속 작은 베트남 마을
오늘은 매릭빌(Marrickville)이다. 오래되고 정리정돈이 안 된 곳에서 느끼는 편안함이 좋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 있다. 베트남 식당, 스페셜리티 커피, 수제 맥주 양조장 그리고 친구들~~
매릭빌 기차역에서 나오면 메인도로 일라와라 로드 (Illawarra Rd)를 따라 3분 거리에 VN Street food가 있다. 여기 메뉴는 분짜로 통일한다. 시원하고 달달한 육수에 숯불에 구워 불 냄새나는 돼지고기를 촉촉이 적시어 쌀국수 면과 야채, 커리엔더를 같이 젓가락으로 말아서 한입에 넣으면 웬만큼 입맛 없다는 사람들도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이다.
매릭빌은 특히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인데 베트남 식당, 베트남 과일가게, 베트남 커피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다문화국가 호주는 이민자들이 모여서 특색 있는 동네들이 있는데, 라이카트(Leichhardt)는 이탈리아, 버우드(Burwood)는 중국, 어번(Auburn)은 중동, 여기는 호주 속의 작은 베트남이다.
당연히 분짜 말고는 이 동네에는 베트남 바게트인 '반미'와 쌀국수 '퍼'도 있다. 반미는 프랑스 바께트 빵처럼 딱딱한 빵 가운데에 계란 프라이, 말린 돼지고기, 야채를 넣어서 만든 베트남식 서브웨이(Subway)로 간단한 점심메뉴로도 좋다. 술 퍼 먹고 해장하기에는 '퍼'만 한 게 없다. 뜨거운 육수에 얇게 썬 소고기가 들어간 쌀국수인데 강한 고수 향이 술 먹고 다음 날에 먹으면 정말 시원하다. 참고로 매릭빌은 베트남중에서도 사이공처럼 남부 사람들이 많고, 하노이의 북부 사람들은 뱅크타운(Bankstown)에 많이 모여 살기 때문에 제대로 된 '퍼'를 먹고 싶으면 뱅크타운의 안 레스토랑도 추천한다.
VN Street Food에서 분짜를 맛있게 먹고 나오면 달달한 베트남 커피집도 있지만 눈감고 지나쳐라. 왜냐하면 매릭빌에는 아주 좋은 스페셜티 커피가 많다. 어느 곳이 최고라고 등수를 매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커피는 어떤 원두로 어떻게 언제 로스팅을 했냐에 따라 풍미와 산미가 달라지니 그때그때 다르다. 구글에 조금만 검색해보면 지도, 영업시간, 별 점수까지 잘 나와있어서 한 곳을 추천하기는 뭐하지만 모르겠다면 브런치 하기 좋은 로즈빌 (Roseville)과 데이비드 베컴이 찾는 알케미(Alchemy)는 기억해두면 도움이 된다.
구글로 찾아다니면서 자연스레 동네 구경도 하다 보면 이제 해가 꺾기기 시작하고 바야흐로 술시, 맥주를 마실 시간이다. 한국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소주가 있지 않은가? 그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자도주 구매제도”인데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해당 지역에서 만든 소주를 50% 이상 유통하게 했다. 그래서 서울, 수도권은 참이슬, 강원도는 처음처럼, 경남은 화이트, 부산은 C1, 전라도는 입새주, 제주도는 한라산이 지역의 소주가 되었다. 호주도 NSW는 파란색에 사슴뿔이 있는 Tooheys NEW, QLD는 XXXX, VIC는 VB, SA는 coopers 그리고 타즈만니아는 James boag 가 공장이 위치한 주를 대표하는 맥주이다.
이런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맥주 말고도 양조장에 가면 장인의 특별한 레시피로 만든 수제 맥주 (craft)를 맛볼 수 있다. 또 당연히 수제이니 맛을 모를 테고 그러면 당당하게 “Can I try?”를 외쳐도 된다. 그러면 글라스(Glass)에 테이스팅 할 수 있도록 줄 것이다. 공짜로 받아먹는 술이 부끄럽다면 테이스팅 플래이트(Tasting Platter)를 시켜도 좋다. 5가지 다른 맥주를 선택하며 Glass로 서빙을 하는데 둘이 간다면 Platter 하나 시켜서 다양하게 맛보고 와도 좋다.
우선 맥주를 주문할 때 같이 알아야 되는 게 잔의 사이즈다. 가장 작은 Glass(200ml), Middy (285ml), Schooner(425ml) 그리고 Jug (1140ml) 순서이다. 우리의 생맥주 500 사이즈보다 조금 작고 허리가 잘록한 스쿠너(Schooner)로 보통 마셔서 저그(Jug)로 안 팔 수도 있다.
또 맥주는 발효방식에 따라서 라거와 에일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의 카스나 화이트처럼 탁 쏘고 시원한 청량감을 가진 맥주를 좋아한다면 라거(Lager)이고 호가든이나 1664 블랑처럼 과일향을 좋아한다면 에일(Ale)이다. 에일 중에서도 페일 에일 (Pale Ale)은 붉은색을 띠며 과일의 풍미로 상큼한 것이 특징이다. IPA(Indian Pale Ale)은 페일 에일에 적도를 통과해서 인도로 이동하는 동안 방부제 역할을 하는 홉을 많이 넣어 특유한 쓴맛과 알코올 농도가 높다. 쓴맛이 싫다면 사과를 효소 발효시켜 설탕을 넣지 않고 만든 알코올 농도가 4.5% 인 Cider 도 좋다.
브류어 리(Brewery)는 창고같이 수수한 건물에 화려한 네온사인도 없어서 모르고 지나칠 수가 있다. 그래서 가기 전에 검색을 해서 정확히 주소와 영업시간을 확인하는 게 안전하다. 몇 군대를 추천하면 Willie the boatman, Batch Brewing, Stockade Brew, Grifter가 있고 하나만 꼽으라면 Henry Young이다.
Henry Young Brewery는 2012년에 음악, 자유, 모험을 좋아하는 바이커들이 오픈해서 분위기가 힙하면서도 자유분방하다. 오토바이 타는 덩치 좋고 문신한 무서운 형들도 많이 오고, 동네에서 개 데리고 맨발로 오는 한량 아저씨도 있고, 머리 염색하고 혀찌, 코찌 하고 누가 봐도 락을 할 것 같은 친구들도 온다. 무서워하고 크게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 누구나 술잔 앞에서는 평등하고 자유로운 곳이다.
이제 어느덧 술시도 끝나고 깜깜해진다면 돌아갈 시간이다. 용의 여의주 닮았다는 베트남 과일가게에서 용과(Dragon fruit), 용의 눈을 닮은 용안, 과일의 여왕 두리안을 챙겨서 돌아가자. 매릭빌은 십 년을 100타 아래로 줄이기 위해 매번 치는 골프처럼 베트남 식당, 커피, 맥주 때문에 항상 꾸준히 오게 된다. 오늘 밤도 술 익는 마을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이곳에서 맥주는 술이 아니라 문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