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유럽 사람들에게 호주는 주인 없는 땅이란 뜻의 Tera Australis라고 불렸는데 그들의 영웅, 캡틴 쿡(James Cook, 1728~1779)이 1770년 시드니를 포함한 호주 동부 대륙을 탐사하고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버렸다. 대항해시대라고 포장되고 제국주의라고 말하는 시대이다. 그 후 1778년 1대 총독, 필립 아써(Phillip Athur, 1738~1814)가 11척의 배로 천여 명의 군인과 죄수를 시드니에 이주시킴으로써 수만 년 동안 평화롭게 살던 75만의 원주민에게 피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원주민에게 땅과 바다는 신이 준 선물이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유재산의 개념도 없고 부족마다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의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주 쉽게 "주인 없는 땅"에서 쫓겨나고 총칼에 죽고 유럽에서 온 천연두, 홍역 같은 바이러스로 몰살당하기 일수였다. 일명 시드니 전쟁, 블랙 전쟁이라 불리는 대학살이었다.
차후에는 원주민은 죽이는 것보다는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다는 판단하에 원주민이 태어나면 정부 주거, 교회시설로 보내지거나 백인 가정에 위탁 교육시켰다. 이른바 문화말살정책이었는데 그들은 태어나면서 존재를 부끄럽게 여기게 되었고 고유의 언어와 문화는 사라지게 된다. 1910년부터 1970년까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 스톨런 제너레이션(Stolen Generation)의 시작이다.
원주민은 백호주의 법이 한몫하여 인구조사에 포함시키지도 않아서 정확한 숫자는 파악되지 않으나 1920년에는 원주민의 숫자는 6만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1965년 백호주의 법이 폐지가 되면서 원주민도 참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1998년 5월 26일부터 National Sorry Day를 만들어 Stolen Genration 대한 범죄를 공식화하였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는 원주민 육상 스타인 캐시 프리먼 (Cathy Freeman)이 성화봉송과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이 땅의 주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한번 더 일깨워줬다. 2008년 Prime Minister 캐빈 러드(Kenvin Rudd)가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호주 정부를 대표하여 원주민에 사과를 하였다.
원주민이라 하면 본토에 사는 Aborigin과 호주 최북단 Cape York 반도의 북쪽, Thursday 아일랜드를 포함한 270여 개의 군소 섬, 즉 Toress Islands 출신을 말한다. 총 호주인 인구 중에 70만 명으로 3.3%를 차지하며 이는 호주 내의 중국인(5.6%) 보다 작은 숫자이다.
지난 백여 년간 차별로 원주민은 낮은 교육 수준, 높은 실업률을 비롯하여 술과 마약 문제도 많다. 결과 3%밖에 안 되는 호주 인구 중에서 수감자의 30%가 원주민이란 사실을 보면 얼마나 제도적인 차별이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다.
1953년 QLD 외곽, 원주민 부모에게 태어난 리차트 벨 (Richard Bell)은 1970년대부터 원주민 인권운동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원주민을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사회운동가로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유럽의 지도 위에 YOU COME FROM HERE라고 쓰는가 하면 리히텐슈타인의 팝아트에는 I am not refugee라고 말한다.
2021년의 사회를 평등한 세상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I cannot breath라고 외치며 백인 경찰에게 살해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e, 1973~2020)가 촉발한 Black Life Matters 운동과 여전히 뉴스를 장식하는 유색인종 차별 기사를 접한다.
Jonny라는 작품 속에서는 당시 국무총리인 존 하워드(John Haward, 1996-2007년 25대 국무총리)가 원주민에 대하여 공식적인 사과를 거부하여 이 작품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힘을 써서 깨어있지 않으면 우리가 Jonny가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