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말 못 할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
이승원 감독의 영화 <세 자매>를 보았다. 교회 성가대 지휘자로 교수의 아내로 두 아이 엄마로 완벽하고 단란해 보이는 가정의 미연(문소리), 쌍욕을 하는 문제 딸 박화영을 키우는 큰언니 희숙(김선영) 그리고 과거의 별거 아닌 일에 집착하며 알코올 중독에 돌아이 짓을 하는 막내 미옥(장윤주) 세 자매 이야기다. 가벼운 영화라 생각했는데 가만히 세 자매가 입 버릇처럼 하는 말들을 하나씩 곱씹어보니 영화가 제법 깊다. 깊어서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나의 아픈 가족 이야기들까지 파고 들어온다.
미연은 식사기도 못하는 딸을, 외도하는 남편을, 그리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사는 언니를 기도가 부족해서 시련을 얻는 것이며 기도로써 하나님이 해결해줄 거라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조롱하기라도 하듯 남편과 교회의 자매가 교회 안에서 불륜을 저지르고, 어린 시절 술주정에 폭력을 행사하며 지옥에 가라고 저주받던 아빠가 하나님에게 용서받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양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빠의 생일날 오래간만에 온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남동생은 불우한 어린 시절탓인지 정신병증세가 있어 아빠를 향해 오줌을 갈겨버린다. 난장판이 된 생일상에 아빠가 목사에게 사과를 하니 항상 속내를 감추며 기도로 해결하던 미연은 아빠를 향해 "가족들에게 사과하라"며 소리치며 울분을 내뿜는다. 막내는 또 술이 되어 분위기를 더욱 깽판으로 만들어가고 그 와중에 큰 언니는 돈이 아까우니 음식을 먹자며 입으로 쑤셔 넣는다.
그렇게 싫어했던 아빠지만 이제 세 자매는 아빠와 닮아 있었다. 술 먹는 버릇은 미옥이, 화났을 때의 눈빛은 미연이 나눠가지고 있었고 희숙은 항상 미안하다며 눈치 보고 주눅 든 모습이었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란 세 자매는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 그럼에도 엄마는 "이제 아빠 안 그런다."다면서 과거를 덮어버리고 무마하려 한다. 아니 엄마는 그렇게 가정을 지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가정사가 비슷한 우리 세 남매가 생각난다. 아빠는 술만 먹으며 엄마를 때렸고 어릴 때는 우리 세 남매는 울며 아빠가 빨리 죽기를 바랐다. 우리가 좀 더 커서는 두 살 위인 누나는 이제 울지않고 아빠한테 대들기도 했고 힘이 생긴 나는 아빠를 붙잡고 찬물을 끼얹기도 했었다. 출가 후에도 누나는 아빠를 불편하게 생각했고 나는 적당히 거리를 두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은 누나는 아빠에 대한 애정은 별로 없고 장녀로서 의무만 있고, 난 가끔 추억하는 정도이다. 우리집 막내는 술먹고 행패부리는 아빠를 이상하게도 좋아했는데 지금은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조울증 치료인지 격리를 받고 있다.
인생을 멀리서 보며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고 나는 이제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셰익스피어는 500년 전에도 이미 알았던 것 같다. 사람은 말 못 할 속사정과 가정사를 가슴 깊이 숨겨두고 살고 있다. 사람 사는 거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냥 평범히 가족들과 오손도손 사는 일이 왜 이리 힘든지 모르겠다.
우리 세 남매의 사진을 찾아봐도 없다. 세 자매를 보니 우리 세 남매가 가엽고 그리워진다. 한국 가면 우리 세 남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도 가서 밥도 먹고 사진도 찍어야겠다. 맘이 찡해 눈앞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