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ID Festival 2023
남반구 호주는 한창 겨울입니다. 6월의 아침 온도는 5도 정도이고 낮 온도가 20도 정도라서 한국의 가을날씨라고 얕잡아보다가는 감기 걸려 시드니에서 호텔방 신세만 질 수도 있습니다. 한국처럼 난방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고 시드니항에서 불어오는 남극의 차가운 바람을 한껏 온몸을 휘감싸면 정말 뼛속을 스미는 차가움이 무엇인지 몸소 느낄 겁니다. 여하튼 생각보다 춥지요. 더구나 겨울철에는 5시면 해가 떨어져서 어둑한 데다가 시드니는 가로등이 많지 않고 사무실들도 야근을 안 하니 더욱 밤거리는 차가운 바람만 헹하니 불고 썰렁합니다.
이런 호주의 겨울밤을 아주 따끈따끈하게 해 줄 축제가 있는데요, 바로 비비드 페스티벌(Vivid Festival)입니다. 오페라하우스, 현대미술관등 써큘러키의 건물들에 화려한 빛으로 작품을 만들고 음악과 공연까지 더해져서 화려한 미디어 아트 축제를 합니다. 코로나로 취소되고 축소되었다가 2023 비비드가 13번의 페스티벌 중에서 가장 화려하고 큰 규모를 자랑하지요. 2023년 비비드는 5월 28일부터 6월 17일까지 3주간 열리고 특히 기아와 엘지가 메인 스폰서로 참여를 했네요.
저도 가이드일을 하면서 한국에서 온 공무원분들과 관광객들과 함께 배를 타면서 또 걸으면서 비비드를 즐겼는데요 특히 일주일 2번씩 하는 드론쇼가 있는 날은 서울의 출근길 지하철처럼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도 앞사람 어깨 위로 넓고 까만 하늘에 펼쳐지는 오페라하우스와 드론쇼는 충분히 볼만했습니다. 워낙 한국에서는 레이저쇼, 드론쇼, 불꽃쇼가 화려해서 오히려 시드니의 비비드가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시드니는 언제나 오페라하우스 혼자 열일을 하는지라 조개껍질모양의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면 맘속에 특별하게 각인되어 시드니의 밤을 낭만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코로나도 끝나고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축제를 여는 것도 3년 만이고 또 가이드로써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도 오랜만이라 바쁘지만 즐겁고 보람된 시간입니다. 이제 비비드가 끝나면 시드니의 밤은 더욱 깜깜해지고 추워집니다. 호주에서는 7월, 8월이 가장 추운 달이니까요. 특히 밤문화가 없는 시드니에 살다 보면 겨울밤에는 보통 퇴근하고 6시에 저녁 먹고 9시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게 호주 사람들의 일상입니다.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이지만 역시 심심합니다. 몸에 좋은 것은 맛이 없고 심심하다고 할까요? 그래서 어떤 이는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호주는 재미없는 천국이라고 말했다지요.
고향에서는 겨울밤에 집에 들어가다 보면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는 트럭에서 대게를 찌고 있고 붕어빵을 굽고 있고 군밤, 군고구마 향기가 추운 골목에 빨리 번집니다. 밤에 군것질거리를 한상 채려 놓고 드라마를 보고 가요무대를 보다가 출출하면 라면을 끓여 먹고 자던 옛날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빨간 포장마차에서 흘러나오는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