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있어서 시간의 개념은 생명과 같다. 생명과 시간을 동일선상으로 놓고 보는 개념이 맞을까 싶기도 하다.
모태에서 아이가 생기게 되면 그 아이에겐 즉각적으로 시간의 개념이 생긴다. 그리고 이 아이가 커서 이유, 시간 장소 등에 상관없이 죽게 되면 시간의 개념 또한 사라지게 된다. 과연 시간과 생명을 이러한 같은 개념으로 봐도 괜찮을진 모르겠다.
시간은 돈을 주고 살 수 없다. 중국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원해서 불로초를 찾으러 다녔다는 것은 그도 시간을 돈 주고 살 수 없었기에 그런 발악을 한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수천 억 원의 자산이 있든, 이 돈으로 일평생 시간을 할애하여 불로초를 찾든 인간은 시간을 절대 통제할 수 없다. SF영화에서 과거 여행 또는 미래 여행 개념이 단골로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다룰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이란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누군가에겐 그토록 원하고 바랐던 오늘"
이 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적 개념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알 수 있다고 본다.
누군가가 간절하게 바랐던 오늘을 우린 어떻게 허비하며 살고 있는 걸까. 시간의 흐름을 당연히 생각하고, 흐르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모습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내 옆에 있는 아내와 남편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내 옆 자녀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부모님을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친구들을 볼 수 있을까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일 할 수 있을까
고통에 힘겨워하는 하루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이 하루가 얼마나 간절한 것일까. 목표가 좌절되고 전재산을 잃었어도 그것이 살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일까. 돈과 집이 없어도 좋으니 좀 더 살고 싶은 자들의 간절함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현대인에게 있어서 "하루의 삶 자체가 그것으로 의미 있다"는 말은 단지 추상적인 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을 조금이라도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선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시간을 좀 더 감사한 마음으로 바라봐야 하지 싶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들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타인이 먼저 내일 사라질 수 있는 것이며, 내가 내일 당장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심지어 지구 종말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시간은 누구에게나 태어나는 즉시 주어진다. 참으로 공평하다.
하지만 시간의 끝을 그 누구도 정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더욱 공평하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자들은 '비 내림'도 너무 아름답고 중요하다고 한다.
오늘은 비가 내린다.
당연한 권리의 시간적 개념에서 비 내리는 것에서 감사함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소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오늘 내일의 시간적 개념은 '지옥'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일 죽어도 오늘의 비내림을 기쁨으로 느끼는 자야 말로 '천국'에 있는 자와 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