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에세이
처음으로 부모님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10월 23일 오후 4시경 부모님과 섭지코지에 도착했다.
그날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바람'이었다.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바람의 세기는 이 세상 바람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그때 그러한 바람을 쐬 본 기억이 없다. 바람은 대체적으로 세차게 불었다. 여름바람도 아니고 가을바람도 아닌 낯설고 난해한 바람이 아버지와 어머니 나에게 불었다. 시원했다. 바람은 나의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관통하는 듯한 세기로 세차고 칼같이 불어왔다.
하지만 바람이 그만 불었으면 좋겠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바람은 살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바람이란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죽기 전에 이런 바람맞으며 죽으면 참으로 근사하겠단 생각까지 했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시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끊임없이 손으로 정리하느라 분주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은 빛났고, 입가엔 반짝이는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바람이 가져다준 행복이었다.
우리는 바람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다. 그저 바람이 나와 우리 부모님에게 잠깐의 행복을 선사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다른 누군가의 입가에 미소를 지어주길 바랄 뿐이다. 때론 눈물짓게 해도 된다. 하지만 슬픔을 주진 말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앞 5미터 정도 앞서서 걸어가셨고 난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오랜만에 두 분이 걸으시는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태산과 같이 컸던 부모님의 존재가 지금은 작은 산처럼 변해 있었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지만 참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부모님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의 시간은 바람의 끝점으로 향하고 있다. 시간을 멈추고 싶지만 시간은 제 갈 길을 가야만 한다. 앞으로 가야만 하는 시간 속에서 부모님의 남은 시간이 기쁨으로 밝게 빛났으면 좋겠다. 빛을 미약하게나마 줄 수 있는 아들로 살아가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