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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CHOI Apr 20. 2024

광명 중학교 : 도망가즈아

추억

도덕초등학교에 처음 전학 간 날 나에게 처음 말 걸어준 0래는 중학교도 같았다. 초등학교 6학년을 이어서 중학교 1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다. 인연이었나 보다. 근데 2학년도 같은 반이 되었었다. 운명인가, 잘 모르겠다.


중학교 1학년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수업 하나가 끝나면 10분 정도 휴식시간이 주어졌는데,  어느 날 오전 수업 끝나고 휴식시간을 이용해 0래와 매점을 갔었다. 무언가 사 먹고 그러고 나서 다시 교실로 올라가려고 하는 길목 학교 소각장 쪽에서 누군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야! 너희 둘 이리 와바"


처음에 나와 0래를 불러 세우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질이 안 좋은 놈이구나라는 것을, 그리고 뒤를 돌아 목소리 주인공의 얼굴을 본 순간, 무언가 큰일이 생기겠다고 생각했다. 피부는 좀 까무잡잡하고, 머리는 스포츠머리에 전형적인 중학교 2학년 아니면 3학년 생이었다. 일진의 상징 교복바지 밑단 줄이기를 본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그 선배의 표정이 너무 무서웠다.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질 안 좋은 사람에게 걸려서 돈 털리기를 당해보는 건가? 이게 TV에서만 봤떤 그런 건가 라는 두려움이 마구 밀려왔다. 너무 무서웠다. 혹시라도 저 선배가 때릴까? 무서워서 내 옆에 있는 0래는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그 공간에 나와 그 무서운 선배 둘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반 학우 중에 이름이 '오대건'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의 별명은 '오백원'이었다. 왜 별명이 오백원인지는 자세한 설명 없어도 수긍이 될 것이다. 키는 나와 0래보다 작았고, 하얀 피부에 머리는 약간의 곱슬이었던 전형적으로 교실에서 평범하고 존재감 없는 그런 친구였다.


공포와 두려움의 총본산 같은 소각장 길목에서 갑자기 별명인 오백원인 대건이가 나타났다. 피부가 하얘서 그랬는지, 빛이 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 밝게 빛이 났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의 0.5초 정도의 시간 속에서 생존본능이었을까? 아무렇지 않게 0래와 나의 옆을 지나치는 대건이를 이용해야겠다 생각했다.


"대건아! 같이 가자! 헤헤..."


무서운 선배가 0래와 나를 불러 세우고 그 선배 쪽으로 걸어가기로 첫 발을 떼기까지  2초 정도의 시간이 흐른 상황이었고, 대건이를 부르고 그 친구 옆에 자연스럽게 따라가기까지는 거의 0.5초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말 기가 막힌 판단력이었다. 이게 과연 중학교 1학년의 판단력이었단 말인가.


무서운 선배는 나를 다시 불러 세우지 않았다. 나를 불러 세울 타이밍이 나오지 않을 만큼 빠르게 상황이 전개되어서 그냥 나를 보내준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대건이 어깨 위에 팔을 올리고,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온 상태였다. 그리고 대건이는 왜 갑자기 친한 척하냐는 식의 표정으로 나를 올려 보고 있었다. 내 키가 더 컸기 때문이었다. 순간 어깨 위의 팔을 황급히 떼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대건이와 나는 교실로 향하게 됐다.


그제야 0래만 혼자 두고 온 것이 생각이 났다. 0래는 어찌 됐을까, 돈을 뺏겼을까, 한 대 맞았을까? 그런 생각을 혼자 의자에 앉아 하고 있는 중에 0래가 교실로 들어왔다. 0래의 표정을 본 순간 무언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다. 생각보다 별 일은 없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0래도 놀랐는지 무언가 잠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조금 차렸는지 그제야 나의 얼굴과 눈을 빤히 보았다. 그러고 어떤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난 속으로 "제발 말하지 말아 줘"를 외쳤다.


0래는 말했다.


"야.. 너 어떻게 혼자 도망칠 수 있냐....."


나는 아무 말할 수 없었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때 또 인생을 배웠다. 도망간 자의 수치심은 정말 깊다는 것을 말이다.

죽더라도 무사처럼 명예롭게 적장의 칼에 베여서 죽는 게 멋있는 인생이란 것을...


이제 절대 도망치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 이후로 현재까지 광명중학교 소각장에서처럼 무서운 사람이 부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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