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그 당시 PC방 열기는 열광적이었다. 스타크래프트, 레인보우 식스, 포트리스, 디아블로 등 우린 끊임없이 PC방에 목말라 있던 중학생들이었다. 햇빛이 없었던 매우 흐린 날, 여전히 그날도 친구들과 배틀필드 PC방에 갔다.
"얘들아 미안, 자리가 없어"
자리는 만석이었다. 그렇다. 오전 시간에 갔었는데 자리가 만석일 정도로 당시 PC방 열기는 대단했다.
"언제 자리 나요!?"
주인 형이 대답했다.
"아마 좀 걸릴 것 같아..."
우린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친구 몇 명이 다른 이들의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5분쯤 기다리고 있었던 때였다. 11시 방향에 어떤 사람도 서서 기다리는 눈치였다. 나이는 대략 나보다 한두 살 많은 것 같이 보였다. 이 근방에 학생이라면 광명중학교 선배겠지 생각은 했지만, 이상하게 그 사람과 눈을 다섯 번 정도 마주쳤다.
하지만 기다리는 중에 친구들의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다른 PC방으로 가보자는 여론에 힘이 실리게 된다. 그렇게 나도 친구들을 따라 배틀필드PC방 문을 닫고 계단에 내려가고 있었다. 나머지 두 명의 친구는 이미 밖으로 나간 상태였고, 내가 가장 늦게 나왔다. 그리고 그 앞에 동민이가 계단을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때 광명중학교 소각장에서 들었던 비슷한 느낌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야! 너 이리 와봐"
이리 오라고 하면서 그 사람은 계단을 아주 빠른 속도로 내려와 내 앞까지 걸어 내려왔다.
"야"
"네?"
"너 ㅅㅂ 왜 자꾸 야리냐..."
아까 나랑 눈이 다섯 번 정도 마주친 그 사람이었다. 교복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바지 밑단은 매우 좁게 줄여져 있었고, 당시 일진의 상징이던 '항공모함' 신발 사이즈 290을 신고 있었다. 전형적인 양아치 아니면 일진이었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왜 아까 자꾸 나 쳐다봤냐고 이 새끼야"
그러면서 내 옆에 있던 비상구 조명을 발로 차 깨트리는 것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러 몸을 움츠렸다. 거기서 내 앞에 걸어 내려가고 있던 동민이는 멈춘 뒤 다시 내쪽으로 올라와 그 형을 제지하면서 하지 말라고 말렸다.
동민이의 존재가 정말로 예수님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 그 선배는 뭐라고 좀 더 욕을 하고 다시 PC방으로 올라갔다.
동민이가 너무 고마웠다. 본인도 분명 무서울 텐데, 나라면 그냥 못 본 척하고 그냥 내려갔을까? 아마 그랬을지도 모른다. 소각장에서 도망치던 놈이 어련할까.
그러면서 0래를 혼자 두고 도망쳤던 그때가 다시 생각나면서 혼자 남아 있던 0래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내가 그때 옆에 있었다면 동민이와 같이 든든하게 느껴졌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0래는 나보다 싸움을 잘해서 나의 존재가 동민이만큼 느껴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들긴 했다.
정말 그 이후로 절대 도망가지 않아야겠단 다짐을 했다.
누군가 어려움에 처하면 동민이처럼 옆에서 지켜줘야겠단 생각을 강하게 했다.
아니.....지켜주는 것은 고사하고 도망가지는 말자...최소...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참고로 PC방 일진 선배의 인상보다 소각장 선배의 얼굴이 5배 정도 더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