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과 무 그리고 콩죽
둘째를 낳고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는데 결혼한 막내 여동생이 왔다. 둘째도 딸이라 혹여 언니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신경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검은 봉다리를 들고 왔길래 뭐냐고 물으니 메밀 가루라는 것이다. 큼지막하게 잘 생긴 겨울 무도 함께. 동생은 메밀칼국수를 해주겠다고 부엌으로 갔다. 어머니는 언니 옆에서 얘기나 하고 있으라고 하면서.
한 시간 후 어머니가 고아 둔 사골국물에 끓인 메밀칼국수가 나왔다.
“ 국물이 왜 이렇게 달지?”
“ 언니, 겨울 무가 달아.”
달면서도 깊은 국물 맛이 메밀칼국수에 감겨왔다. 친정어머니는 흐뭇하게 웃으며 맏이인 나를 낳을 때 메밀가루를 반 되도 못 먹었다는 얘기를 한다.
“동짓날에 너를 낳고 저녁 먹고 자리에 누우면 배고파 잠이 안 오더라. 밤은 한없이 길고, 너는 배고파 울고, 빈 젖을 물리며 꼬박 밤을 새우면 몸이 허깨비처럼 돼서 4.3 때 죽은 친정어머니 생각이 와싹와싹 나. 부엌에 저녁에 먹다 남은 메밀 조배기(수제비)가 남아있는 것 같아도 부끄러워 시어머니께 그 말을 못 하는 것이 시집이더라. 넌 평생 울어야 할 울음을 그때 다 울었져(울었다).둘째 가지고는 시집을 벗어났으니 메밀가루를 두 되 장만하고 실컷 먹어야지 했는데 음력 삼월에 낳으니 밤이 점점 짧아지는 거라. 저녁에 자면 아침에 일어나도 되더라고”
쌀이 귀했던 제주는 메밀이 산모들에게 각광받는 음식이었다. 쌀이 흔한 지금도 해산 후면 미역국에 메밀 한 두 되는 먹어야 피가 맑아진다고 한다.
막내 여동생은 친정집의 요리사였다. 막내의 결혼날짜가 다가오자 어머니는 사사건건 막내에게 시비를 걸며 다퉜다.
“ 어머니, 무사 경 싸왐수과게?(무엇 때문에 그렇게 싸우세요?) ”
“ 너도 나중에 자식 키워봐라.... 큰 재산을 잃는 간 허다( 잃는 것 같다) ”
막내 결혼을 서두른 어머니였지만 막상 보내려니 뭐든 잘하는 딸이 너무 아까워서 어머니는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만했다. 막내는 냉장고에 뒹구는 애호박 두 개로도 멋진 상차림을 내오곤 했으니까.
둘째 딸을 낳아 서운한 마음은 없었지만 미술 선생님 막내가 퇴근하고 와서 만들어 준 사골 메밀칼국수는 온몸의 세포를 타고 젖 먹이느라 기진해진 내 몸을 회복시켰다.
제주를 떠난 지 20여 년, 나는 마음이 허해질 때면 고향 음식을 해 본다. 무를 채 썰어 넣고 사골국물이 없어도 닭고기나 쇠고기를 고명으로 넣어 메밀칼국수를 만드는 것이다. 북쪽 지방 사람들이 냉면을 먹으며 속을 해갈하는 것처럼 남쪽 지방의 나는 더운 메밀칼국수를 먹으며 속을 푸는 것이다. 칼국수를 먹고 국물을 들이켜면 메말랐던 영혼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낀다.
사회생활 적응하느라 지친 아이들을 위해서는 간식으로 빙떡을 만들어놓기도 한다. 역시 주재료는 무와 메밀이다. 강원도 메밀이 좀 검은빛을 띤다면 제주 메밀은 흰빛에 가깝다. 아이들 말로는 우유 맛이 난다고.
빙떡은 메밀가루를 미지근한 물에 풀어 약간의 소금과 참기름을 한 숟가락 넣고 잘 저어주는데, 메밀가루는 점성이 약해서 반죽을 충분히 저어주어야 한다. 나는 유기농 밀가루를 20% 섞어 점성을 보충한다. 국자로 떠서 주르륵 떨어질 만큼의 농도가 적당하다. 반죽이 되면 텁텁해져 맑은 맛이 덜하다. 무쇠 솥뚜껑 엎어놓고 돼지비계 기름으로 지져야 제격이지만 따뜻할 때 바로 먹지 않을 경우는 보통 식용유를 쓴다. 참기름이 더 맛난 건 말할 필요도 옶다. 할머니가 “쇠똥도 촘지름 볼르면(바르면 ) 맛 좋나(좋다)”했으니까.
팬에 국자로 두 번 빙빙 돌리며 부어 익혀서 도마 위에 펼쳐놓고 준비해 둔 통깨와 쪽파로 양념한 삶은 무채를 담고 김밥 말 듯이 누르면서 말면 끝이다.
입맛이 귀족급인 첫째는 무채에 참기름이 들어가면 무 맛을 해친다고 한다. 식당에서 파는 메밀전병과 다른 점은 바로 속 재료다. 빙떡에는 고춧가루나 매운 것을 넣지 않는다. 무와 쪽파 조금, 깨소금이면 된다. 포인트는 무가 맛이 있어야 하고 소금 넣고 무채가 부스러지지 않을 정도로 삶아서 살짝 짜야한다.
친정집 뜨락의 국화와 빙떡
나는 빙떡이 몽골 만두인 줄 알았다. 제주도는 몽고의 지배를 오래 받아서 음식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므로. 그러나 몽골 만두는 육고기, 즉 양고기가 들어가는 음식이고 제주빙떡은 채식문화의 산물이다. 한 번은 나도 무채 소에 고기를 넣어보았는데 내가 원하던 맛이 아니었다. 역시 제주빙떡은 무의 담백함으로 승부를 보는 음식이었다. 그러므로 빙떡은 추석 음식이 될 수 없고 무가 맛있는 설 명절 음식이나 김장철 겨울 간식이다.
친정 할머니 제사가 겨울이라 이모는 채롱에 가득 빙떡을 해 오셨다. 장사하느라 바쁜 언니를 생각해서 동생인 어머니가 제사 모신다고 늘 미안해하는 마음이 채롱 켜켜이 담은 빙떡에 있었다. 제사가 끝나면 우리들은 열 개씩 나눠주는 빙떡을 들고 와 다음날 프라이팬에 노릇하게 구워서 먹었다. 제주 4.3으로 부모 형제를 다 잃고 두 자매가 의지 암지 하며 살다가 이모는 작년에 생을 마쳤다.
하루 식단 영양이 부실하다고 느낄 때는 콩죽을 해 먹는다. 콩가루와 쌀을 1;1 분량으로 해서 처음부터 같이 섞어 푹 끊인다. 곁에 서지 않으면 넘쳐서 낭패를 보는 것이 콩의 유일한 카탈스러움이다. 여기에도 무가 들어간다. 무가 달면 콩죽이 더 맛난 것은 당연한 이치, 나는 쌀과 무와 콩가루의 비율을 똑같이 해서 야채죽처럼 먹는다. 이런 죽 한 그릇이면 그날의 식단에서 단백질 걱정은 끝이다. 식어도 맛있는 죽, 고향 제주의 어른들은 겨울이면 가마솥 가득 콩죽을 끓여 며칠을 먹곤 했다. 하지만 눋지 않게 수시로 저어줘야 하는 고된 노동이 뒤따른다. 그래서 콩죽 젓는 나무주걱은 긴 자루가 달렸다. 제주도 신화에 오백 명의 아들에게 먹일 죽을 젓다가 솥에 빠졌다는 오백장군 설화가 있다. 아마 콩죽이었을 것이다.
마들넨에 대한 후각의 기억으로 시작되는 프루스트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완독이 어려운 책이다. 나는 우리말의 지평을 넓혀준 음식의 시인 , 백석이면 족하다.
북신
- 백석
거리에는 모밀내가 났다
부처를 위한다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같은 모밀내가 났다
어쩐지 향산 부처님이 가까웁다는 거린데
국수집에는 농짝 같은 도야지를 잡어 걸고 국수를 치는
도야지 고기는 돗바늘 같은 털이 드믄드믄 백였다
나는 이 털도 안 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러미 바라보며
또 털도 안 뽑은 고기를 시꺼먼 맨모밀국수에 얹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가슴에 뜨끈한 것을 느끼며
소수림왕을 생각한다 광개토대왕을 생각한다
(1939년 조선일보 발표)
‘북신(北新)’은 평북 향산군 북신면을 말하고 3행에 나오는 ‘향산(香山)’은 묘향산이다. 난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분단이 우리 시야를 얼마나 좁게 만들었는지 실감한다. 육식도 멀리하며 부처님 믿는 노인네와 만주 벌판 달리는 영토확장의 에너지원 돼지고기가 아무런 갈등 없이 메밀 국숫집에서 만나고 있다.
나는 겨우 제주 삼성혈 맞은편에 있는 원조 돔베고기 국숫집이라는 <자매 식당> 정도를 떠올린다. 그 국수 위에 얹은 돼지고기 석 점도 듬삭한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