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부터 서울 경기지역 중. 고등학교를 중심으로 제주 4.3 평화인권강의를 다녔다. 강의자료를 준비하던 중 4.3진상규명의 지난한 역사를 보여주는 한 장의 사진을 발견했다.
이 사진은 당시 제민일보 기자였던 김종민 씨가 찍은 것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제주 4.3 평화재단에 들러 최근에 나온 전시도록을 보다가 알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한 예로 많은 4.3의 사진들이 원 작가를 모른 채 흘러 다닌다. 이 사진은 MBC 다큐프로에서 캡처 한 것인데 도록을 보니 원래는 여성 유족 옆으로 남자 유족이 손을 뻗쳐 유골을 뿌리는 모습이 같이 담겨 있었다.
다랑쉬오름에서 유골이 발견된 1992년 3. 22일은 내가 큰애를 출산하고 두 달쯤 되었을 때다. 그리고 노태우 정권 말기로 여전히 공안당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다. 그즈음 제주 4.3 연구소에서 4.3 순례기행을 하는데 가장 열심히 참여한 분이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인가 안기부 소속 형사여서 황망한 적도 있던 그런 때다.
사진 속에서 그 당시의 상황과 인물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바다에 유골가루를 뿌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44년의 한 맺힌 말들이 검게 그을린 중년 여성의 표정 속에 터져 나오고 있다. 동시에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던 박종철의 죽음, 그 아버지가 유골을 뿌리며 ‘종철아 잘 가거래이, 이 아부지는 아무 할 말이 없대이’ 하시던 그 시대의 정황이 오버랩되는 것이다.
이 사진을 찍은 김종민 씨는 발동선 배에 유족과 함께 올라탈 때,경찰이 멱살을 잡고 읍장이 팔을 비틀고 저지하는 상황에서 유족들의 항의로 겨우 동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유족 한 분은 어떻게든 안장을 하고 싶어 뼈가루의 1/11만이라도 달라고 했다고. 내가 서울에서 만난 한 유족은 불량위패 시비로 화형식을 할 때 자신이 몸이 그 속에서 타는 것 같더라고 했다.
사진 속 유족의 오열이 가슴을 후빈다. 뼛가루를 뿌리는 몸짓에는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가 원통한 마음으로 엉켜 거친 물살에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김종민 씨는 발동선을 타고 갈 때는 잔잔했던 김녕 앞바다가 돌아올 때는 거센 풍랑으로 뱃전이 부서질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랑쉬굴의 시신을 처음 증언한 채정옥 씨는 차라리 그때 좀 참고 나중에 발굴했더라면 수장은 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사진이 사실보다 더한 진실을 느낄 수 있게 할 때, 우연의 포착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사진은 11구 시신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을 당시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안장을 포기해야 했던 기억의 말살을 강요받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해원 되지 못한 수많은 4.3의 넋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