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도봉에서
제주시 화북동 별도봉 능선에 누워 바다를 본 적이 있다. 푸르른 이십 대, 가을 억새가 능선을 덮고 있을 때였다. 그때 가본 적 없는 요크셔 지방의 히드벌판을 생각했다. 바람에 허리가 휘는 억새들 사이로 "히스클리프 히스클리프" 부르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이다. 그렇게 에밀리 브론테(1818-1848)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 마음의 정체를 따라가 보면 캐더린을 지나 히스클리프의 마음과 만난다.
"폭풍의 언덕"은 영국 문학 3대 비극. 세계문학 10대 비극의 반열에 오른다. 결혼경험도 없고 유폐된 삶을 살다 서른에 요절한 19세기의 한 여성이 선과 악이 뒤엉켜 몸부림치는 인간 실존의 세계를 펼칠 수 있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에서 워더링이란 폭풍이 불면 위치상 정면으로 바람을 받아야 하는 이 집의 혼란한 대기를 표현하는 말이다. 내가 자란 제주어로 표현하면 ‘보름 살 센 코지’ 정도 되겠다.
이 책을 읽으면 가슴 밑바닥을 사금파리로 긁어내는 느낌이랄까, 인간 본성의 악마성이 어디까지일까 두려워진다. 내 안에도 그런 마음이 웅크려있지 있을까, 에밀리 브론테는 과장의 천재인가, 뛰어난 통찰력의 작가인가. 난 소설만큼이나 이 작가 인생이 궁금해졌다.
영국 국교회 목사 집안 1남 5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난 에밀리는 4살에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7살에 두 언니를 잃는다. 엄격한 칼뱅 주의자 독신 이모에게서 자라며 7살에 사립학교를 입학한 것을 시작으로 4-5번 집을 떠나지만 몇 개월 못 버티고 매 번 돌아온다. 워더링 하이츠에 돌아와서야 안심되는 그녀는 스무 살 이후는 집안 가사를 책임지고 집을 떠나지 않는다.
책을 사려면 몇 킬로를 걸어야 하는 요크셔 깊은 골짜기 외딴 목사관에서 학교교육이 면제된 에밀리의 20대는 "폭풍의 언덕"을 잉태하는 자양이 되었다. 그 안에는 히스의 황량한 벌판과 계곡 그리고 엄청난 독서량이 있었다. 당시 노동계급은 성서를 제외하고는 책을 보유하지 못했다. 19세기 후반에 값싼 나무 펄프가 나오기까지 종이는 천으로 만들어 매우 비쌌다. 브론테 목사관에는 서재에, 난로가에 , 에밀리가 언니 샤롯트와 같이 쓰는 2층 침대 밑에 무한정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었다. 브론테가 자녀들은 10살 무렵부터 잡지를 구해 읽고 만들며 ” 천일야화” 베껴쓰기를 비롯하여 먹고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책 읽는데 시간을 바쳤다. 그런 배경 속에 샤럿, 에밀리 , 앤 세 자매는 작가가 되었다. 유일한 아들 브란웰은 글과 그림에 소질이 있었으나 유약한 성격으로 불륜을 반복했고 이력이 풀리지 않아 알콜중독으로 생을 마쳤다. 병명은 역시 폐결핵. 이 오빠의 모델이 히스클리프에게 많이 투영되었다. 브란웰은 1835년 네 형제자매 모습(아래 그림)을 그렸는데 나중에 자신의 모습은 지워버렸다.
브란테가의 세 자매(왼쪽부터 앤, 에밀리, 샤롯)
십 대에 『폭풍의 언덕』을 읽고 다른 책들이 시시해졌다는 리디 살베르(1948~ , 정신과 의사 겸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요크셔의 황량한 마을을 거의 떠난 적이 없는, 벌판과 바람 이외에 다른 것을 사랑할 줄 몰랐고 짧은 생애 동안 모범이 될 만한 윤리적 태도를 버린 적이 없는 이 무시무시한 어둠의 교훈을, 우리 안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현기증 나는 침잠을 빚지고 있다, 그녀는 자기 주인공의 내면에 이성의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움직임이 있으며, 그 과도함이야말로 우리의 것이며, 우리가 자신에게서 멀어지지 않고는 그것에서 멀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적확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일곱 명의 여자』,51~52쪽, 백선희 역, 뮤진트리)
에밀리는 창백하고 과묵했으며 거침없고 야성적이었으나 자존심이 강했다. 떠돌이 개가 손등을 물었을 때 광견병을 우려해서 달군 프라이팬에 손을 집어넣었다는 일화, 항상 애견을 데리고 산책을 다녔으며 피아노를 칠 때를 제외하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언니 샬럿은 훗날 동생을 이렇게 회상했다.
- 남자보다 강하고 어린아이보다 단순한 유일무이한 천성이었다
이 소설은 여러 편 영화로 제작되어 국내에 소개되었다. 내가 본 것만도 4개 버전이 있다. 월리엄 와일러 감독( 1939년) 영화는 지나치게 잘생긴 로렌스 올리비에가 히스클리프 역을 맡아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제작시기를 참작해야겠지만 내가 본 영화 중에 리얼리티가 가장 떨어진 영화였다. 나는 책을 통해서도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히스클리프 내면, 악의 근원을 감독의 눈으로 이해해보고 싶었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밑바닥은 어디까지인가, 그 본성은 유전적 요인이 강한가 환경적 요인이 더 큰가. 이런 나의 욕구를 해소시켜 준 영화가 2011년에 나온 앤드리아 아널드 감독 영화다.
앤드리아 아널드는 1961년 생의 영국 여성 감독이다. 우리나라 오멸 감독이 <지슬>로(2013, 월드시네마 부문) 받았던 샌더스 영화제에서 단편영화 대상을 받았고,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도 받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박찬욱 급의 감독이다
캐더린의 침실 벽에 그려진 이 낙서에는 나는 새 밑으로 두 사람 이름이 새겨져 있다. 새가 그려진 침실 벽, 이 것은 둘의 유년을 공통의 유대로 묶는 역할을 한다. 언니 샬럿은 에밀리를 부드러운 비둘기가 아니라 고독을 사랑하는 갈까마귀라고 불렀다.
영화 첫 화면은 요크셔 황야를 불길하게 날아가는 검은 새, 언뜻 보면 까마귀 같지만 정확한 이름은 캐더린이 갖고 노는 깃털의 주인 ‘잿빛 개구리매’다. 송골매 , 보라매 , 독수리 같은 사냥용 매 이름에 익숙한 나에겐 퍽 낯선 이름, 하얀 배를 가져서 그런 이름이 붙었나 보다. 이어서 성공한 흑인 청년 히스클리프가 복수를 하기 위해 안개 낀 언쇼가 로 돌아온다. 감독은 히스클리프를 흑인으로 설정했다. 업둥이, 이름도 혈통도 모르는 이 아이는 환경에 따라 검은 천사가 되고 악마가 되는 것이다.
문학작품에서 '밖에서 데려 온 아이"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어 사건을 만들어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는 사생아 스메르자코프가 나온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악을 둘러 쓴 듯 음산한 스메르차코프는 고양이를 죽이고 장례식 놀이를 하는, 악의 화신 같은 인물이다.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에는 김약국의 머슴이 의병으로 떠돌다 무녀 사이에 난 아들 한돌이를 어진 마님에게 맡기고 달아난다. 이 아이가 커서 김약국 셋째 딸 용란이와 사랑하게 되면서 김약국의 몰락은 가속화되는데 본능에 충실한 용란은 신학문을 배운 동생 용빈에게 왜 한돌이와 사랑하면 안 되느냐고 묻는다.
작가는 '내가 공을 들인 것은 용빈이지만 사랑했던 인물은 용란이었다'라고 말했다. 히스클리프도 에밀리 브론테가 사랑한 인물일까. 사랑하지 않고 그런 인물을 창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냥총에 죽은 토끼
하이츠의 불안한 개들과 같은 취급을 받는 히스클리프. 인간을 포함한 그곳의 피조물들은 그들이 당한 만큼 남에게도 잔인하게 군다. 에밀리는 자연의 속성을 파괴라고 믿었다.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나 자기 자신이 존재하기를 그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죽음을 향해 가는 도구이다. ( 『브론테 자매 평전』, 118쪽)"
사냥총에 맞은 야생 토끼나 염소 죽이는 장면을 감독이 삽입한 것은 에밀리의 자연관, 즉 생태계의 먹이사슬은 선하지 않다는 속성을 날 것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두 사람이 소중히 간직한 붉은 뇌조 수컷의 깃털 주인공은 검은 피를 뚝뚝 흘리며 창고에 걸려 있다.
댕기머리물새 깃털
캐더린이 가장 좋아한다고 히스클리프에게 속삭이던 댕기머리물새 깃털이다. 캐더린과 히스클리프는 자연의 거친 속성과 함께 뒹굴었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자신이 같은 내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나는 히스클리프 야. 그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거든. 하지만 기쁨으로 있는 것은 아니야. 왜냐하면 나 자신이 나에게 항상 기쁨일 수가 없는데, 그는 바로 나 자신이거든.”(같은 책, 133쪽)
서로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을 두 사람 사이의 균열, 그것은 계급이었다.
“저 보잘것없는 남자가 온 힘을 다 기울여서 80년 동안 사랑한다 한들 나의 하루치 분량만큼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히스클리프의 자신만만한 이 말은 사랑이 증오로 바뀔 때 엄청만 파괴력을 동반한다. 히스클리프는 리어왕의 에드먼드, 오셀로의 이아고와 같은 부류다. 29세의 미혼여성이 히스클리프 같은 복잡한 인물을 창조했다는 것은 영국 근대문학의 전통, 그중 우뚝 솟아있는 셰익스피어. 시인 바이런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은 언쇼가 와 린튼가를 오가며 두 집안의 파멸을 지켜본,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 하녀 넬리의 독백으로 끝났다.
- 벌판에서 가까운 언덕배기 위로 비석 세 개가 이내 눈에 띄었다. 가운데 것은 회색이었고 히스에 반쯤 묻혀있었다. 에드가 린턴의 것만 비석 밑의 잔디와 이끼 때문에 어울려 보였다. 히스클리프 것은 여전히 벌거벗고 있었다. 히스와 초롱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나방들을 지켜보고, 풀을 스치는 부드러운 바람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 저렇게 조용한 땅 속에 잠든 사람들을 보고 어느 누가 편히 쉬지 못하리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563쪽, 민음사)
창백하고 비쩍 말랐으며 굳건한 의지와 엷은 빛깔의 아름다운 눈을 가졌던 에밀리가 남긴 작품은 『곤달 시집』(1938년), 세 자매의 시를 모은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1946) 그리고 소설 『폭풍의 언덕』(1847) 뿐이다. 『커러, 엘리스, 액턴 벨의 시집』에 수록된 에밀리의 시는 21편인데, 『폭풍의 언덕』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자료이다. 그중 한 편을 소개한다
늙은 금욕주의자
돈도 내겐 하찮은 물건
사랑의 신도 내겐 비웃음거리.
명예욕은 아침이면 자취 감추는
헛된 꿈에 지나지 않고.
만약 내가 기도한다면
나의 유일한 기도의 말은
지금의 내 심장을 그대로 두고
내게 자유를 달라는 그 말!
아무렴, 삶의 끝이 멀잖았으니
그것만이 나의 간절한 소망.
살아있든 죽어가든 용기를 갖고
견디는 얽매이잖는 하나의 영혼
(1841.8.3 , 23세 에밀리의 시, 김종길 번역 )
에밀리는 갖가지 병에 시달렸고 , 자신의 흔적을 모조리 없애버린 후 거실 소파에서 죽었다. 30세의 나이로. 병명은 폐결핵, 브론테 집안 식구 6명이 이 병으로 사망했다. 요크셔 지방의 음습한 기후도 한 몫했을 것이다.
지금의 별도봉 기슭은 산책로를 만들어 '장수로' 라 부른다. (사진 제주환경일보)
몇 년 전, 뉴질랜드로 떠나는 딸과 이 길을 걸었다. 딸은 고향 제주도가 재산목록 1호라고 말한다. 딸은 퀸의 노래, 보헤미언 랩소디 마지막 부분 " Anyway the winds blows"을 , 나는 장필순의 노래 “ 시간은 그리움도 지워져 버려~’를 흥얼거렸다. 좋은 뮤지션, 그녀도 이젠 어엿한 제주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저녁노을 속의 별도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