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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Cult Feb 23. 2022

우주콘텐츠의 방향에 대한 고정관념

소설『엔더의 게임』 톺아보기

2020년 2월 ‘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로 이슈가 된 영화 <승리호>가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세계 영화 순위 1위에 올라 유명세를 탔죠. 원래 좋아하던 감독의 새 영화라 저도 첫날 바로 시청을 했습니다. 사실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었는데, 전반적으로는 그리 나쁘진 않더군요. 하지만 우주라는 공간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를 봤을 땐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전 우주 영화나 영상물을 볼 때면 항상 우주공간에서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했기를 기대합니다. 들뢰즈까지 갈 것도 없이, Moving Picture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영화라는 것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는 운동movement 니다. 그리고 우주는 일상적이지 않은 특수한 공간이기에 그에 걸맞은 세심한 연출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포함해서 수많은 우주 배경 창작물들을 봤지만 그 기대를 만족시킨 연출을 본 적은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대부분인 엉망인 영상물을 보면 우주선들이 비행기나 자동차처럼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항상 선이나 면의 형태에 갇혀 있습니다. 또한 무중력 공간임에도 중력이라는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한 것이죠.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아래는 흔히 볼 수 있는 우주함대의 이미지입니다. 어떠신가요? 저는 이런 모습이 너무나 어색해 보입니다.

모든 우주선들이 천정을 한 방향으로 정한 듯한 묘사


그러면 아래와 같은 그림은 어떨까요? 이상한가요? 좀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전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우주 공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주선의 형태도 문제가 있긴 하다



우주 같지 않은 우주영화를 볼 때마다 생각이 나는 책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창작자가 우주 영상물을 만든다고 하면 제발 먼저 읽어보라고 사정하고 싶은 책, 『엔더의 게임』입니다.


헤리슨 포드가 출연하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된 이 SF소설은, 외계인의 1차 지구 침공 후 미래의 2차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주군을 통솔할 지휘관을 어릴 때부터 양성하고 있는 인류라는 배경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른이 아닌 아이를 지휘관으로 키우는 이유는 적과 싸워 이기려면 적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는데 (知彼知己百戰不殆), 기성의 사고방식으로는 전혀 다른 존재인 외계인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지휘관 후보생으로 발탁된 어린 소년 엔더가 최고의 지휘관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스페이스 오페라입니다. 그리고 저는 『엔더의 게임』이 우주라는 무중력 공간이 가진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고 활용한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 엔더는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 순간 누구보다도 빨리 ‘무중력 상태에서 방향은 자신이 설정하는 대로’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를 적극 활용한 상식을 깨는 전술로 전투훈련에서 승리를 이어 나갑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서있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방향감각을 조정한 뒤였기에 그에게는 다른 아이들이 벽에 매달린 것이 아니라 바닥에 누워있는 것처럼 보였다. 똑바로 서 있는 것은 다른 아이들이 아닌 자신이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방금 전 복도에 있을 때와 같은 방향감각은 사라져 버렸다. 정사각형의 문을 보니 방금 전에 위쪽이었던 곳이 지금은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이제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새로운 방향감각을 찾아냈다. 적의 문이 저 아래에 있다. 적의 본거지를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것이다.’


엔더는 적을 향해 몸을 펴고 앞으로 날아가는 대신, 다리를 적 방향으로 향하게 해 무릎을 모아 꿇어앉은 자세로 목표를 향해 떨어져 내립니다.

‘적의 입장에서 보면 맞추기 어려운 작은 표적이 된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소름이 돋았었죠.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독보적인 우주적 표현이라는 장점을 정작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거의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과 그를 통한 서로 간의 이해가 이 작품의 표면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을 이해하는 순간, 적을 사랑하게 된다’는 엔더의 말처럼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저는 이 소설을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와 같은 고정관념에 대한 이야기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시점에서 바라보고, 다른 관점에서 고찰하는 열린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

-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수용하고 배우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책에서 배운 것들입니다.


재미는 기본이고,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짐과 동시에 시야를 넓혀주는 우주 명작 소설 『엔더의 게임』, 여유되실 때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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