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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용 Jan 13. 2023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지역

아름다운 시절이 있었다. 논과 밭에는 농작물이 자라고 그것을 수확하기 위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수확한 쌀과 보리, 고구마는 남해의 자연석으로 만든 돌창고에 저장하였다. 앞 바다의 물고기는 어부와 해녀들이 끌어올려 항구로 옮겨왔다. 항구에는 만선의 배에서 멸치를 털며 富와 色을 노래하는 어부의 소리가 흥겨웠다. 그렇게 어획한 수산물은 먹고도 팔고도 남아 항구 옆 냉동창고를 지어 저장하였다. 그렇게 풍요로운 남해섬에 1973년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가 놓였다. 줄로 지탱한 다리를 걸어보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와 남해대교 곁에는 먹고 마시며 머물 수 있는 남해각이 들어섰다. 남해대교는 전 국민의 명소가 되었고 그 곁에는 나이트클럽, 식당 겸 카페, 여관으로 채워진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남해각이 들어섰다. 

남해각 개관(1975년)

남해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며 도시의 新문물을 경험하는 창구였고 인근의 지역민에게는 데이트와 나들이 장소였다. 1980년대 그 당시 남해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다. 이렇게 바닷마을에는 사람들이 그득했다.

남해대교 개통식(1973년)

2000년대에 들어서는 남해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창선 삼천포 대교가 생기더니 남해대교 바로 옆에 노량대교도 놓였다. 남해대교로 다니는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줄에 매달린 50살 먹은 다리는 더 이상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아니었다. 미조항 어족자원은 남획과 환경오염으로 어획량이 급감했으며 냉동창고는 발전된 냉동 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제빙·냉동창고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유휴화되었다. 남해의 다랑논에서 수확한 양곡을 저장하던 돌창고는 철근 콘크리트와 조립식 자재로 지은 창고로 대체되었다. 운송하기 편하도록 도로 주변에 건축한 돌창고들은 도로확장으로 대부분 철거되었다. 이렇게 돌창고, 남해각, 미조항 냉동창고는 모두 쓰임을 잃었다.

미조 냉동창고

돌창고는 지금도 아름답고 건축적으로 견고하다. 60여 년의 시간을 버텨오며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75년 건축한 남해각은 남해대교가 바라다보이는 바닷가 언덕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이었다. 현수교인 남해대교의 케이블을 상징하는 줄을 기둥 보에 양각으로 새기고 그 기둥 보에 다리 상판을 걸어놓듯 매스mass를 올려놓아 남해대교와 건축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미조항 냉동창고는 어업의 현장인 항구와 10미터 거리로 맞닿아 있어 어선이 오가는 모습을 온종일 볼 수 있었고 658평이라는 대공간이 주는 압도감이 있었다. 마치 “오래된 미래”에서 온 우주선이 멀쩡한 상태로 불시착해 있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남해 돌창고

미조항 냉동창고가 있는 마을은 예로부터 땅이 모자라서 미조항 주변으로는 주차 공간이 부족했다. 주민들은 냉동창고를 철거하고 주차 공간 및 공원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주민들에게 "대규모 냉동창고가 두 개나 필요했을 만큼 미조항이 번성했음을 보여주는 건축물인데, 냉동창고를 부수지 말고 당신들의 화려했던 시절의 기억을 해동解凍하여 볼 수 있는 곳으로 재생하여 자녀들이 도시에서 왔을 때 자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겠다.”라고 설득하여 미조항 냉동창고는 ‘스페이스 미조’라는 문화공간으로 열렸다. 

스페이스 미조

남해대교는 남해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로 남해의 관문이었으며, 도시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남해 사람들은 붉은색 주탑의 남해대교가 보이면 ‘우리 어머니가 기다리는 고향에 왔구나.’라는 인식을 했다. 남해의 관문으로서 시작점 역할을 되찾기 위한 ‘여행자 플랫폼’과 남해 사람들에게 어머니 다리인 남해대교와 남해각에 얽힌 기억을 창작의 씨앗으로 삼아 ‘기억의 예술관’으로 다시 열렸다.

남해각, 스페이스 미조, 돌창고와 같은 문화공간이 조성되면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관련업이 모여든다. 첫 번째로 문화공간 자체의 공간관리와 방문객 서비스,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운영업과 그에 따른 직업이 생긴다. 두 번째로 미술전시와 음악공연, 교육 워크숍, 상품 제작을 위한 창작 업과 창작자들의 활동이 생긴다. 남해에는 음악가, 미술작가, 문학가 스튜디오, 공예 공방이 늘어나고 있다. 세 번째로 프로그램을 대중에게 홍보할 시각물을 만드는 디자인업이 생기고 디자이너들이 모여든다. 남해에는 서울과 남해를 오가며 활동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생겼다. 네 번째로 문화공간 자체를 기획하고 그곳의 전시·공연·이벤트를 기획하는 기획사가 생긴다. 광역에 지역의 가능성을 알리고, 광역에서 활동하는 작업자들을 끌어들여 지역에 기회를 만든다. 

남해대교. 2021년

남해 돌창고에서는 보호수保護樹를 소재로 미술전시를 하는 남해 보호수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2019년부터 2030년까지 진행하는 장기 프로젝트로 2021년 <보호수, 와: 남해 보호수 프로젝트>는 최정화 작가와 지역의 신진작가 그리고 창작 작업을 하지 않는 지역의 일반 젊은이와 함께 하였다.

https://bohosu-namhae.com/

남해 문의마을 보호수

지역의 신진 작가는 광역으로 활동하는 작가의 작업 방식과 태도를 습득할 수 있었고 그룹 전시를 통해 자신을 어필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지역의 일반 젊은이는 “아트와 아티스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구나.”,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아트를 했다는 새로운 경험과 함께 오랫동안 미술을 해온 작가와 창작을 하고 미술전시에 이름을 올렸다는 자부심도 가질 것이다. 지역에 일찍 돌아와 업을 해나가고 있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 그들은 10년 후에는 왕성하게 활동하며 여론을 만들어가는 지역의 삼촌과 이모들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지역의 어른으로 성장해 갈 것이고 그들이 젊은 시절 경험한 아트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앞으로 이루어질 아트와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와 포용 그리고 소통과 지원으로 이어질 것이다.

보호수, 와! : 남해 보호수 展

남해 보호수 전시와 같은 정기적인 아트 프로젝트가 이루어지면 도시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업 종사자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한다. 그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작업에 관심을 갖고 일반 대중도 여행객으로서 지역을 방문한다.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지역을 방문하여 여행을 하고 체류 기간도 늘리면서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다. 그것이 깊어지면 “관계 인구”가 되어 도시에 거주하면서 지역의 팬이 되어 응원하고 교류한다. 이러한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남해에서 일어나는 소규모 행사, 프로젝트를 남해의 움직임movement라고 부르며 그 움직임을 기록해 가는 포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http://movement-namhae.com


남해 보호수 여행, 동도마마을 보호수

2022년 현재 남해 인구는 약 4만 명이다.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결핍된 인프라를 신축하여 조성하기보다는 장소기억이 스며있는 공간을 다듬어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여 활용해야 한다. 이런 일은 창작자들이 좋아하는 일이고 잘하는 일이다. 지역이 도시만큼 아트 프로젝트를 활동을 포용하고 향유하지 않는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의 세대와 함께 우리들을 받아 줄 토양을 만들어 가면 된다. 도시에 살면서 지역을 응원하고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관계 인구’를 만들고 우리 세대가 일하고 싶은 직업군을 창출하여 이주하는 인구가 생기면 지역이라는 시장은 활성화된다.

슬로모션 : 남해 보호수 展 프리뷰 공연

유휴화된 공간의 이야기와 그곳에 얽힌 사람들의 기억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이다. 그 무형의 것들은 언제든지 잊혀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 돌창고, 남해각, 미조항 냉동창고과 같이 유형의 건축물이 존재한다면 그곳에 얽힌 이야기와 기억은 물적 증거와 함께 보존될 것이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쓸모없다고 인식했던 공간에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어 구경하고 사진 찍고 활발한 움직임이 일어나는 모습을 본다. 자신들이 만들고 향유했던 것들이 “잠시 잊혀졌을 뿐 가치가 없는 게 아니었구나"라는 인식을 한다. 화려했던 시절, 어린 시절 기억이 장소기억으로 기록되고 프로그램으로 재생산되는 모습을 보면서 ‘자부심pride’을 갖는다. 

돌창고 팀원과 마을주민

유휴공간을 리뉴얼하여 그곳이 다시 활성화되는 것은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그 자부심은 생활의 활력이 되고 그것이 모여 마을의 활력, 지역의 활력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다시, 아름다운 시절이 온다.


출처 : <지역의 재생공간 지성적 후퇴전의 시작, 월간미술 2023.01-456호> 투고 글. 

https://monthlyart.com/portfolio-item/2022%eb%85%84-12%ec%9b%94-%ec%a0%9c455%ed%98%b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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