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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용 Sep 30. 2019

미조 아이들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라는 독립출판잡지가 있다.


1979년 19만 평 대지에 약 6,000가구가 살던 서울의 둔촌주공아파트가 재개발 아파트로 확정되었고 그곳에서 살았던 한 청년이 그곳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재개발로 드러난 자본주의 사회의 개발논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보다는 받아들이며 새롭게 의미부여를 하며 자기의 삶과 연관시켜 자기 성찰, 시대와 존재를 잇는 일종의 성장통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1980년대 전후로 태어난 현재 20~30대 청년들은 윗세대 저항의 방식인 투쟁, 집회, 시위와는 다른 조용히 전복적이고 개성적인 방식들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시대를 변혁해야 한다는 의무도 있지만 그것과 함께 자신도 성장해야 한다는 자기 인식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를 철거하는 것은 어두운 면이 있지만 그것이 가지는 새로움의 도래와 환함, 환함과 어두움은 함께 순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 잡지에서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얼마 전/둔촌주공아파트의 놀이터가/모두 사라졌다./철거가 무엇인지/사라짐이 무엇인지를/이별이 무엇인지를/가르쳐주려 한 것이 아닐까(『안녕, 둔촌주공아파트』3, 2015, p.5).”


<안녕, 둔촌주공아파트> 세 번째 이야기에서 편집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철거될 놀이터를 기록하겠다는 소식을 알렸고 재능이 있는 여러 자원자들이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하였다. 둔촌주공아파트의 놀이터에는 상징적인 오브제인 기린 미끄럼틀이 있는데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하였다. 건축사는 재건축 후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하며 기린 미끄럼틀의 실측 도면을 작성하였다. 디자이너들은 ‘Giraffe the great’라는 이름으로 기린 미끄럼틀에 그림을 그렸다. 철거 후 에는 그 그림 돌조각들로 새로운 기념물을 만들어 기린 미끄럼들의 의미를 기억하고 지속시키겠다는 의도이다.

미조제빙창고 옥상


미조제빙창고가 재생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끝을 시작> 전시소식 올리며 인스타그램에 올려보았다. 미조 출신의 젊은이들 몇몇이 태그와 답글을 달며 구체적인 마을 이름, 어린 시절 그 앞을 지났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저기 팔랑 가는 밑에 길" , "우리 집 가는 길인데..."


미조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시골이라서 바닷가 마을이라서 어업 외에는 직업군이 다양하지 못해 도시로 떠났다. 어쩔 수 없이 떠났던 미조 아이들이 다시 모여들어 미조 창고를 중심으로 소규모 프로젝트를 만들어 냈으면 한다. '일자리'는 못 만들어도 '일거리'는 만들 수 있기에 '하찮은' 일거리들을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그 시작으로 미조 아이들이 모여 오랫동안 그곳을 지키고 있었던 동네 삼촌 아저씨 아주머니들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고, 꼬맹이 시절의 기억과 마음을 기록하는 모습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 이런 생각을 미조 출신의 젊은이에게 전하니, 눈빛이 팔랑 마을 앞, 조도와 호도 사이 바닷물처럼 반짝거렸다. 자신이 모을 수 있다고 했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들을 자신이 모을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쌓여 책이 되고 미조 창고가 될 것이다. 미조 창고로 그들의 '일거리'가 '일자리'로 변할 것이다.


미조 창고는 그들 손으로 재생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고 더딜지라도 함께 가는. 그래서 미조 창고로 미조마을에 資力을 키우고, 남해로 그 에너지가 퍼져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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